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보넬 로보폴리스 그룹 회장이 말하는 로봇화 사회의 미래
유럽의 대표적인 로봇 유통회사 로보폴리스 그룹의 브루노 보넬 회장(사진)이 한국을 찾았다. 세계 3대 게임회사로 꼽히는 ‘아타리’의 대표 및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그는 로봇 시장의 대표적인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지난 12일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 주한 프랑스대사관 등이 공동 주관하는 프랑스 석학 초청 강연 ‘2016 교보인문학석강’에서 ‘로봇화 사회’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보넬 회장은 이날 강연 첫머리에서 “인간은 뇌의 기능 중 일부를 지능을 갖춘 기계, 즉 로봇에게 위임하는 시대를 맞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능을 갖춘 미래 로봇이 가져올 혁신을 로봇(robot)과 혁명(revolution)의 합성어인 ‘로볼루션(robolution)’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의 강연은 ‘로봇’과 ‘혁신’이라는 화두로 이어졌다.
■‘로봇’과 ‘혁신’
로봇은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자신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이는 슬라브어에 뿌리를 둔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한 말로 노예처럼 힘겨운 일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넬의 설명에 따르면 로봇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사물을 붙잡고 주변 환경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 마지막으로 결정한 행동을 실제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구동장치이다. 그는 “이런 세 가지 능력을 갖춘 기계라면 모두 로봇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자율주행차량과 자동청소기는 모두 로봇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로볼루션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최적화하는 것을 넘어 기존 존재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단계”라고 강조했다. 로볼루션은 이런 점에서 발명이 아닌 혁신이다. 그는 발명은 새로운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말하지만 이것으로는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봤다.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은 혁신이 아니며, 오히려 혁신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를 말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발명과 혁신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1895년 시점에서 2000년을 상상한 그림들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의 그림에서는 ‘아에로 캡’(Aero-cabs)으로 불리는 하늘을 나는 택시가 도시 곳곳을 날아다니고 있다. 보넬은 “아에로 캡을 빼면 사람들의 복장이나 건물은 당시와 변화가 없다”라고 말했다. ‘아에로 캡’은 이런 점에서 하나의 가상의 발명 일뿐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혁신은 어떻게 보면 모든 삶의 체계의 변화를 의미하지 단순한 신기술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자동차는 혁신에 속한다. 보넬은 “자동차의 등장은 도로와 신호체계, 사람들의 일상을 비롯해 모든 도시의 광경을 바꿨다”며 자동차는 삶을 변화시킨 혁명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전기차는 혁신이 아니라 발명이라고 봤다. 전기차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만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의 혁신 사례로는 자율주행차를 들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페달도 없고 운전대도 없고 운전사도 없다.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차로 바뀌면 굳이 차를 소유할 필요도 도시에 신호등이 있을 필요도 없다. 모든 차량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에 맞춰 이동을 최적화하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나 서울이 다 마찬가지인데 움직이는 차 3대 중 1대는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며 “자동차를 이용한다기보다 주차하기 위해 고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는 이런 낭비적인 상황을 없애고 도시의 풍경을 바꾸게 된다.
보넬은 혁신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사회나 시장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은 환경을 변화시키지만 그 시작은 사회의 문제, 시장의 문제에서 생긴다”며 “시장이 위기를 겪지 않고 도시 안에서 교통 문제가 없이 지금의 자동차가 충분히 잘 작동한다면 혁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보넬 회장은 “로볼루션이 중요한 이유는 패러다임과 생각의 참조점(레퍼런스)을 완전히 변화시켜 사고 구조가 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로볼루션으로 대변되는 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경쟁을 촉진하게 된다”며 “우버(Uber)와 알리바바(Alibaba), 에어비앤비(Airbnb)는 플랫폼을 바꾸면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로봇의 전쟁
로봇화와 실업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 개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WEF에서 발표된 ‘고용의 미래’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과 인공지능, 3D 프린팅, 생체유전기술의 발달로 새로 생길 일자리는 210만 개인데 비해 사라질 일자리는 710만 개다. 클라우스 슈밥은 “이에 대응할 긴급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실업과 불평등 확대에 직면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옥스퍼드 마틴스쿨이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일자리의 절반은 컴퓨터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우려와 달리 로봇화로 고용이 늘어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지난 7월27일 발표된 독일 만하임 소재 유럽경제연구센터(ZEW)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동화가 노동 수요에 긍정적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2010년 사이 유럽연합 2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공동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자동화로 인해 생산비가 감소하면 제품 가격이 하락해 제품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다시 고용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났고 그 결과 자동화가 이 기간 동안 노동수요를 순증가시켰다고 결론 내렸다. 실제 국제로봇연맹(IFR)의 지난 9월 자료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우 2010~2015년 사이 8만 대의 로봇이 새로 설치되면서 23만 명의 고용이 창출됐고, 독일의 경우 2010~2015년 사이 1만3000대의 로봇이 설치되면서 약 9만3000명이 신규 채용됐다.
보넬 회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 로봇 산업의 전문가들은 대개 로봇화, 자동화로 인한 실업 문제를 낙관하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 즉 우리가 흔히 그 일을 할 때 ‘로봇’이 된 것 같다고 표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 진짜 로봇에 대체될 것이지만 창의와 개성이 가미된 ‘인간’ 다운 일이 절대적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보넬 회장의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강연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사례를 들었다. 그는 “1900년 통계에 따르면 파리시에서는 85만3000명이 말 산업에 종사했다”며 “1950년대에는 이 일자리가 다 사라진 반면 자동차 산업에서 450만 명이 종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의 사례로 그는 IBM의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을 들었다. 인간은 32가지의 회색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지금까지 엑스레이 등을 보고 병을 진단해왔다. 그는 “좋은 카메라는 수백 개의 회색을 판별할 수 있다”며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기계는 구분하면서 인간보다 더 잘 질병을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30년이 지나면 로봇이 의료 진단을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넬 회장은 “의료 진단에 관한 한 인간이 로봇과의 전쟁에서 지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일자리 감소는 슬프게 바라볼 일이 아니다”며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일자리가 새로 생길지 생각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로볼루션 시대의 핵심 단어로 ‘원격(TELE)’ ‘로보(ROBO)’ ‘가상(VIR)’ ‘지능(INTEL)’의 네 가지를 들었다. ‘원격’은 “한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있는 드론이나 의료 기기 등을 원격으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로보’는 로봇 분석가나 로봇 공학자 등 로봇의 움직임을 분석하거나 로봇과 인간의 협업을 가능케하는 작업을 말한다. ‘가상’은 실제의 인간인 변호사나 비서, 조수 등이 다양한 종류의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지능’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활동을 뜻한다. 로봇 시대에 생겨날 새로운 일자리들이 갖게 될 특성이다.
■인간과 로봇의 길
구글 딥마인드의 개발자들은 지난 14일 자사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지금까지 자기 시스템 안에 축적한 데이터를 이용해 자가 학습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쿼츠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인간 멸망의 초석이 다져졌다고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촌평을 했다.
보넬 회장은 이런 비관적 입장은 아니지만 오늘과 같은 상태로 인간이 머문다면 로봇이 이기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피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가설일 뿐 실제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인간도 인간이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는 로봇을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로 보지 말고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은 세상을 조종하는 빅브라더가 아니다”며 “인간은 지금까지 로봇을 똑똑한 기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로봇의 도움으로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로봇이 인간의 발전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로볼루션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만든다”며 “인간이 가져야 할 임무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관심이다”고 말했다. 설명하자면 의사가 단순 진단을 하지 않아도 될 시점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기계가 준 정보를 잘 분석해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울러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며 로볼루션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보가 너무나 많아진 지금은 머릿속에 모든 정보를 기억해 이를 일할 때 적용하는 과거의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81년 공학도로 원자를 배웠는데 그 이후 모든 게 변해 의미가 없어졌다”며 “머릿속에 기억하는 방식에서 정보가 흐르게끔 하도록 정보 저장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최소의 지식’을 축적하는 ‘미니멈의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보넬 회장은 프랑스나 스페인 등에서 택시 기사들이 차량공유서비스인 ‘우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혁신적 시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봤다. 다만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두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시대가 파괴되면 오히려 기술의 시대가 늦게 도래한다”며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신속함을 추구하느라 5000명을 해고하고 나서 로봇으로 대체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중국 전문가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맨 처음 중국에 트랙터를 도입했을 때 도입 숫자를 헥타르 별로 제한해라고 지시했다”며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시기를 두고자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는데 한국은 너무나 빨리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는 기계도 실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넬 회장은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 건 그가 항상 실수를 안 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실수의 가능성도 수용해야 한다. 그게 알파고가 보여준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