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EIGHT 에피소드 6
내가 처음 만든 옷은 필나염 원단으로 제작한 후드 집업이었다. 당시에는 필나염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옷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했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과 같은 프로모션 업체를 통해 첫 후드 집업을 제작했고, 운영하던 매장에서 판매했다.
그 후에는 어찌어찌해서 억지로 그래픽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판매했고, 판매도 잘되었지만 사실 옷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언뜻 보면 티셔츠를 만드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여길 것인데, 의류 품목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아이템이면서, 누구나 옷장 안에 여러 벌은 가지고 있는 구조적으로도 간단한 의류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브랜드를 시작하는 이들이 가장 쉽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품목이 '다이마루'인데,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티셔츠와 후드를 생각하면 된다. '다이마루'는 동대문이나 봉제 공장에서 사용하는 현장 용어로, 커다란 원통형 기계로 실을 고리처럼 엮어 튜브 형태로 짠 신축성 높은 니트 원단을 의미한다. 부드럽고 활동하기 편해 티셔츠, 맨투맨, 후드 등 편안한 일상복 제작에 가장 널리 쓰인다.
원단 시장에 가보면 스와치에 원단 폭이 '36x2', '26x2' 등으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튜브지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원단들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 튜브지를 갈라 넓게 펼치는 '개폭' 작업을 거쳐 사용한다.
반면, 미국의 AAA, 프로클럽, 길단 등과 같은 브랭크 티셔츠 중에는 '와끼(옆선)'가 없는 상품들이 있는데, 이는 사이즈별로 각기 다른 크기의 원통형 기계를 사용해 원단을 통으로 짜내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특히 웨어하우스(Warehouse & Co.), 리얼맥코이(The Real McCoy's), 휴먼메이드(HUMAN MADE)와 같이 투박하고 거친 '미국 맛'을 살리기 위해, 현대적인 대량 생산 방식 대신 옛날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 단어 외에도 현장에서 쓰이는 일반적인 용어의 99%가 일본어 잔재인 것이 현실이다. 물론 '환편'이라는 정식 한국어 명칭도 있다. 환(고리) 모양으로 편직했다는 의미지만, 현장에선 거의 쓰이지 않고 특히 동대문 디자이너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옷이란 게 그렇다. 디자인이 어떻든, 패턴이 어떻든 우선 정해지는 건 원단이다. 우리가 편하게 입는 면 티셔츠도 생각보다 원단의 종류가 많고, 특히 여성복은 남성복에 비해 훨씬 다양한 원단을 사용한다. 셔츠의 경우 원단을 보고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디자인을 정한 다음 원단을 찾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지만, 기본 티셔츠는 대개 어떤 형태의 디자인인지 결정하고 나서 원단을 수배한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현재 여성복 프로모션 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모든 기준은 여성복 관점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여성용 티셔츠의 디자인은 남성복에 비해 생각할 게 많은데, 우선 핏을 기준으로 보면 슬림 핏, 저스트 핏, 루즈 핏으로 크게 나뉘며, 여기에 다양한 디자인 요소가 더해진다. 또한 두께와 소재에 따라서도 실루엣이 달라지며, 단순히 '면 티'나 '폴리 티' 정도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소재는 그 종류가 무수히 많다.
많은 다이마루 원단 중, 티셔츠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본 원단은 '면'이다. 우선 언제 출시할지에 따라 어떤 두께의 원단을 쓸지 정해야 하는데, 나와 비슷한 캐주얼 타입의 일반적인 동대문 도매 업체들은 봄 상품으로 '30수 면'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좀 더 러프한 무드의 브랜드라면 '20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아예 살짝 광택도 돌고 하늘하늘한 느낌을 내려면 '40수'를 쓰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는 원단을 짜는 실의 두께를 말하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실이 두껍다는 뜻이다. 남성복의 경우 20수, 16수, 10수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며, '30수 2합', '48수 2합'과 같이 가는 실 두 개를 합사해서 사용하는 원단들도 있다.
편직 후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면은 표면이 살짝 거칠고 푸석하다. 이 상태 그대로 옷을 만들면 단가는 가장 저렴하겠지만, 요즘은 몇 가지 가공을 더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미가공 원단으로 만든 티셔츠는 세탁 후 옷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덤블 워싱이나 텐타 가공 등의 작업을 통해 원단을 미리 수축시켜 놓곤 한다. 또한 바이오 워싱이나 실켓 가공을 통해 표면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만들기도 하고, 다잉 작업을 통해 색다른 컬러감을 입히기도 하며, 피치나 기모처럼 표면을 긁어 보온성을 높이기도 한다.
면 100의 일반 면 원단을 사용한 티셔츠는 스판사가 섞여 있지 않은, 텐션(신축성)이 없는 소재이기에 보통은 기본 저스트 핏이나 여유 있는 루즈 핏으로 방향을 잡는다.
핏이 정해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에리(넥라인) 부분은 몸판과 넥라인을 합봉한 가장 기본 모양인 '입술 라인'으로 할지, 에리를 감싸는 형태인 '랍바'를 칠지 결정해야 한다. 에리 합봉 부분에 스티치는 하나만 넣을지 두 개를 넣을지, 아니면 아예 넣지 말지 고민해야 한다. 보통 에리는 몸판에 쓴 것과 동일한 원단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때론 같은 컬러의 신축성이 좋은 스판 원단, 후라이스 원단, 골지 원단을 쓰기도 한다. 많이 알고 있는 유니클로 기본 크루넥 티가 후라이스 원단으로 랍바를 친 디자인이다.
소매는 겉에 두 줄의 스티치가 보이는 '삼봉'으로 처리할지 고민하는데, 좁게 할지 넓게 할지도 정해야 한다. 혹은 공임이 비싸더라도 숙련된 재봉사들만 가능한 '사시(링킹)'로 작업할지도 고민한다. 밑단에 트임은 넣을까? 트임을 넣는다면 앞뒤 기장 편차를 줄지 말지, 아니면 둥글게 굴릴까? 허리 라인도 살짝 잡아 줄까? 등판에 절개를 넣고 스티치를 때릴까? 등등.
기본 티란 게 단순한데, 단순하지 않다. 모든 아이템이 다 그렇겠지만, 기본 티셔츠 하나만 해도 이처럼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좋은 기본 티셔츠는 말 그대로 어느 아이템과도 매치가 편하고, 레이어링 하기에도 좋아 휘뚜루맛뚜루 입을 수 있는 상품으로, 무엇보다 취향을 크게 타지 않는다. 나 역시 마음에 쏙 드는 기본 티셔츠를 발견하면 흰색은 기본으로 2~3장씩 쟁여 두고, 다른 컬러도 추가로 구입하곤 한다. 또한 판매가 잘된 기본 티는 원단 두께를 달리해 이어서 판매하기에도 좋다. 이미 검증된 상품이라는 의미다.
"잘 만든 기본 티셔츠 하나, 열 가지 아이템 부럽지 않다."
"올 봄엔 무슨 티를 만들어야 하지?"
[용어 설명]
필나염 : 원단 한 필(roll) 전체에 나염을 찍은 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