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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Oct 24. 2016

“차별만 줄여도 국민소득 1500억 유로 늘어난다”

차별은 정의의 문제이자 경제 문제

“어떤 사람도 고용이나 훈련, 기업에서의 연수 기간에서 차별받아선 안된다. 어떤 노동자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제재를 받거나 해고되거나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차별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특히 임금 보상의 측면에서 … 상여금 혹은 주식 배분, 연수, 근무 재배치, 임용, 자격 취득, 분류, 승진, 계약 변경이나 갱신에서 그의 출신이나 성(性), 생활습관,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 나이, 결혼 여부나 임신, 유전적 특징, 경제적 상황에 따른 특별한 취약성, 명백하든 알려졌든 자신의 작품, 진실이든 추정된 것이든 민족, 국가 혹은 인종에의 소속이나 무소속의 여부, 정치적 견해, 노조나 조합 활동, 종교적 신념, 물리적 외양, 성(姓), 거주 지역이나 건강 상태 혹은 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는다.”(프랑스 노동법의 차별 금지 조항)


5월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인권·시민·사회·종교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혐오 반대를 주장하는 문구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만약 그 능력과 상관없이 고용에서 차별이 있다면 그것이 경제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기업의 입장에서 극단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는다면 인재 풀의 절반을 버리게 된다. 이민자이거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을 하지 않는다면 성차별의 경우와는 그 숫자의 차이가 크겠지만 역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차별로 인한 경제적 손실 혹은 차별이 시정됐을 때의 경제적 이득을 측정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연구가 프랑스에서 시도됐다.

프랑스 총리실 산하의 정책연구기관인 ‘프랑스 스트라테지’(France Strategie)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차별의 경제적 비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이민자 등에 대한 고용과 승진에서의 차별을 없애는 것으로 향후 20년간 국민소득을 1500억유로(약 186조원) 늘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00억유로는 2015년 기준 프랑스 국내총생산의 약 6.9%다. 20년 동안 연간 국내총생산을 0.3% p씩 올린 것과 같다.

차별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프랑스 스트라테지는 고용 시장에서의 차별에 특별히 주목했다. 고용의 형태가 주거와 건강 등 다른 사회적 조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프랑스 노동법에 열거된 차별 금지 사유에서 성(性), 지리적 출신, 거주 지역, 장애 등 네 가지를 분석 대상으로 선정했다. 통계 자료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분석 결과 여성은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9~15% p 낮았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가장 외면받는 여성들은 아프리카계로 이들의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74%로 같은 아프리카계 남성과 비교해 9% p 차이를 보였다. 여성들은 실업률도 높았고, 정규직 편입 가능성도 낮았다. 임금도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평균 12%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은 이민 계열이 아닌 경우 상당히 줄어들었다.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도 강했다. 아프리카계 남성의 경제활동비율은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4% p 낮았고, 실업률은 7% p 높았다.


김포공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12일 한국공항공사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차별은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여성과 이민자들이 고용 시장에서 차별을 받으면 그만큼 노동 공급이 줄어든다. 이는 노동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노동 비용 증가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생산물 시장에서의 공급곡선을 좌측으로 이동시킨다. 그 결과 생산물과 서비스의 가격이 오르고 국민소득이 줄어든다. (아래 표 1, 2)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성과 인종에 따른 능력의 분포가 동일하다고 할 경우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이 존재하면 그만큼 능력 있는 인재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막힌다. 결국 차별적인 기업은 우수 인재를 놓쳐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한다. 경제 전체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져 국민소득이 준다. 여성과 이민자들이 차별받으면서 이들의 실업이 증가하면 실업 급여 등으로 공공 지출이 늘어난다.

프랑스 스트라테지의 피사니 페리 사무총장은 르몽드에 “차별 감소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득이 되는 구조적 개혁이다”며 “한 국가가 그 인구의 일부분에서만 엘리트를 충원한다면 스스로 재능을 포기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차별이 경제적으로 불리한 조치로 이를 제거하면 궁극적으로 성장과 국민소득에 상당한 이득을 준다고 봤다.

그는 원칙적으로 차별 감소를 도덕적 관점에서 먼저 접근했다. 페리 사무총장은 “우리가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만이 아니다”며 “차별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며 고통을 낳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표1. 노동시장에서 성과 인종 등에 따른 차별이 존재할 경우 노동공급 곡선이 좌측으로 이동해(1) 균형임금(W1→W2)을 높이고 고용(L1→L2)을 줄인다.
표2. 노동시장의 차별로 균형임금이 높아지면 생산비용의 증가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이 줄어든다.(2) 이에 따라 균형가격(p1→p2)이 높아지고 산출량(국민소득)이 줄어든다.


그러나 어떤 정책도 마술처럼 수세기 동안 지속된 편견에 종지부를 찍거나 노동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내재화된 불평등을 단기간에 없앨 수는 없다. 연구진은 이를 인정하면서 차별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네 가지 단계의 차별 완화를 가정했다. 첫 단계로 요직 진출에서의 평등, 두 번째로 차별받는 집단의 고용 증가, 세 번째로 주간 노동 시간의 수렴(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해소), 네 번째로 교육 수준의 수렴이다. 연구진은 단계별로 차별 시정이 이뤄질 때마다 이를 각각 시나리오 1~4로 정해 각각의 효과가 국내총생산 증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추정했다.

그 결과 요직 진출에서의 평등과 차별받는 집단의 고용 증가가 모두 실현된 시나리오 2의 경우 국내총생산이 현재보다 6.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한 국내총생산의 97%는 여성이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3) 이 경우 노동인구는 60만8000명이 늘어 현재보다 약 3% 증가하게 된다. 10%에 가까운 실업 해결에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시나리오 4가 실현될 경우 국내총생산은 14.1% 증가(약 3100억유로)할 것으로 예상됐다. 차별이 시정될 경우 남성의 경우도 국내총생산 증가 효과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온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교육 불평등은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차별이기 때문이다.(표 3)


요직 진출에서의 평등, 차별받는 집단의 고용 차별 해소가 이뤄진 경우 국내총생산이 현재보다 6.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연령대 : 25~59세(이민자 제외). 2005~2014년 프랑스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프랑스 전략이 집계한 결과.

차별을 줄이면 경제에 득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2013년, 2014년 미국에서도 발표된 바 있다. 프랑스 스트라테지는 보고서에서 이들 연구를 인용하면서 “백인 남성들이 거의 독점해온 자리에 여성과 흑인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차별 시정이 1960년~2008년 사이 미국 경제 성장의 15~20%를 설명한다”라고 밝혔다.

피사니 페리 사무총장은 “이 연구가 분명히 밝히는 바는 평등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개혁 사이에 어떤 상충도 없다는 점”이라며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나 자주 사회적 정의와 효율성을 반대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차별을 줄이는 것은 이 둘을 모두 달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프랑스보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더 낮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전체 노동자 중 여성 노동자 비율은 2013년 현재 49.6%인데 비해 한국은 43.1%이다. 남성 노동자의 중위 소득을 기준으로 본 남녀 간의 임금 차이도 한국이 36.3(남성이 100이면 여성은 63.7)으로 프랑스의 13.7보다 크다.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여성은 과소 대표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15년 기준 전체 국회의원 중 26.2%가 여성이지만 한국은 16.3%에 그친다. 프랑스 전략의 이번 연구 결과가 맞다면 한국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정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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