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뒤 바뀐 처지
유럽연합(EU)은 지난주 금요일 구글이 자사의 쇼핑 서비스에 유리하도록 웹 검색 결과를 왜곡했다는 내용의 이의신청(Statement of Objections)을 제기했다. 이의신청은 유럽연합 반독점 조사의 첫 공식 조치로 사실상 소장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의 신청을 받은 기업은 10주 이내로 답을 해야 하고 청문회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밝히게 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5일(현지시간) 구글이 유럽연합 내 인터넷 검색 시장에서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자사의 가격 비교 쇼핑몰인 ‘구글 쇼핑’에 유리하도록 웹 검색 결과를 왜곡했다는 혐의로 전날 이의신청을 보냈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5년간의 예비 조사 결과 이와 같은 구글의 행동은 유럽연합의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경쟁을 방해하고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아울러 구글의 모바일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와 관련해 별개의 공식적인 반독점 조사를 개시했음을 알렸다.
■유럽연합 집행위, 최대 8조 원 대 벌금 부과 가능
호텔과 항공권, 공산품 등 비교 쇼핑 서비스와 관련한 구글의 불공정 관행은 유럽연합이 가장 오래전부터 조사해온 문제다.
유럽연합의 경쟁 정책을 담당하는 집행위원인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이날 “집행위원회의 목적은 유럽연합의 반독점법이 그 국적과 관계없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가능한 한 넓게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혁신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며 “구글의 경우 유럽의 반독점법을 위반해 자사의 비교 쇼핑 서비스에 불공정한 이익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임명된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구글과 타협점을 찾으려 했던 전임자인 호아킨 알무니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구글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반독점 조사 결과 구글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단할 경우 한 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 경우 구글이 낼 벌금은 최대 62억 유로(약 8조 500억 원)에 이른다.
구글은 유럽연합의 이의신청에 강하게 반대하며 구글의 제품은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에게 이익을 줬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이날 회사 블로그 게시물에서 “안드로이드는 가격을 낮추고 모든 사람들의 선택의 폭을 늘려 경쟁과 선택권을 높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의 조치에 대한 구글은 반발은 구글의 유럽연합 법인 대표의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매트 브리틴 구글 유럽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17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유럽연합 당국은 디지털 변화에 회의적이고 복잡한 규제는 유럽 대륙의 발목을 잡아 미국에 뒤쳐지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에도 따라 잡힐 위험에 놓이게 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의 반독점 기소에 ‘독설’로 응수한 셈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이 기술 기업을 대상으로 반독점 조사를 한 전례를 볼 때 관련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 구글의 주가 상승이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구글의 경쟁사들은 미국의 반독점 규제 당국도 구글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것을 압박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뒤 바뀐 처지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사건의 주된 원고로 수년간 공개적으로 혹은 물밑에서 구글에 대한 경쟁 당국의 조사를 압박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날 발표한 e메일 성명에서 “오늘 결정은 청문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완전한 기회를 구글에게 제공했다”며 “집행위원회는 유럽의 법률이 존경받아왔는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갖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구글을 자극할만한 도발적인 문구는 없었으나 ‘곤궁’에 처한 경쟁사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을 주문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이 자사의 검색 엔진 ‘빙’이 구글의 유튜브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광고주 데이터를 공유하기도 거부하는 등 반경쟁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구글과 비슷한 사례로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아 구글에 동정심을 가질 법하지만 사내 분위기는 오히려 ‘고소하다’ 거나 ‘흥미롭다’는 쪽에 가깝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8년~2000년 사이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 조사를 받을 당시 이 일에 밀접하게 관여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임원은 “그들(구글)은 당해야 할 일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법원은 이때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결했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독점 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개 회사로 쪼개졌던 AT&T처럼 두 회사로 분할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법무부의 마이크로소프트 제소를 막후에서 재촉했던 인물은 바로 현재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의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이다. 그는 당시 기업용 운영체제를 만드는 소프트웨어사 노벨(Novell·현 마이크로 포커스)의 최고경영자였다. 과거의 원고와 피고가 뒤바뀐 셈이다.
■구글 쇼핑, 안드로이드 문제가 뭐길래?…EU, 구글 전방위 압박
가격 비교 쇼핑은 소비자들이 다수의 온라인 쇼핑몰에 올라온 상품들을 검색해 각각의 판매자들이 매긴 가격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집행위원회는 2010년 11월 시작한 예비 조사 결과 구글이 현재 ‘구글 쇼핑’으로 불리는 자사의 비교 쇼핑 사이트에 올라온 상품이 검색 페이지에서 더 우선적으로 보이게 하는 등 체계적으로 우호적인 대우를 했다고 판단했다. 검색 시장에서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 비교 쇼핑 사이트에서 구글 쇼핑으로 인위적으로 트래픽을 돌려 경쟁사의 경쟁력을 해치고 소비자 이익과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것이 집행위원회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집행위원회는 예비 조사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구글은 (소비자가 검색에서) 의도한 것과는 무관하게 일반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자사의 비교 쇼핑 서비스가 더 돋보이도록 위치시키거나 보여줬으며 이런 관행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2. 구글은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노출 순위를 낮출 수 있는 벌점 체계를 타사의 비교 쇼핑 사이트에는 적용하면서 자사의 비교 쇼핑 서비스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3. 구글의 첫 번째 비교 쇼핑 서비스인 ‘프루글(Froogle)’은 어떤 우호적 대우도 받지 않았고 성과도 좋지 않았다.
4. 후속 비교 쇼핑 서비스인 ‘구글 상품 검색’과 그 뒤를 이은 ‘구글 쇼핑’은 구글의 체계적인 우호적 대우를 받았고 그 결과 경쟁 비교 쇼핑 서비스와 비교해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5. 구글의 행동은 소비자와 혁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사용자들이 늘 가장 적절한 비교 검색 결과를 받지는 않으며 경쟁사들에게는 아무리 그들의 상품이 좋아도 구글의 상품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해 혁신을 위한 유인을 낮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드로이드와 관련한 조사는 구글의 미래 수익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PC 기반의 웹 검색에서 모바일 기기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및 태블릿 제조사들은 구글이 2005년부터 그 개발을 주도한 안드로이드를 운영체제로 선택하고 있다. 이들은 구글과 계약을 맺고 안드로이드와 구글이 만든 안드로이드 기반 응용프로그램들을 설치할 권리를 얻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구글이 이들 기업들과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의 반독점법을 어겼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집행위원회가 밝힌 안드로이드 관련 조사 범위는 아래와 같다.
1. 구글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제조사들에게 구글의 응용프로그램과 서비스만 설치하도록 요구하거나 이를 위한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불법적으로 경쟁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았는지 여부
2. 구글이 안드로이드 기기에 구글의 응용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설치하길 원하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나 태블릿 제조사들이 소위 안드로이드를 수정하거나 안드로이드와 잠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이른바 ‘안드로이드 포크’ 버전을 다른 기기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하거나 판매하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불법적으로 경쟁 모바일 운영 체제와 모바일 응용프로그램 혹은 서비스의 발전과 시장 진입을 방해했는지 여부
3. 구글이 안드로이드 기기에 배포되는 구글의 일부 응용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다른 구글의 응용프로그램과 서비스 혹은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와 연동시키거나 묶어 경쟁 응용프로그램과 서비스의 시장 접근과 발전을 불법적으로 가로막았는지의 여부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이와 관련해 “이 영역의 시장이 특정 기업이 부과한 반경쟁적 제약 없이 번성할 수 있도록 보장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비교 쇼핑 사이트의 검색 순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베스타게르는 집행위원회가 경쟁 검색 사이트의 검색 결과를 표절하는 ‘웹 스크래핑’ 혐의를 비롯해 광고에서의 경쟁 제한적 관행 등 구글의 다른 영역에 대한 조사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이날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가 저작권 보유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유럽연합 집행위, 과거 반독점 조사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벌인 주요 반독점 조사는 2004년 6월의 마이크로소프트, 2001년의 인텔 사례를 들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선마이크로시스템즈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특허 관행을 문제 삼아 유럽연합에 제소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07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에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를 뺀 윈도 버전을 출시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사가 제공한 네트워크 소프트웨어가 윈도 데스크톱 및 서버 버전과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관련 정보를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당시로서는 유럽연합이 부과했던 벌금 중에서 가장 많은 4억9700만유로(약 7억8400만달러)의 벌금도 함께 부과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항소를 포기하고 이 결정에 따랐다. 윈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판매자들에게 받는 특허 사용료도 이전 수익의 5.95%를 요구하던 것에서 0.4%로 대폭 낮췄다.
유럽연합은 2008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유럽연합의 2004년 반독점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로 8억9900만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2009년 1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끼워 팔기’를 해 웹브라우저 시장의 경쟁을 해치고 제품 혁신과 소비자 선택권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로 조사에 나섰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윈도 7E 버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빼야 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사인 인텔은 2009년 5월 경쟁사인 AMD의 칩을 사용하지 말도록 컴퓨터 제조사들에 금전적 대가를 제공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으로부터 10억9000만유로(약 1조4153억원)의 벌금을 받았다. 이는 현재까지 유럽연합이 반독점과 관련해 부과한 최고액 벌금이다.
구글의 경우 두 기업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 경쟁법 전문가인 베르톨트 바에르 부시에르는 로이터통신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보다 더 심하다”며 “이번 사건은 앞으로 수년간 디지털 분야의 시장 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말했다.
■유럽의 공적 된 구글?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연합이 미국의 정보기술기업들을 대상으로 반미 정서와 보호주의적 정책에 따른 정치적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럽의 침체를 우려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미국 기술 기업들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해 유럽의회는 집행위원회가 구글의 사업을 여러 부문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비구속적 결의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방문을 하루 앞둔 이날 베스타게르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구글을 기소하기로 한 결정에 정치적 고려는 없으며 국적이나 시장 지배가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지배력을 남용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유럽연합 경쟁 당국에 구글을 제소한 회사들 중 4분의 1은 미국에 기반을 둔 회사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미국 경쟁 당국이 구글의 사업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이번 조치의 정당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글의 유럽 내 검색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어 60~70% 수준인 미국 내 시장 점유율보다 높다는 점에서 유럽과 미국은 다른 시장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구글과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많은 유럽연합 내에서는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그 성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유럽 내 기술 기업들이 이번 조치를 반기고 있다.
독일의 온라인 지도 제작 서비스인 ‘핫 맵’의 마이클 베버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했던 수년간의 시간이 흐른 끝에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됐다. 이제 태양이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회도 초당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유럽의회 내 최대 보수연합의 대표인 만프레드 베버는 “인터넷은 서부의 무법 지대가 아니다”며 “웹 상에서 반드시 존중받아야 하는 규칙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경영계 단체인 ‘경쟁적 온라인 시장을 위한 계획’은 “구글의 수년에 걸친 남용적 행동을 끝낼 결정적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미디어 그룹 악셀 스프링거의 최고경영자 마티아스 되프너는 구글과 협상하려 한 베스타게르의 전임자 알무니아의 노력은 “부당한 타협”이라며 베스타게르가 “더 결의에 차있고, 더 빠르고 더 사실에 부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