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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Mar 15. 2016

인공지능 만든 실리콘밸리, ‘기본소득’ 지지하는 이유는

“자동화와 기본 소득은 사회 진보의 두 축”


 산업혁명 이후 기술 혁신은 지난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일자리와 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와 기계 지능의 발달로 기계가 거의 모든 직종을 위협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를 비롯해 높은 진입 장벽으로 고수익을 누려온 전문 직종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인공지능도 등장해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거의 모든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면, 사람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수억 대의 기계가 인간에 필요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회가 되면 인간은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채 예술적, 창의적 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까.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사회에서 벌어질 비참함과 고고함, 두 가능성 사이에는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이 연결고리로 ‘보편적 기본소득’(unversial basic income)을 들고 나왔다.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는 사회에서 현재처럼 임금노동을 매개로 부를 분배하는 방식으로는 사회 구성원의 삶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실리콘밸리의 투자가들이 기본 소득을 들고 나온 이유는?

 ‘보편적 기본 소득’은 실리콘밸리의 밴처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지지세가 커지고 있다. 노동의 미래를 결정할 기술 발전의 흐름을 이들이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공지능에 밀려 일자리를 잃더라도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주거비와 식비, 의료보험을 비롯한 기본적인 필요를 충당할 수 있는 돈을 기본 소득으로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인간을 기계와의 가혹한 경쟁에 놓이게 한 그들이 기본 소득으로 속죄와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처음부터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대결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고된 노동과 경제적 고난에서 해방시켜주기에 충분할 정도의 경제적 잉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예상하는 미래 사회는 SF영화 <스타 트렉>에서 묘사된 것처럼 유토피아에 가까운 사회다. 컴퓨터가 모든 일을 대신하면서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은 예술가와 학자와 같은 지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기본소득 지지자로 유니온스퀘어벤처스의 밴처 투자가인 앨버트 웽거는 지난 2일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기본적 필요(생계)를 충족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수백 년간 우리는 필요의 관점에서 모든 세계를 구성했다. 이제는 경제에 약간의 수정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옮겨갔을 때와 같은 근본적인 새 출발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 지원기업 ‘Y Combinator’의 밴처 투자가 샘 알트먼은 보편적 기본 소득 도입을 위한 연구 기금을 제안했다. 알트먼은 기본 소득의 재원 마련 방법을 비롯해 보편적 소득이 적용된 사회상에 대한 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사람들에게 노동의 대가 없이 돈을 지급할 때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일상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노동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 활동의 동기나 목적은 무엇이 될지, 기본소득이 경제 불평등과 인간의 기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지에 대한 연구 등이 포함된다. 인간이 자아실현감을 느끼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유산은 아닐지도 연구할 계획이다. 

 노동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이미 시작됐다. 한 세대 전부터 거시경제 지표는 고용 없는 성장 추세를 보였다. 임금은 정체되고 직업 안정성은 존재 자체가 없어 보인다. 불평등은 불가역적으로 보인다. 기술 발전이 우버 드라이버와 같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도 그 고용의 질이 이전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다. 일자리 소멸이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알트먼은 기본 소득이 노동 없는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완충 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변화의 시기 동안 상황은 상당히 힘들 수 있다”며 “기본 소득은 최소한 이 이행기간을 평탄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자동화와 기본 소득은 사회 진보의 두 축”…“다른 대안도 있어”

 뉴욕타임스의 테크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주에 따르면 기본 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실리콘밸리 인사들은 자동화를 두려워하거나 그들이 이런 세상을 도입했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기본 소득을 현재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방어 수단으로만 보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동화와 기본 소득을 사회 진보로 향하는 최적의 길로 여기고 있다. 웽거는 “트럭을 몰면서 미국 전역을 왔다 갔다 하느라 20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람을 바람직하게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으로서 하길 원하는 일이 아닐뿐더러 인간 뇌를 나쁘게 사용하는 것이다. 자동화와 기본 소득은 인간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에 부합하는 굉장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발전이다”고 말했다.

 기본 소득 지지자들은 불평등과 실업 문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기본 소득 논의가 시급히 정치권의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서비스업 종사자 국제협회 회장을 지냈던 앤드류 스턴은 일자리 위기를 전쟁 상황에 비유했다. 그는 “나의 부모님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것은 내가 징집당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며 “전 소득 계층에 걸쳐 사람들은 그들과 그들 자녀들이 기술이 점령한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일자리에 관한 한 우리는 베트남 전쟁 시기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기본 소득은 실리콘밸리와 유럽 국가들에서 일정한 정치적 지지를 얻고 실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아직 정치권 의제로 논의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미국의 주요 대선 주자들, 특히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버니 샌더스도 아직 기본 소득을 거론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일단 공론의 장에 올라오면 기본 소득이 폭넓은 정치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기존 복지를 축소한 뒤 모두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우파 성향의 기본소득 모형의 경우 복지 혜택을 누릴 자격을 심사하기 위한 인력과 시간 비용을 없앤다. 이 때문에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장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기본 소득과 기존 복지가 병존하는 좌파 성향의 모형에 대해서는 찬반 논쟁이 거셀 수 있다. 

 한 달에 어느 정도 액수의 기본 소득을 줘야 하는지, 기본 소득을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도 쟁점이 될 것이다.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결정되어야 하지만 일단 기본 소득 지지자들은 조세, 복지 정책 등을 조정하고, 기술 발전으로 에너지와 의료보험에 들어가는 지출을 줄이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기본 소득 도입에 회의적인 주장도 있다. 이들은 모든 임금 일자리가 기계에 대체될 것이라는 가정을 부인한다. 로봇이 인간 대신 투입되고 있다면 생산성에서 큰 도약을 봐야 하는데 최근 통계에 따르면 생산성은 오히려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노동과 관계없는 기본 소득을 주기보다는 교육을 강화해 더 좋은 일자리를 잡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일자리 부족 문제는 노동 시간을 줄여서 해결할 수도 있다. 실제 스웨덴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 6시간 노동을 실험하고 있다. 프랑스도 2000년 실업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업률을 낮추는 데는 큰 성과가 없었다.) 노동 시간을 줄일 경우 레저 분야에서 새로운 부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위의 글은 아래 두 기사를 인용, 참고했습니다. 


http://www.nytimes.com/2016/03/03/technology/plan-to-fight-robot-invasion-at-work-give-everyone-a-paycheck.html

http://www.nytimes.com/2016/03/09/business/economy/a-future-without-jobs-two-views-of-the-changing-work-force.html?ref=technology&_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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