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새는 글 세 번째
며칠 전 아침 샤워를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은 나완 다르게 특별한 멘토가 있을까?" 나에겐 삶이 힘겨울 때나 진지한 조언이 필요할 때, 혹은 위로가 필요할 때 그 마음들을 열어 보여줄 이는 H 단 한 명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삶의 동반자이지, 엄밀히 말해 ‘멘토’라고 부르기는 어렵겠다.
그럼 또 다른 이가 있을까? 혹은 있었는가? 되짚어 보면 그렇지 않다. 나의 문제인가? 환경의 문제인가?
나의 문제인 거라면 무슨 문제일까? 어려서부터 독단적 성향 때문인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혹은 공감 능력의 부재인가? 공감 능력의 부재는 어디서 오는가?
H를 만나고부터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란 걸 알았지. 그전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도대체 공감 능력이란 게 뭘까? 어릴 적 힘들어하는 내게 "힘들겠다. YK~ 나 같아도 힘들 거 같아. 네 맘 이해해."라고 위로를 건넨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내 상황이 아닌데 어떻게 이해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건 거짓이지."라고 친구의 호의를 뿌리친 적이 여러 번 있다.
마이너 한 공감 능력이 아닌가?
이런 성향이다 보니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던 거 같다. 어쩌면 학창 시절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한 잦은 이사와 전학은, 깊은 교우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았다는 핑계로 자기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방송에 나와 학창 시절 은사님이 내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라든지 최고의 멘토 아버지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모습 등은 나와는 큰 거리감이 느껴졌었다. 어찌 보면 위인전에 나온 여러 훌륭한 분들을 따라갈 수도 있었겠지만, 독서와 불편한 관계를 만든 것 또한 내 선택이었다.
도대체 의지할 수 있는 멘토가 있다는 건 어떤 걸까?
15년 전, 10년간 대표로 운영했던 첫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회사는 공중분해 되었으며,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함께 일할 당시에는 그저 ‘내가 급여를 주는 직원’이라는 생각이 전부였던 시절인데, 시간과 함께 여러 경험을 거치며 내가 정말 미숙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몇몇 후회되는 기억들이 세포 분열하듯 늘어나며, 그때의 모든 기억이 후회로 가득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아닌, '후회가 후회를 문다'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 이후에도 구제 매장 ‘Five Pound’를 운영할 때 함께 일한 파트타임 스태프, 여성복 매장 ‘URBAN CORNER’에 근무했던 직원, 도매 매장을 서포트했던 매장 직원, 디자이너 등 몇몇 동료가 내 곁을 지나갔지만 특별히 변한 건 없었다.
지난 3년간 홀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해가며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깊은 생각은 ‘그럼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생각 또한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 같다. 짧지 않은 시간 혼자 일했다는 건 어찌 보면 그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했던 상황이었고, 특별히 업무를 늘릴 계획이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가볍게 미래를 상상해 보곤 한다.
가상의 미래엔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넓혀 가게 된다고 설정하고
'회의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하면 즐겁겠다',
'직원에게 어떤 방향으로 업무를 지원할지',
'급여에 즐거움을 별도로 추가해 줄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함께 커간다는 걸 증명하지?',
'그 중심에 서 있을 '나'의 태도와 모습' 등
가상의 미래란 상상에 이어진 상상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그 상상의 꼬리들은 서로 교차하며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게 되지 않나, 여러 경험의 기억들이 50세가 되어서야 내가 아주 조금은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나를 이끌어줄 멘토가 있었다면 내 지금 모습은 어땠을까?'
라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