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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재산 뛰어넘은 ‘1% 부자’ 시대 왔다

'1%를 위한 경제'를 막을 방법은?

by 주영재

전세계 상위 1% 부자의 재산이 나머지 99%를 합친 것보다 많아졌습니다. 이 시점은 당초 2016년으로 예상됐으나 1년 앞당겨졌습니다.

옥스팜이 18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62명이 보유한 재산은 세계 인구의 하위 50%(약 36억명)가 보유한 재산과 맞먹습니다.

옥스팜은 보고서에서 하위 50% 인구의 재산은 2010년 이후 5년간 41% 줄었지만 이들 62명 최상위 부자들의 재산은 같은 기간 5000억달러(약 605조7500억원)가 늘어 1조7600억달러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2010년 최상위 갑부 388명 재산이 하위 50%와 맞먹는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불평등 정도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l_2016011801002518500200834.jpg 황금색 페라리가 영국 런던의 명품 상점가에 멈춰서 있다. Photo by Dan Kitwood/Getty Images


옥스팜은 “경제가 모두의 번영을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위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1%를 위한 경제가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 재산 순위에서 상위 1%에 들려면 76만달러(약 9억2543만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는 추정치입니다. 옥스팜 보고서가 기초하고 있는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의 자료는 슈퍼리치들의 자산 정보는 얻기가 어려워 ‘최소한의 추정치’라고 부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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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크레디스위스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가 총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1%, 상위 10%는 국내 총 자산의 52.8%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7월 발표된 OECD의 ‘고용 전망 2015’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 기준으로 국내 임금소득 상위 10%의 임금이 하위 10% 임금의 5.83배로 조사대상국 중 임금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 소득을 버는 노동자 비율도 14.7%로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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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회피 단속이 첫 과제

옥스팜은 세계 부유층에게 만연한 조세 회피만 적발해도 부의 불평등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 단체는 부자들이 조세피난처에 쌓아놓은 재산이 7조6000억달러(약 9218조원)에 달하며 이 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만 제대로 세금을 물어도 매년 1900억달러가 걷힐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애플과 구글 등 기업들의 조세회피도 규제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조세 회피로 개발도상국에 끼치는 세수 손실만 매년 1000억달러에 달합니다. 2000~2014년 사이 조세피난처에 들어간 기업 투자금은 4배로 늘었습니다.


■임금 올리고 최고경영자와의 보수 격차 줄여야

옥스팜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최고경영진의 보수와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미국 35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 보수는 2009년보다 54.3% 늘어난 평균 1630만달러(약 197억원)입니다.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노동조합회의(AFL-CIO)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P500 상장기업 최고경영자의 2014년 평균 연봉은 1170만 달러로 직원 평균임금보다 331배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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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를 더 넓게 보면 1978년 이후 2014년까지 최고경영자 보수는 997.2%가 오른 반면, 일반 노동자의 경우 10.9% 상승에 그쳤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은 실질임금 상승이 노동생산성 향상에 미치지 못해 제 몫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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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가 목소리 내야

옥스팜의 보고서는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이달 20일~23일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맞춰 발표됐습니다. 부자들의 사교 모임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각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이 행사에 참석하는 만큼 이들에게 불평등의 현실을 알리고 그 개선을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는 의도입니다. 정치, 경제 지도자들의 자각과 행동도 중요하지만 99%가 자신을 대변할 정치 세력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변화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스위스청년사회주의자(JS)가 13만명의 서명을 받아 최고경영자의 보수를 기업 내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12배 이내로 제한하는 ‘임금평등을 위한 1:12’ 법안을 국민투표에서 부쳤습니다. 정부와 경영계, 우파 정치인들은 이 법안이 스위스 경쟁력을 해치고 기업의 해외 이탈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비록 이 법안은 2013년 11월 국민투표에서 찬성 34.7%로 부결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최고경영자의 보수가 합리적인지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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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야당인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은 16일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생활임금보다 적은 보수를 줄 경우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최고경영자의 보수가 해당 기업 내에서 가장 낮은 보수를 받는 사람의 임금의 일정 배수를 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l_2016011801002518500200835.jpg 국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이 지난해 10월 30일 스코틀랜드 퍼스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노동당 컨퍼런스에 참석해 기조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by Jeff J Mitche


영국 경영자 단체인 ‘관리자협회’의 사이먼 워커 사무총장은 이 주장에 대해 “완전히 정신나갔다. 진지한 정치인이라면 이런 이상하고 보통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제안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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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의 반발 속에서도 코빈이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은 영국 내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이들이 새해 들어 닷새만에 영국 평균 임금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영국 FTSE 100지수에 올라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보수가 지난해 거의 50%가 뛴 반면 임금 노동자들의 보수는 2만7200파운드에서 2만7645파운드(약 4824만원)로 고작 445파운드 오르는데 그쳤습니다.


■1%에 유리한 시스템을 바꿔야

불평등 해소는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합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는 최상위 계층으로의 소득 집중이 정치·경제 시스템을 그들에 유리한 형태로 바꿔 사회 전체의 복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OECD는 2014년 12월 ‘불평등과 성장’ 보고서에서 소득 불평등이 인적자본 축적을 막고 하위 계층의 교육 기회를 줄여 계층간 이동과 기술 발달을 막아 성장률을 떨어뜨린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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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론>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엠마누엘 사에즈 UC 버클리 경제학 교수는 금융규제 완화, 감세 정책과 함께 노동조합 약화를 소득 불평등의 원인으로 거론했습니다. 적극적인 조세정책과 복지로 저소득 계층의 소득을 늘리고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성장 동력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글은 경향신문 온라인 기사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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