나의 성자, 나의 아버지

참으로 의연하셨던 당신의 마지막을 추억하며

by 이앙꼬

아버지는 여든셋에 영면에 드셨다.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지 7개월만이었다. 갑작스런 발병과 입원 그리고 임종까지, 모든 게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처럼 일사천리였다. 그 모든 게 생소했다. 온통 처음 겪는 상황들이었다. 나는 아들, 게다가 장남이면서도 아무 노릇도 못 했다. 허둥거리고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병구완마저 소홀히 했다. 지금도 가슴을 친다.


부자간이 으레 그렇듯 우리도 그리 살갑진 않았다. 우린 둘 다 말수가 적었으며 잔정이 없었다. 그나마 둘 다 술을 좋아해 아주 가끔 둘만의 술자리를 벌일 때가 있었다. 일흔 중반을 넘기시면서 아버지는 부쩍 공허하거나 무료해 하시는 눈치였다. 어느 날 술 한 잔 하시더니 “하루가 너무 길구나, 그러면서도 잘 시간이면 내가 하루 종일 뭐 했나 싶고”하셨다.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책을 좀 읽으시지 그러세요. 요즘 도서관에 가보면 아버지 같은 분들도 많이 오시던데. 글도 좀 써 보세요. 아버지 옛날얘기나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제가 책 만들어 드릴까요.” 가만히 들으시던 아버지는 그저 희미하게 웃으셨다. 같은 상황은 그 후로도 몇 번 더 있었고 늘 그랬듯 그러고 나선 곧바로 잊곤 했다.


수술 전날 입원 준비를 하면서 책 3권을 챙겨 넣었다. 2주 입원 예정이라 했으니 그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모자라지 않을까 싶어 테블렛도 챙겼다. ‘난생처음 수술 체험기’ 같은 걸 써보자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건 그저 야심찬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그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일단 몸이 아프고 불편하니 집중력이 떨어졌다. 한 줄을 억지로 읽고 그 다음 줄로 넘어가려다가 방금 전에 읽은 게 깡그리 지워졌다. 때론 한 문장을 읽으며 주어 동사 따위가 엉망으로 뒤엉켰다. 눈도 흐릿해져 활자가 아예 읽히지 않거나 서너 개씩 겹쳐 보였다. 매번 같은 페이지만 들추다 이내 던져 버리곤 했다. 6인실이라 개인조명도 없었고 사람들로 늘 어수선했다.


그렇게 책은 꺼내만 놨지 한 장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테블릿은 퇴원할 때까지 가방 안에 얌전히 들어 있었다. 손글씨 메모라도 해보려 했지만 단어 몇 개만 머릿속을 맴돌 뿐, 펜을 쥔 손가락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때론 그런 움직임마저 거부했다. 그저 멍하니 누워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회복운동 한답시고 병동 몇 바퀴 돌고 와선 또 꼬박꼬박 조는, 악순환만 반복됐다.


나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지으시던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 사람아 나도 그리 하고 싶지. 근데 그게 쉽지 않아.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아’ 그건 이를테면 그런 뜻이었을 게다.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 사정을 나는 알 리 없었다. 뭘 하고는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고, 의지는 충만한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가 주지 않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내 몸을 어쩌지 못하는 그 기막힌 상황은 사람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부정하면서 좌절하고 분노하고 나선 절망한다. 우울과 열패감에 젖어 온갖 불온하고 불안한 생각에 휘말린다. 수술 직후 내가 그랬다. 나는 차가운 길바닥이나 내가 싼 똥 밭에 누워 신음하며 죽어가는 비참한 말로 따위를 수시로 상상했다. 생각만으로도 그렇게 비참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의 벳자타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자리보전을 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자 하소연한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요한 5.7. 참조).” 그는 몸이 성치 않은 데다가 돌봐 줄 이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병을 고치고 싶다는 열망은 남아 늘 못으로 가고 싶어했다.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병석에 누워서도 아들인 나를 먼저 찾는 법이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뵈어도 뭘 바라거나 청하지 않으셨다. 어느 순간 곡기까지 끊으셨다. 한 번 다문 입은 아무리 애원하고 빌어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바짝 마른 표정으로 꼼짝 않고 허공만 응시하는 모습은 흡사 성자의 그것이었다.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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