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공간’된 도로, ‘공동체 삶’을 복원한다
도심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시는 올해 3월부터 차량 속도를 30㎞/h로 제한한 도로인 ‘30구역’을 도입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도 시내 중심부 도로 전체를 포함해 도심 도로의 80%에 시속 20mph(약 32㎞/h)의 속도 제한을 뒀습니다.
스페인은 올해 안으로 전국 도시의 대다수 거리에 30㎞/h의 속도 제한을 두는 새 도로법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의 38%는 30㎞/h의 속도 제한 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통행 속도 제한 운동을 벌이는 ‘20이면 충분하다’(20’s Plenty for Us)에 따르면 현재 영국에서 20mph의 속도제한을 시행하거나 도입하려는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는 1300만명에 달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인구 10만명 이상의 도시로는 처음으로 그르노블이 지난달 15일 도시 대부분의 도로에 2016년 중반부터 30㎞/h의 속도 제한을 두기로 했습니다. 시의 교통 중심축에 해당하는 일부 도로에만 예외적으로 시속 50㎞의 속도제한이 유지됩니다. 그르노블 시와 그 주변 41개 자치지역(Grenoble-Alpes Metropole)의 44만명의 주민들이 이 조치의 적용을 받습니다.
파리 시 역시 전체 도로의 3분의 1에서 시속 30㎞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고 이를 더 늘릴 계획입니다. 독일 연방은 최고속도를 30㎞로 제한한 도로인 ‘템포 30’을 지역 당국이 더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지난 4월 관련 법을 개정했습니다.
유럽 각국은 지금까지 주거지역에만 시행하던 30㎞/h 속도제한을 도시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도심지역을 대수술 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도시들이 도로 통행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동차 규제 없이는 생활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프랑스 그르노블 지역 단체장들의 협의체인 ‘라 메트로’(La Metro)의 부회장 얀 몽가부르는 지난달 15일 르몽드에 “마을에서처럼 도시에서도 어린이나 노인과 같은 교통 약자들을 보호하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이 속도 제한의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교통사고방지협회에 따르면 1990년 프랑스가 도시 차량 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 낮췄을 때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5% 줄어들고, 보행자와의 충돌 사고 역시 14% 감소했습니다.
통행 제한 속도를 50㎞에서 30㎞로 낮추는 곳이 늘어날수록 사망자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차량 속도가 50㎞일 때 사람을 발견하고 차를 멈출 때까지 26m를 이동하지만 시속 30㎞의 경우 13m로 줄어듭니다. 차량과 충돌했을 때의 충격도 크게 줄어든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결국 시속 50㎞로 달리는 차량에 사람이 치었을 경우 사망률은 45%에 달하지만 30㎞일 경우 사망률은 5%로 떨어집니다.
서울의 승용차 평균 주행 속도는 2013년 기준으로 도심에서 18.7㎞/h, 외곽지역에서 26.6㎞/h입니다. 평균 속도가 이미 30㎞ 이하인데 굳이 속도 제한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평균 속도가 아닌 순간속도입니다. 제한 속도를 낮춰 가속 시에도 최고 속도가 시속 30㎞에 이르지 않아야 합니다.
차량 속도를 제한하면 깨끗한 이동 수단인 도보와 자전거 타기가 더 안전해집니다. 더불어 에너비 소비를 줄이고,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도심의 승용차 통행속도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일반도로에서의 제한속도인 시속 60㎞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제한속도와 주행속도의 차이가 커서 운전자들은 교차로를 중심으로 큰 폭의 가속과 감속을 되풀이합니다.
자연히 연료 소비가 많아지고 타이어 마모로 인한 미세먼지 배출이 증가합니다. 도심 미세먼지의 50%가 급작스런 가감속으로 인한 타이어 마모, 도로 마모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속도를 낮추면 소음도 줄어듭니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승용차가 50㎞/h의 속도로 달릴 경우 차량 중심선에서 7.5m 떨어진 거리에서 소음도는 평균 66.3㏈A이지만 30㎞/h의 속도로 달릴 경우 58㏈A로 낮아집니다.
한편 속도를 줄이더라도 전체 주행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도심의 교통 중심축에서 차량 속도를 50㎞/h로 유지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겠죠.
실제 프랑스의 경우 도심 도로의 제한속도가 50㎞/h일 경우 1㎞를 주행할 때의 평균속도는 18.9㎞/h로 제한속도가 30㎞/h일 경우의 평균 속도 17.3㎞/h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동시간도 18초 차이 밖에는 나지 않았습니다. 이동 중간에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골목길을 다니는 차들이 앞을 지나는 행인을 향해 경적을 울리고, 깜짝 놀란 보행자가 운전자에게 눈을 흘기는 일은 우리에게 예삿일입니다. 차량 운전자는 보행자를 앞질러가길 원하고, 사람은 골목길에서 안전하게 통행하길 원합니다. 골목길에서 누구에게 우선권을 줘야 할까요?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의 교통법은 이 문제에서 큰 시각차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 8조를 보면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언제나 보도로 통행하여야 한다.…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차마와 마주 보는 방향의 길 가장자리 또는 길 가장자리 구역으로 통행하여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네덜란드 교통법 44조, 45조는 “보행자는 길 가장자리가 아닌 도로의 모든 공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운전자는 보행속도보다 더 높은 속력으로 달리면 안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는 골목길에서는 사람이 먼저 알아서 조심하도록 길 가장자리로 통행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법이 의도하는 바겠죠. 반면 네덜란드 교통법은 이 구역에서 보행자는 완전한 우선권을 누린다고 규정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규정을 적용받는 주거지역의 도로를 ‘본에르프’(Woonerf)로 부릅니다. ‘거주자들의’라는 뜻의 ‘woon’과 마당이라는 뜻의 ‘erf’가 합해진 말입니다. 도로가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안전하게 걸어 다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1960년대 자동차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도로 정책이 차량을 중심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도로를 넓히기 위해 보도를 줄이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골목길이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주거지의 학부모들은 이런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 공간을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희생시켜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도로에 벽화를 그리거나 나무를 심으면서 도로를 ‘놀이의 공간’으로 바꾸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는 본에르프의 설치로 이어졌습니다.
네덜란드 델프트시가 최초로 본에르프를 도입했고, 네덜란드 교통법은 이곳에서의 최대 속도를 ‘보행속도’로 지정했습니다. 절대적 기준이 아닌 보행자보다 빨라서는 안된다는 상대속도의 개념입니다. 이 정도로 느린 속도에서야 그나마 아이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죠.
본에르프로 지정되지 않은 주거지 도로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는 조치도 1983년 처음으로 이뤄졌습니다. 2001년까지 전 주거지의 50%가 30㎞ 속도제한 구역으로 지정됐고 이로 인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0% 정도가 감소했습니다.
본에르프에서 시작한 속도 제한 운동은 독일의 ‘템포 30’(Tempo 30)으로 이어졌고, ‘존 30’(Zone 30) 등의 이름으로 유럽 각지로 퍼졌습니다. 속도제한이 확산된 데는 안전과 환경의 이유도 있지만 공동체의 삶을 복원하고 도시의 활력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2011년 5월 4일 발표된 프랑스의 ‘30㎞/h 도시를 위한 선언’을 보면 “안전과 삶의 질, 공생을 위해 차의 속도를 줄이면 삶과 교환의 장소라는 도시의 본질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지속 가능한 도시 이동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도보와 자전거 타기, 대중 교통을 촉진해 다양한 도시 이동 수단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고 도시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차량의 속도가 빠를수록 교환 활동은 줄어듭니다. 반면 차량의 속도를 줄이면 지역의 삶은 더욱 생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더 잘 놀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동네를 더 쉽게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소규모 상거래 활동이 활동해집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간의 만남이 늘어납니다. 속도 제한 운동을 위한 표어에 담긴 ‘사람을 사귀는 도시’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 교통법은 2008년 7월 ‘만남의 구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사람과 자전거, 자동차가 한데 엉켜 다닐 수 있는 곳인데 우선권은 사람에게 있어서 보행자는 꼭 인도로만 다닐 필요가 없고, 자동차 속도는 20㎞/h로 제한됩니다.
이곳에서 모든 통행자들은 느린 속도로 마주치면서 전통 시대 마을에서와 같은 공생을 꾀할 수 있습니다. 공간과 흐름(도로)의 개념을 한데 모은 것이죠.
2013년 한국의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0.1명으로 10.6명의 미국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았고,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2명으로 2.4명인 터키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5.1명인 유럽에 비하면 갈 길이 멀지만 아직 도로의 제한 속도를 30㎞로 낮춘다는 발상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 11일 일부 이면도로를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간의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생활권 이면도로 정비지침’을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위험이 높고 통학 어린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구간으로 한정해 유럽과 같이 주거지 일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속도 제한 조치를 시행하더라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단속하는 데 비용이 들고 실효성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르노블 시도 법적 제재보다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방점을 뒀습니다.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 인도를 확장하거나 심지어 골목길에서 농작물 재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도로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라는 것이죠.
시민정신에만 기대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도록 차도의 폭을 좁히는 대신 인도의 폭을 넓히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직선형 도로를 줄이고 지그재그 형태의 굴곡진 도로나 원형 교차로를 늘렸고, 스피드험프나 분리대와 같은 장애물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차량 중심으로 설계된 도로 기능을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법입니다.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김남석 교수는 “본에르프는 편리와 효율과 사람의 생명을 바꿀 수 없다는 철학에 기반했다”며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내 집 앞에서 아이들이 편하게 놀 권리를 찾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의 결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종로에 ‘존 30’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ICT 융합연구소의 백남철 연구위원은 당장 유럽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기란 어렵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많은 토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백 연구위원은 “도시에서 국가 경제의 힘이 나오는데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경쟁력은 교통이다”며 “시속 60㎞의 차량 속도로 도시를 관리하면서 어떻게 창조적이고 사람중심적인 정책이 나오겠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퇴직공무원으로 자전거클럽 ADFC 대표로 있는 한 시민단체의 장을 만났을 때의 일화를 들었습니다. 독일은 자전거 교통량이 없는데도 어떻게 몇십 년간 꾸준하게 자전거 도로를 만들 수 있었느냐, 자동차 운전자의 반발은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 사람이 한 마디로 “민주주의”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도시·산업 정책을 만드는 관건은 민주주의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죠.
-자동차만 다니는 도심은 활력 잃어
“도심의 차량 평균속도는 시속 20~30㎞밖에 안됩니다. 제가 저속 전기차를 타고 실험을 해봤습니다. 보통 차량들은 최고 속도가 시속 60㎞이니까 가속했다가 감속해서 교차로에 섰는데 제가 탄 전기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40㎞라 35㎞ 정도로 밟고 갔는데 똑같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가속하고 감속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됩니다. 소음과 대기오염도 심해지면서 도심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힘든 곳이 됩니다. 도심에는 자동차만이 다니고 보행자들이 사라진 도심은 활력을 잃습니다. 도심은 도시의 심장입니다. 도심의 활력이 떨어지면 도시도 노화됩니다. 사람들이 만남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도시가 살아나기 때문이죠.”
-속도 제한 시 보행안전 크게 높아져
“얼마 전 뉴욕은 도시 전체적으로 속도제한을 40㎞/h 이하로 정했습니다. 런던, 파리 등은 보다 강력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죠. 이웃나라 일본은 도시 가로를 50-40-30㎞/h로 구분해 속도를 규제합니다. 주정차가 완전히 금지된 간선도로에서만 제한속도가 50㎞/h이고 대다수 도심은 속도 40㎞/h 이하라고 보면 됩니다. 연구결과 치사율은 20mph(32㎞/h)에 비해 30mph(48㎞/h)은 7배, 40mph(64㎞/h)은 31배 높아집니다. 특히, 60세 이상 노인의 치사율을 보면 20mph(32㎞/h)에서 5% 사망, 30mph(48㎞/h)에서 50% 사망, 40mph(64㎞/h)이상으로 자동차와 충동하면 98% 사망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고령자들의 활동성을 높여야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사회보장비용을 줄이고 사회의 활력도 높일 수 있습니다. 제한 속도를 낮춰 얻을 수 있는 안전과 건강 상의 이점이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높은 속도 제한은 나쁜 정체만 양산
“우리는 아직도 속도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도심 최고속도가 30㎞/h 이상이면 곤란합니다. 새로운 도로를 건설해도 새로운 수요로 채워집니다. 적당한 수준이라면 교통정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평상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속도제한은 나쁜 정체만 양산합니다. 나쁜 정체는 교통체계의 신뢰를 떨어 뜨립니다.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놓치게 되고 불규칙적인 교통 상황은 사고를 증가시킵니다. 이로 인한 차량의 가감속은 미세먼지를 증가시킵니다.”
-‘자동차 방임주의’ 버려야
“기존의 자동차 방임적인 교통체계를 벗어나자는 의식이 중요합니다. 특히, 도심의 활력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규제해야 합니다. 단, 무조건적인 자동차 통행제한이나 성급한 도로 다이어트는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보행자와 자동차를 안전하게 공유시키면서 자동차 문화의 수준을 고양해야 합니다. 그 핵심 요소는 ‘속도 감소’와 ‘오염 규제’ ‘불법 주정차 규제’이지 ‘교통량 감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시민들의 ‘좋은’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단, 위협적으로 가감속하는 차량의 접근성(car accessibility)과는 양립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 관리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유럽은 배출가스를 많이 내뿜는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는 ‘저 배출 구역’(Low Emission Zones·LEZs)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배기 가스를 많이 내는 차량의 통행을 막거나 비용을 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유럽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으로 차량을 수출하지만 도시 관리에서는 아직 유럽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도시 관리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경제 논리로만 따지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도시 관리를 강화되면서 발전한 나라가 독일입니다. 오염이 심한 차량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기준에 미달하는 차를 보유한 사람은 기준에 부합하는 차량을 한 대 더 사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국가 경제의 힘이 나오는데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경쟁력은 교통입니다. 시속 60㎞의 차량 속도로 도시를 관리하면서 어떻게 창조적이고 사람중심적인 정책이 나오겠습니까.”
- ‘부캐넌 보고서’의 교훈
“당장 우리나라에서 유럽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 많은 토의를 해야 합니다. 결국 교통도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1963년 영국에서 ‘부캐넌 보고서’(The Buchanan Report:Traffic in Towns)가 나왔습니다. 당시 보고서는 런던의 교통 혼잡이 매우 절박한 수준으로 통행 규제가 없다면, 환경 악화는 물론 통행시간 단축이나 쾌적함과 같은 자동차로 누리던 효용 마저도 급속히 쇠퇴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안전과 건강을 위해 속도 제한을 꼭 추진해야 하지만 일부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해 무산되면 결국 우리도 영국처럼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잃고 국가 경제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통의 경쟁력은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무엇이 민주주의이고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한계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지 대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야기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퇴직공무원으로 독일 아헨주 자전거클럽 ‘ADFC’의 대표로 있는 분을 만나 어떻게 독일은 자전거 교통량이 없는데도 몇십 년간 꾸준하게 자전거도로를 만들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의 반대가 없었느냐는 것이죠. 그는 대답을 민주주의라고 일갈했습니다. 시민들의 토론이 시민단체 거버넌스를 통해 마을, 도시, 주, 연방까지 올라가 의회에서 한번 의결되면 그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독일도 한 때 한국처럼 정책의 일관성이 불안한 적이 있었는데 도시공간의 시민주도적인 활동을 국가에서 지원해 시민들의 자발성이 높아지고 정책 일관성을 가지게 되면서 극복했다고 합니다. 근대국가의 발전은 르네상스 도시의 혁신에 근거했고 독일 등 선진국들의 발전도 도시 공간의 경쟁력(공간 복지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ㆍ
-네덜란드 본에르프 도입 과정에서의 문제점이나 반발은?
“네덜란드 본에르프의 시작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골목길의 불법점유’ 이었습니다. 주민들이 골목길에 차를 막은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공권력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입니다. 불법이라고 무조건 ‘법대로’ 주민들을 처벌하거나 하지 않고, 주민들의 요구를 차근차근 들어본 겁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시정에 적극 반영한 겁니다. 주민들의 (안전하고자 하는) 자발적 요구에 구청이나 시청이 귀를 기울인 것이 바로 본에르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차의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덜란드에서도 첨예한 갈등의 소재입니다. 네덜란드 교통법 46조 1항은 운전자는 이 공간에 ‘특정 주차공간 표시가 없다면’ 일반적으로 주차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요구도 ‘거주자들의 안전’이라는 가치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상대속도’의 개념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한 과제라면? 결국 제도보다는 의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뜻일까요?
“상대속도의 개념을 일반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20㎞/h 구역이나 30㎞/h 구역은 차량과 보행자(거주민)와 ‘함께 공존하기’를 위해 도입하되, 정말 ‘아이들의 안전, 거주지에서 편안할 권리’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이를 주민들의 합의에 따라 차량의 편의를 포기할 수 있는 지역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본에르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본에르프에서는 차량의 절대 속도 제한이 없고, ‘무조건’ 차량은 보행자보다 느리게 가야 한다는 것을 법규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의식개선’이라기보다 ‘주민합의’의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교통안전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문제를 ‘시민의식 부족’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속도’ 규제를 법제화한다고 해도 이를 ‘일반적으로 규제’할 효과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활도로에 속도위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러한 카메라를 이곳저곳에 무분별하게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속도는 누구나 ‘나보다 빠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실효성을 높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속도제한 조치를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기보다 이미 현행법상 시행 중인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나 노인 보호 구역 등에 대한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다음에 본에르프니, 30㎞/h 구역이니 새롭게 도입해야 하겠지요.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잘 못하면서 매번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설물’ 중심으로만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시설물, 표지판 확충에 예산을 다 써왔는데, 표지판 달고 페인트 칠해도 사고가 줄지 않아요. 또한 법 개정을 만병통치약처럼 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법만 개정하면 모두가 그 법에 따라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또한 큰 오산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순응성이 높은 수준의 법을 만들어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합니다.”
-시설물을 추가 설비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라고 하시고, 법 개정을 하거나 시민의식을 높이는 것도 제1처방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시급하게 적용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 있을까요?
“제 주장은 속도를 줄여야 하는 곳에, 아이들이 위험이 노출되어 있는 곳에, ‘차로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쿨존에 과감한 ‘로드 다이어트’를 시행해야 하고, 이미 차로수가 넓지 않은 구간의 경우, 강력한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해야 합니다. 스쿨존에서의 불법 주정차는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키가 작은 아이들을 보이지 않게 해 사고를 유발하는 큰 요인이 됩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 학교 앞 차량 전면 진입 금지를 취해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차로 학교에 출퇴근하는 편의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야 하고, 지역 주민들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우회’의 불편함을 감당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언젠가 회의 때 서울 간선도로의 차로를 줄이자고 제안했더니 인구 10만 델프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인구 천만인 서울에 적용하려 한다는 비아냥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델프트가 본에르프가 생기면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서 큰일 날 것이라는 비아냥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소방차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정책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되면 해결방안을 찾아야지 ‘시행하지 말아야 할’ 논리를 찾으면 안 됩니다.”
-서울 도심의 경우 차량 평균 속도가 30㎞/h 미만인데 속도제한이 필요할까요? 미세먼지, 배기가스 증가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건 아닌지요?
“서울 도심의 ‘평균 통행’속도가 시속 30㎞ 미만인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스쿨존이나 교통안전에서 말하는 속도는 ‘순간속도’입니다. 평균속도가 아닙니다. 제한속도와 실제 속도와의 차이로 인한 급가속의 문제는 아직 ‘실제 문제’로 얼마나 심각한지 산정조차 되지 않은 이슈입니다. 제 견해로는 큰 이슈가 아니라고 봅니다. 굳이 우선순위를 말하자면 교통환경 등의 미세먼지 이슈도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교통안전’ 이슈보다 앞설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
**네덜란드 본에르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남석 교수의 다음 글을 참고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보행자들입니다. 또 사고의 대부분은 이면도로(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도로)와 골목길에서 발생합니다. 정부는 모든 골목길이 아니라 사고율이 높고 통학하는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특정 구간을 생활도로구역으로 설정하자는 입장입니다. 저희는 모든 골목길과 이면도로에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장기적으로 도심 도로에도 시속 30㎞의 속도 제한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외국의 경우 보행자와 자전거, 차들이 한데 어울려 다닐 수 있는 공유도로가 있습니다. 공유도로에서는 모두가 기본적으로 여기서는 속도를 낮춰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조심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은 대부분의 도심에서 30㎞/h의 속도제한을 두거나 골목길이나 주택가에서 속도 제한을 두는 식으로 ‘30 운동’이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더 속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죠. 유럽에서는 법으로 속도제한을 30㎞로 정하더라고 그 속도까지 달릴 수 있다의 의미가 아니라 보행자가 있을 경우 보행자보다 느리게 다녀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교통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