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맞는 우리의 자세

두려워 말라는 말씀

by 이앙꼬

암 진단을 알리는 메시지는 무척 건조하고 사뭇 비인간적이었다. ‘조직검사 상 식도암 의심’, 그렇게 시작했다. 하필 그때 나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 중이었다. 문자를 확인하면서 무릎이 탁 꺾였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동안 내 몸에 몹쓸 짓하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이럴 줄 몰랐냐고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옷을 챙겨 입으면서는 모든 상황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술 때문이라면 간이나 위여야지, 식도가 왜?. 공공병원이 다 그렇다더니 오진일 거야. 실제 그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30여 년 전 터무니 없이 배를 열뻔했던 경험, 돌팔이 의사의 의도적인 오진이었다. 그 병원만 가면 맹장수술을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그 시즌 2쯤으로 여겨진 거였다.


어차피 그 병원은 식도암 따위를 감당할 깜냥이 아니었다. 거기 의사는‘큰 병원, 대학병원’ 노래를 불렀다.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학병원에서 다시 같은 검사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결론을 내럈다. 그런데 확진을 통보하는 의사의 목소리를 가늘게 떨렸다. “우린 5대 암은 자신 있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영 자신 없어 했다.


시절이 좋아져 완치까지는 아니어도 암 치료는 상당한 수준까지 올랐다. 4기의 가장 절망적인 상황마저 이긴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암하면 곧 죽음을 떠올린다. 원인도 모르고, 근본적인 치료방법도 없으니 일면 당연하다. 겪어보니 당사자들은 특히 그랬다. 나는 거기서 확진 받고서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구체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그 순간 나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며 나보다 더 엉망으로 살며 나보다 훨씬 더 못되게 사는 주변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왜 그들보다 먼저 죽어야 하는 거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는 거지, 지금까지 충분히 힘들게 살아온 거 같은데 끝까지 날 괴롭히는 이유는 뭐지.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끝에 화가 치밀었다.


욕까지 튀어나왔다. 그리스도인이 됐다며 한동안 자제해 왔던 원색적인 욕지거리였다. 그저 상황을 부정하거나 원망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심지어 불경스럽기 짝이 없게도 주님께도 대들었다.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잔뜩 시건방진 자세로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삿대질까지 섞어 따져 물었다. 혼자 지칠 때까지 분통을 터뜨리고 나자 이내 어머니가 눈에 밟혔다.


남편 먼저 보내고 아들 하나를 가슴에 묻으셨다. 장군사주를 타고 났다면서도 연이은 상실과 그 충격으로 심장수술까지 받으셨다. 이젠 기력이 쇠하고 눈도 어두워져 누군가의 도움 없인 정상생활이 어렵다. 나는 그런 분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6년째 함께 살고 있다. 나마저 먼저 그 곁을 떠나면 당신은 십중팔구 정신 줄을 놓으실 거였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신보다는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 고 말씀드렸다. 그래만 주신다면 난 언제든 그 뒤를 따르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래놓고 보니 우울해졌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당신께서 들어줄 이유도 없어 보였다. 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물론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차피 벌어진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뭐라도 하자, 고 마음 먹었다.


서울의 유명하고 큰 병원에 무턱대고 전화부터 넣었다. 매체들이 한결같이 식도암에 특히 강하다고 소개하는 병원이다. 안 될 것을 예견했지만 상담원은 의외로 친절했고 사려 깊었다. 그는 2~30분간 성의껏 수소문해 예약까지 잡아 주었다. 불과 열흘 뒤였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제 걱정마세요. 우리 교수님들이 잘 봐주실 거예요.” 나는 이미 다 나은 기분이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그리고 수용. 사람들은 그렇게 암을 받아들인다. 다른 불행도 마찬가지다. 길게는 몇 주, 심지어 몇 개월도 걸린다는 걸 나는 2~3일 만에 다 겪었다. 딱 한 말씀만 생각했다.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중략)'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3)'.” 한 손은 놓으셨을지라도 다른 손은 잡고 계시는 분, 그건 당신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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