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지도자와 우매한 대중"···누리꾼 논쟁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을 두고 누리꾼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저커버그는 이날 열린 갤럭시S7 공개 행사에 참석해 연단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행사장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가상현실 기기 ‘기어 VR’을 착용하고 있어 저커버그가 바로 자신 옆을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이들은 저커버그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자 모두 깜짝 놀라 환호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일제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저커버그 옆의 좀비 군단?
오프라인 행사장이 열광으로 들뜬 분위기였다면 온라인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저커버그가 올린 사진을 본 누리꾼들 다수는 이 사진이 가상 현실이 가져올 수 있는 암울한 미래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봤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소수의 지도자들과 맹목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갇혀 지내는 다수의 우매한 대중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로미 쿤츠먼이라는 이름의 한 누리꾼은 이 사진의 댓글로 “마크, 모든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갇힌 좀비처럼 있을 때 당신만이 진짜 눈으로 보면서 걷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데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댓글에는 현재까지 ‘좋아요’가 1만2300여개가 붙었다. “지금은 휴대폰을 보면서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 이젠 눈이 가려진 좀비들의 미래를 보고 있다”는 댓글도 보인다. 마크 리처드 스미스 맨리라는 이름의 누리꾼은 좀더 장문의 댓글을 올렸다. 85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은 이 글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막 피어난 꽃을 만지고 그 향기를 맡고 싶다. 나의 팔로 누군가를 안기를 바라고, 얼굴을 마주보면서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태양이 지는 것을 보면서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걸 느끼고 싶다. 나의 얼굴에 살랑이는 미풍을 느낄 수 있길 바라고, 달콤한 요리의 향을 맡길 바란다. 나는 인간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싶다. LED 조명으로 가득한 냉방이 된 홀에서 나의 모든 움직임을 체크하는 전자기기들로 둘러싸인 채 누군가 멋지지 않냐고 말하는 걸 듣고 싶지 않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 계정에 저커버그가 올린 사진을 공유하고 “이 사진이 우리 미래 세상에 대한 하나의 풍자가 아닐까.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 갇혀있고, 지도자들은 우리 옆을 걸어 지나간다”고 글을 올렸다.
물론 이들의 우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스베인 올라프 라르센은 “세계에서 가장 사회화된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기술과 소셜 공유 활동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고 댓글을 올렸다. 기술로 인해 국경을 넘는 전 세계적인 의견의 공유가 가능해졌고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다.
가상현실 기기는 오락을 위한 기기로 사람들을 상호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옹호론도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이용할 기술을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공상과학물처럼 강제로 가상의 현실에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가상현실의 세계는 이미 과거다
가상현실이 미래 소비가전 산업의 핵심 아이템으로 부상하면서 가상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우려는 상당부분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된 암울한 미래상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서 나온다.
1999년 세기말에 개봉했던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는 기계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점령한 2199년의 미래 사회를 그려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기계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인공지능에 의해 뇌세포에 입력된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1999년의 세계를 평생동안 살아가는 것이다.
2013년 출간된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은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2044년의 미래 세계를 묘사한다. 소설 속 가상현실의 세계인 오아시스(OASIS)는 교육과 상거래를 비롯해 사람들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전부 흡수해 실제 세계를 대신한다. 사람들은 가상현실 기기를 쓴 채 가상의 세상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삶을 영위한다.
저커버그의 사진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한 르몽드의 22일자 기사에 따르면 가상현실의 세계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다. 미국계 캐나다인 소설가로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한 윌리엄 깁슨은 자신의 소설 <사이버스페이스> <뉴로맨서> 등에서 사이버 세계와 사이보그를 예측했다. 그가 묘사한 미래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의 뇌를 콘솔로 기계와 연결한 채 사이버 세계를 여행한다. 그가 자신의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은 계기가 있었다. 아래 인용문은 기즈모도의 기사에 실린 깁슨의 인터뷰 내용 중 르몽드가 재인용한 부분을 옮긴 것이다.
“내가 뱅쿠버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한 오락실 앞을 지나갔습니다. 비디오 게임은 당시로선 새로운 사업이였죠. 소년들이 합판 위에 설치된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게임은 공간과 원근감에서 매우 원시적인 그래픽을 보여줬습니다. 일부 게임은 전혀 원근감이 없었고 다만 공간적 요소를 갖추려 노력했을 뿐이었죠. 이런 원시적인 그래픽에도 게임을 하는 소년들은 물리적으로 너무나 몰입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들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계가 만들어낸 개념적인 공간 안으로 말이지요. 진짜 세계는 그들에게서 사라졌고, 완전히 그 중요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개념 상의 공간에 있었고, 그들 앞에 있는 기계는 멋진 신세계였죠.”
인간이 실제의 세계가 아닌 가상의 세계에 몰입될 수 있다는 우려는 사실 텔레비젼, 라디오, 소설이나 만화가 등장했을 때도 비슷하게 있었다. 심지어 신문 역시 인간 관계를 위기에 놓이게 한다는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1950년대의 한 사진을 보면 열차 칸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에 신문을 들고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신문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옆 자리에 앉아있는 승객들과는 어떤 교류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소셜 미디어에 공유된 이 사진에는 “기술이 우리를 반사회적으로 만든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인간 관계에서는 ‘가깝다’거나 ‘멀다’의 개념은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며, 기술이 그 거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