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의 첫 신년 연설, 담고 있는 가치가 달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비슷한 시간대에 시작하고 끝났다.
같은 날 이뤄져 대조가 더 극명했던 두 대통령의 첫 신년 연설. 담고 있는 가치의 차이는 컸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실업률 하락과 재정적자 감소 등 경제 성과에 따른 자신감이 묻어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경제와 안보에서의 위기감이 강조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모두를 위한 경제’ ‘약자를 위한 경제’ ‘정의로운 경제’를 강조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계에 상생의 노력을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통합’을 강조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며 역사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언론의 다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 핵을 언급했느냐 여부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만 실제 한국 사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오히려 경제 분야였다.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발췌해 소개한다. 비교가 가능한 지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함께 소개한다.
■공정한 경제 강조…“미국 경제 쇠퇴 주장은 허구”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유급 휴가, 최저 임금 인상. 이 모든 것들은 부지런하게 일하는 모든 가족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두에게 경제적 성취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사회를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디지털 혁신과 자동화가 가져오는 경제 변혁기에 기회와 (경제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공정성을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을 국가 미래에 관한 네 가지 주요 질문 중 첫째로 거론했다.
그는 “기술은 조립 라인의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자동화 될 수 있는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낮아지고, 기업은 공동체에 충성심을 덜 갖게 되었고, 소득과 부가 점점 더 최상위층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모든 흐름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며 “근면한 가족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어렵게 만들고, 젊은이들의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원할 때 은퇴를 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 성장이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주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좋은 보수를 주는 일자리를 얻도록 모든 미국인에게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일은 진정한 기회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신의 재임 7년 동안의 경제적 성취를 거론하며 “미국 경제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다. 미국의 쇠퇴를 주장하는 것은 허구”라고 말했다.
■월가의 무분별함과 대기업의 역외탈세가 경제 위기 주범…노동자가 더 큰 목소리 내야
오바마는 “경제가 부유층과 대기업에 유리한 시스템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난 7년간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수년간 기업 이익이 기록적인 수준을 기록한 반면 노동자 가족들은 임금과 기회의 측면에서 그 만큼의 몫을 가져가지 못했다”며 “거대 은행과 헤지펀드, 석유 메이저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들만의 규칙을 강요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위기를 불러온 것은 무상급식(food stamp)이 아니라 월가의 무분별함이며, 임금인상을 막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기업 이사회라고 지적했다. 일반 시민이 아니라 역외에서 탈세를 일삼는 기업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새로운 경제에서는 노동자와 신생기업(start-ups),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비슷한 주제에 어떤 입장을 보였나?
“노동계는 17년만의 대타협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대승적 차원의 협조를 해서 국가경제가 더 이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파견법은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저나 정부도 노동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이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기업을 살리고 실업자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파견법은 중소기업의 어려운 근무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연설문)
“포퓰리즘 관련해서는 선거 앞두고 또 선심성 정책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청년들한테 그냥 돈 주고, 무상 조리원 만들겠다는 건데 정부도 얼마든지 선심성 정책 할 수 있는데 국가가 안하고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 우선순위 따라야 한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온난화 부정하면 왕따될 것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년간 미국이 감축한 탄소배출량은 세계 최대였다며 에너지 분야에서 이뤄낸 혁신을 높이 평가했다. 청정 에너지 개발을 위한 노력을 더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온난화 부정론을 배척했다. 그는 “누군가 여전히 기후 변화를 둘러싼 과학적 사실을 논박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상당한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며 “왜냐면 온난화 문제에 동의하고 이를 해결하려 하는 우리의 군과 대부분의 미국의 기업 경영자들, 대다수 미국민, 거의 모든 과학 공동체, 200개의 국가들과 논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년간 미국은 청정 에너지 개발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나라로 일례로 아이오와 주와 텍사스 주에서는 전통적인 화석 발전으로 만든 전기보다 풍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가 더 싸다고 말했다.
■제재는 민주주의 진전에 효과적이지 않아
“50년간 쿠바를 고립시켰지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우리가 (쿠바와)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여행과 교역의 문을 연 이유다. … 여러분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과 신뢰성을 공고하게 만들고 싶다면, 냉전은 끝났다는 걸 인식해라. 엠바고(무역제제)를 거둬들여라”
그는 리더십은 군사력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올바른 대의로 세계를 규합하는 것이라며 세계가 미국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다양성과 개방성,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해 “독재자와 살인자의 증오와 폭력을 모방하는 것은 그들에게 패배하는 지름길이다”며 “정치인이 무슬림을 모욕하고, 모스크가 공격을 당하거나 (무슬림)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한다고 우리가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비슷한 주제에 어떤 입장을 보였나?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 협의 중이다. 한·미간 긴밀히 조율하고 상의했다. 중국과도 초안을 놓고 긴밀히 협의 중이다. 이번 안보리 결의에는 금융, 무역. 새로운 조치들 포함된다. 강력하고 포괄적인 것 논의한다. 이때까지는 북한을 변화 못시켰는데 이번에는 북한을 아프게 변화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마련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합’…금권정치 배격해야
오바마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로 미국 헌법의 첫 세 단어인 ‘우리는 국민이다’(We the People)를 들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자녀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하고,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미국은 다양한 종교와 입장, 이해가 있는 큰 나라로 이는 미국이 갖고 있는 강점의 하나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시민들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의 끈을 필요로 한다”며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있다거나 정치적 반대자를 애국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신뢰)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의 삶은 극단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을 때 생기를 잃게 된다”며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느낄 때, 사회 시스템이 부자들과 권력자들, 개인적 이해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될 때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돈이 정치에 주는 영향력을 줄여 소수의 유력 가문과 숨겨진 사익들이 선거에 돈을 대게 해선 안 된다고도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비슷한 주제에 어떤 입장을 보였나?
역사 인식의 다양성과 관련된 국정화 문제에 관해
“국정화는 중차대한 일이다. 단순하게 발행주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꾸는 중차대한 일이다. 국정화 반대에서 이런저런 비판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가 편향된 집필진에 의해서 독과점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고 교육현장 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세계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부끄러운 역사로 만들고, 북한을 은연중에 옹호하는 생각까지 심어준다. … 왜곡된 내용 고치라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까지 한다. 그러니 국정화 갈 수 밖에 없다.”
■시민의 정치 참여가 '부족 정치' 막아
“무엇을 믿든, 어떤 당을 지지하든, 우리의 집단적 미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기꺼이 지키려는 자세에 달렸다. 투표하고, 목소리를 내라. 타인을 위해, 특히 약자들,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을 위해 일어서라.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의 정치 참여가 정치 개혁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치 참여는 투표 참여 행위를 넘는 적극적인 행동을 뜻했다.
“냉소적이 되거나 변화는 가능하지 않고, 정치는 희망이 없으며,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지금 포기하면 더 나은 미래를 저버리게 된다.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결정권을 갖게 돼 젊은 군인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또 다른 경제적 재앙을 불러오거나 미국인들이 수세대 동안 심지어 죽어가면서까지 지키려고 싸워왔던 평등권, 투표권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
그는 정치적 좌절이 커지면 우리와 같은 모습, 같은 종교, 같은 투표 성향을 갖고 있지 않거나 같은 배경을 공유하지 않는 동료 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부족적 정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