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ve Pound

BETWEEN EIGHT 에피소드 7

by designwalkers

W 업체는 빈티지 의류를 레퍼런스로 자주 활용한다. 특히 흔히 ‘아메카지(아메리칸 캐주얼의 일본식 줄임말)’라 부르는 스타일의 근본 중 하나인 ‘RRL’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RRL은 폴로 랄프로렌의 상위 라인으로, 창립자 랄프 로렌(Ralph Lauren)과 그의 아내 리키 로렌(Ricky Lauren)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랜드다. 물론, 출처를 알 수 없는 낯선 빈티지 브랜드를 가져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먼저, 나는 빈티지 의류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구제, 유즈드 클로스, 세컨핸즈, 빈티지라 칭하며 중고 의류를 사고판다. 통상 비슷한 맥락에서 혼용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구제나 세컨핸즈가 단순히 새 옷이 아닌, 말 그대로 일정 기간 누군가 입었던 옷을 의미한다면 빈티지 의류는 결이 조금 다르다. 빈티지에는 지금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봉제 방식과 소재, 그리고 그 시절의 감성이 깃들어 있다. 단순히 흐르는 시간에 맞물린 유행과는 다르며, 시대적 배경과 의류의 발전 과정이 담긴 하나의 ‘유산’과 같지 않을까.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옷들이 그렇다. 1850년대 골드 러시(Gold Rush) 때, 튼튼한 워크웨어, 특히 주머니가 잘 찢어지지 않는 바지가 필요했던 광부들을 위해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가 만든 리벳 달린 청바지처럼 말이다.


나는 특히 방수 고무와 가죽을 결합한 독특한 디자인의 ‘빈 부츠(Bean Boots, 일명 덕 부츠)’를 처음 만든 ‘엘엘빈(L.L.Bean)’의 마운틴 파카나 필드 재킷을 좋아했다. 또한 60/40 크로스 원단을 개발해 현재 마운틴 파카 디자인의 원류로 불리는 ‘시에라 디자인(SIERRA DESIGNS)’의 아우터, 빨간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체크무늬가 상징적인 ‘울리치(WOOLRICH)’의 헤비 울 재킷 등을 찾아 입기도 했다. 아메리칸 아웃도어의 시작이라 해도 무방한 브랜드들이다.


엄청난 마니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즐겨 입던 시기도 있었다. 그 훌륭한 옷들은 여전히 멋지고 의미 있지만, 현재의 내게는 입고 싶지 않은 옷들이 되어버렸다.


대표이사로 10년 이상 운영했던 사업은 끝없이 추락하다 결국 폐업 수순을 밟았다. 성실했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내게는 막대한 부채와 아주 적은 현금만 남았다. 실패한 오너로서 기존의 인간관계를 피해 존재감마저 지우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다소 뜬금없지만, 그 오랜 시간 묵묵히 내 옆을 지켜준 H에게 깊이 감사한다. H에 대한 이야기는 훗날로 미뤄두기로 하고,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동시에, 지치지 않는 삶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이 나의 첫 번째 실패기였다.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좌절감에 무릎 꿇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 패배자 코스프레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경희대 앞에서 여성 보세 의류 매장을 운영하던 HR 형의 연락은 내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는 대입 종합반 학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한 살 터울의 형이다. 입시 시절부터 유독 나를 아껴주었고, 지금까지도 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잠시 그 시절 이야기를 하자면, 고3 때 취업을 핑계 삼아 학교 대신 학원으로 등원하며 수능을 대비하던 때였다. 종합반의 일과는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오전 9시 1교시를 시작으로 오후 6시에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종합반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YL은 시인을 꿈꾸던 녀석이었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건 녀석이 했던 말이다. “YK야, 비가 오니까 내 마음이 씻긴다.” 지금 들으면 별 감흥이 없을지 몰라도, 감수성 예민하던 그 시절엔 그 말이 꽤나 울컥하게 다가왔었다. 녀석이 직접 쓴 시를 책상 옆 벽에 붙여두면, 나는 그 옆에 옷 그림을 그려 나란히 붙여놓곤 했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다. 패션에 그토록 무심했던 내가, 패션에 뜻도 전혀 없었던 그때 왜 하필 옷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걸까? 게다가 난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다시 HR 형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형은 경희대 앞 상권이 나쁘지 않고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매장 운영으로 생계는 물론 어느 정도 저축도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나 역시 수중에 남은 작은 자본으로 권리금이 없는 허름한 철물점 자리를 계약했다. 이후 2주간 직접 인테리어에 매달린 끝에 마침내 매장을 열게 되었다.

매장은 HR 형의 매장이 있는 메인 상권과는 다소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아주 오래된 단층 건물이었다. 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나는 보세 의류 대신, ‘파이브파운드’라는 이름을 내걸고 구제 의류를 판매하기로 했다.


일산 식사동 구제 골목은 예전부터 자주 찾던 곳인데, 그 무렵엔 매우 저렴하게 도매를 겸하는 곳이 많았고 그 주변으론 도매만 전문으로 하는 곳들도 있었다. 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나는 그곳에서 구제 의류를 사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빈티지 의류를 즐겨 입긴 했지만, 철저히 내 취향보다는 20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으로 매장을 채웠다. 또한 파이브파운드라는 상호에 걸맞게 모든 제품을 균일가 ‘만 원’에 판매했다.

여름엔 셔츠나 스커트, 짧은 데님 팬츠가 주를 이뤘고 겨울엔 니트와 아우터로 매출을 올렸다. 특히 여름철 셔츠 소매를 잘라 슬리브리스(민소매) 형태로 리폼한 제품들이 인기가 좋았다.


위치가 외져서인지 처음부터 장사가 잘되진 않았다. 게다가 당시는 빈티지가 그렇게 유행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서히 단골이 생기고 경희대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외대 학생들, 특히 한국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 단골들도 늘어났다. 판매하는 상품이 뛰어나거나 내가 장사를 잘해서라기보단, 경희대 근처에서 구제 의류를 취급하는, 그것도 저렴하게 판매하는 유일한 매장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 시간대를 피해 아침 6시가 되면 집을 나섰다. 누나의 차를 빌려 일산 식사동으로 향했다. 내 차는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처분한 지 오래였다. 매장 오픈 시간인 오전 11시 전까지 물건을 사입해 돌아오려면 그 시간도 빠듯했다. 식사동에 도착해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나면, 비로소 전투 준비가 끝났다.


이곳의 도매처는 모두 창고형 매장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 수입된 중고 의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 그리고 동네마다 있는 헌옷 수거함의 물건을 걷어 판매하는 매장이다. 수입 의류 역시 각 나라의 헌옷을 수거해 온 것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지만, 두 곳의 가격 차이는 분명하다.


혹시 산처럼 쌓여 있는 옷더미를 본 적이 있는가? 흡사 쓰레기 처리장에 쓰레기가 쌓인 모습과도 같다. 나는 겹겹이 쌓인 그 옷들을 파헤쳐가며 판매할 옷을 찾고 또 찾는다. 그 더미 속에는 우리가 보통 입는 옷부터 올이 나간 스타킹, 속옷, 양말까지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다.


맞다. 당연히 쌓여 있는 옷들은 입다 버린 것들이다. 냄새는 기본이고 별의별 이물질이 묻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추운 겨울은 그나마 괜찮지만, 더운 여름이면 구제 옷 특유의 냄새가 온 창고를 가득 메운다.

냄새는 익숙해져 참는 데 문제가 없지만, 멘탈이 흔들리는 경우도 잦다. 주머니에서 담배꽁초가 나오거나, 날카로운 무언가에 손을 다칠 때가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건, 하의에 피가 묻어 있는 경우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물건을 하러 가는 그 시간이 점점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마치 쓰레기 더미 속으로 나 자신을 던지는 것 같은 그 시간이 끔찍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상황이 나아지고는 있는 건지, 어떤 변화를 줘야 하는 건지, 과연 내가 잘하고 있기는 한 건지…….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의욕은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특별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18개월이 흘렀을 무렵, 나는 다시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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