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괴랄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입맛을 가진 저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제 입에는 만족스러운 요리였습니다. 자신감을 얻어 가족에게도 만들어 주었는데, 맛을 본 식구들의 표정이 참 가관이더군요. 어떻게 이런 게 맛있을 수가 있느냐며, 취향 참 독특하다는 핀잔만 잔뜩 들었습니다. 옷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어떤 옷을 만들고 싶은가요?”
이 질문은 사실 너무 광범위해서, 선뜻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관점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현재 프로모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마주 앉아 제작 미팅을 한다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가상의 업체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식이죠.
Q. 어떤 옷을 만드실 건가요?
파인 다이닝을 목표로 하시나요? 아니면 부담 없이 즐기는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싶으신가요? 패션으로 뒤집어 말하면, 소수 코어층을 위한 하이패션을 지향하시나요, 아니면 누구나 편하게 입고 즐길 수 있는 대중 의류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이러한 포지셔닝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초기에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옷을 만들어 파는 행위 또한 엄연한 산업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전자를 택하셨다면, 그에 걸맞은 본인만의 철학, 노하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는 이미 갖추고 계신가요? '어떻게든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팔릴 거야'라는 생각은 애초에 접는 게 좋습니다. 제품을 판매하기는커녕 그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온갖 문제가 터져 나올 테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후자인 ‘평범한 한 끼’가 초보자에게 만만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입고 싶은 옷을 만들 건가요, 아니면 팔리는 옷을 만들 건가요?”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잘 팔린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결과는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선 제 요리 이야기처럼 내가 입고 싶다고 남들도 입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바야흐로 만드는 것보다 잘 판매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만, 생각만큼 계획대로 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운 좋게 잘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브랜드가 론칭 후 단 한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처절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현재의 무드에 잘 녹여내는 건 어떨까요? 여러 답 중 하나일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넓은 시선으로 ‘입고 싶은 옷’과 ‘만들어야 하는 옷’ 사이의 균형이라는 외줄 타기에 수많은 고민과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서 이 길에 들어서려는 것이니까요.
Q. 만드실 옷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반복되는 일상 속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본인의 개성과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도록 스트릿 한 감성과 특별함을 내세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브랜드입니다.”
00셉이나 무 00 등의 플랫폼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의 흔한 소개글입니다. 도대체 이 글만 봐서는 무슨 콘셉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뜬구름 잡는 미사여구만 늘어놓고는, 마치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윙크하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죠.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레퍼런스 자료 몇 가지를 보여주며 이런 콘셉트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이와 비슷한 옷 몇 벌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레퍼런스만 수정해서 상품을 만들어가다 보면, 한 시즌이 지난 후의 모습은 일관성 없는 룩이 되기 십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처음 생각했던 그림과는 다른 길로 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파열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옷을 누가 입을 것인가? 내 옷을 입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가? 이른바 ‘타깃 페르소나’가 가장 구체적으로 정의되어야만 합니다.
단순히 어느 나이대에,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디에 사는지 같은 기본 기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떤 취미 생활을 하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며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등 상상력을 총동원해 우리 브랜드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막연한 상상이란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상상의 공간으로 살짝 밀어 넣어줄 영화, 도서,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른 이가 훌륭하게 상상해 놓은 유산들에 나의 생각을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단순한 카테고리가 아니라, '영화 <로키>에 감명을 받아 복서에 대한 굉장한 로망을 품고 사는, 마포 합정동의 20대 개발자'와 같이 구체적인 페르소나 한 명을 먼저 세워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그럼 복싱에 로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복을 만들어야겠네?'라는 1차원적인 구상으로 끝내지 마세요. 디자이너가 직접 합정동 20대 개발자가 되어 상상하는 겁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 등장인물, 음악 등 단순히 ‘복서’라는 주인공에만 집중하지 말고 우리가 만든 페르소나의 입장에서 록키에 무엇이 이토록 감명을 주었을까 고민하며 생각을 넓히는 겁니다. 링 위에서 경기하는 복서만이 아닌, 트레이너, 매니저, 열광하는 팬들까지 시야를 넓히는 거죠. 그리고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까지 가져와 현재로 디벨롭시켜 보는 겁니다.
한마디로 나만의 ‘상황극’을 짜고, 그 극에 맞는 의상을 상상하며 전체적인 룩을 구상해 보는 겁니다.
물론 생각보다 쉽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상상하다 보면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즐거워질 수 있습니다.
Q. 만드실 옷은 어떻게 판매하실 건가요?
처음 미팅을 하다 보면 디자인이나 제품에 대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뒤, 미팅이 끝날 무렵 결론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그래서 어디에, 어떻게 팔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재화가 그렇듯 옷 역시 판매가 되어야 이익이 생깁니다. 그 이익금은 다시 생산비로 녹아들어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굴러가게(Running) 하고, 나아가 브랜드의 볼륨을 키우는 동력이 됩니다.
'단순히 만들기만 하면 어떻게든 판매되겠지'라는 생각은 비즈니스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직접 매장을 오픈할지, 자사몰에서만 판매할지, 혹은 외부 유통 플랫폼으로 확장할지는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기준점이 됩니다. 판매처에 따른 수수료 차이는 브랜드의 가격 정책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들고 싶은 건 ‘그냥 예쁜 옷’인가요, 아니면 ‘살아남는 브랜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