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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Mar 24. 2021

되풀이되는 미국의 조직적 인종차별

* 이 글은 일 년 단위로 발행되는 모교 교지 50호(2020년)에 실은 기사입니다. 최종 탈고는 2020년 10월 30일에 하였습니다.




  올해 여름 미국 사회는 또 한 번 대규모의 반인종차별 시위로 혼란에 빠졌다. 이번 시위의 기폭제가 된 것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이 사망한 사건이다.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인 데릭 쇼빈이 흑인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오랫동안 눌러 숨지게 했다. 플로이드는 체포 당시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고 사망 직전까지 여러 번 숨이 막힌다고 호소했다. 이 과정이 촬영된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세계 곳곳에 분노를 일으켰다. 


  어느 나라에서든 인종차별은 고질적인 인권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이 오랫동안 되풀이되고 있다. 노예제 폐지 이후로도 근절되지 않는, 공권력의 명분하에 합법화하는 흑인에 대한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이와 함께 플로이드 사태로 촉발된 반인종차별 운동의 여러 양상과 한계도 함께 들여다보자.



공권력을 통해 합법화되는 인종차별의 역사

출처 : 연합뉴스

  미국의 역사에서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흑인에 대한 ‘조직적 인종차별(systemic racism)’은 여러 형태로 변모되며 이어지고 있다. 1865년 12월, 노예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미국 수정헌법 13조가 제정되었다. 하지만 불과 약 10년이 지난 1876년 미국 남부 11개 주에서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법’이 시행되었다.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인종 분리’를 내용으로 한 이 법에 따라 흑인은 식당, 화장실, 극장, 버스 등의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분리되어 열등한 취급과 괴롭힘을 당했다. 이후 치열했던 흑인 민권 운동의 결과로 시민권·투표권법이 통과되어 약 1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짐 크로법이 종료되었지만 차별은 계속되었다.


  이후 수정헌법 13조에 명시된 ‘범죄자의 처벌은 예외로 한다’는 사항이 악용되어 흑인을 범죄자로 잡아들여 그들의 노동을 이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노예제를 통해 흑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으로 경제 기반을 다져온 미국 사회가 또 다시 노예제 폐지 이후 노예 노동을 대체할 부당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닉슨 정부를 시작으로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많은 흑인이 감옥에 수감됐다. 마약과의 전쟁의 이면에는 인종차별에 대한 통제가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이후 레이건 정부 때는 흑인의 대량투옥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1980년대 초 빈민층 사이에서 유행한 마약 크랙(crack)에 같은 시기 함께 유행한 코카인(cocaine)보다 더 무거운 형량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빈민층의 흑인 다수가 ‘종신형’을 살게 되었다. 


  또한 미국 언론에서는 흑인이 수갑을 차고 체포되는 장면들을 지나치게 많이 노출하여 흑인이 범죄자라는 인식을 더욱 견고히 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소년 5명이 강간 혐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감된 ‘센트럴파크 강간 누명 사건(1989년)’이 발생하기도 했고, 흑인 인권운동가들이 언론에 ‘위험한 범죄자’로 묘사되며 수감되는 사건들도 이어졌다. 당시 수감된 대표적 인물로는 아사타 샤커, 존 에드거 후버, 안젤라 이본 데이비스 등이 있다. 이렇게 과거 흑인을 무턱대고 범죄와 연관시키는 인종차별적 인식은 현재에도 이어져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 사건들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흑인의 수감 비율도 여전히 높다. 미국 사법통계국에 따르면, 흑인 남성은 대략 미국 총인구의 6.5%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수감 인구의 40.6%를 차지하고 있다(2016년 관련 다큐멘터리 자료 기준).


  올해 플로이드 시위 때 나타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이하 BLM) 운동도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 운동은 이미 2012년 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소년 트레이본 마틴을 총격 살해한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이 2013년에 무죄 선고를 받은 것에 반발하며 시작되었다. 2016년에 등장한 ‘흑인이 미국에서 살해당할 수 있는 23가지 방법’을 제목으로 한 영상 캠페인을 보면,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 역사를 더욱 잘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영상에서는 과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23명의 이야기를 한다. 통근열차 타기(오스카 그랜트 3세), 친구와 집까지 걷기(그렉 건), 후드티 입기(트레이본 마틴) 등 그들이 경찰에게 살해된 황당한 이유가 나열된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 문제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흑인 가정의 부모는 자녀에게 경찰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한다. 흑인이 운전을 할 경우 백인에 비해 경찰에게 사소한 이유로 빈번하게 과한 검문을 받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Drive While Black’도 만들어졌다.



다양한 공간으로 퍼져나간 감동의 물결  

출처 : AFP

  플로이드가 사망한 다음날, 해당 사건이 일어난 미니애폴리스에서 먼저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후 5일 만에 미국 전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고 6월 1일에는 영국, 독일, 덴마크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뉴스에는 폭동의 양상을 띠는 시위 모습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으나, 실제로는 평화시위가 대거 진행되었고 시위 현장 곳곳에서 감동적인 모습들이 포착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롭게 행진만 하는 시위 행렬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인 ‘무릎 꿇기’ 행동에 경찰도 동참했다. 경찰이 평화 시위대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모습도 시위 현장에서 계속 목격되었다. 평화 시위대는 폭동을 막고자 계속해서 평화를 지향하고 폭력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인 테런스 플로이드는 시위 현장에서 평화시위를 촉구하는 스피치를 했다. 또한 거리들마다 폭동의 흔적으로 남은 잔해를 치우는 자원봉사자들이 등장했다.


  시위 현장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은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발히 일어났다. BLM 해시태그 운동은 SNS를 통해 세계 곳곳에 대대적으로 퍼져나갔다. 다양한 국적의 유명인과 넷플릭스, 나이키, 구글 등의 유명기업이 참여하면서 반인종차별 인식을 더욱 확산시켰다.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스포츠계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 세간의 관심을 더욱 끌었다. 메이저 리그 사커(북미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의 필라델피아 유니언 팀 선수들은 7월 9일 시즌 재개 후 첫 경기에서 BLM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이들은 곧 티셔츠를 벗어 자신의 이름 대신 ‘(조지)플로이드’, ‘(브레오나)테일러’ 등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들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플로이드 시위의 일환으로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팀과 미국 프로농구리그(NBA)의 밀워키 벅스 팀 등의 선수들이 훈련을 중단하거나 경기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는 여러 프로스포츠 경기들이 줄줄이 무산되었다.

 


시위의 메시지를 흐려버린 한계점

출처 : Pixabay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위는 대중의 전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각국의 언론은 폭동으로 혼란스러운 미국 거리의 모습을 보도하느라 분주했다. 6월 3일 기준으로 미국 전역의 140개 도시에서 방화, 기물 파손, 약탈 등의 폭동이 일어났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서에 불을 질렀고 근처 세인트폴에서는 상점 2백여 곳이 약탈당했다. 애틀랜타에서는 CNN(미국의 뉴스 방송사) 내부까지 시위대가 진입해 폭발물을 던지는 일도 발생했다. 거리들마다 불타고 있는 경찰차와 깨진 상가 유리창 조각 등 아수라장의 모습이 펼쳐졌다. 결국 뉴욕과 LA를 포함한 미국의 40개 이상의 도시에 야간 통금 조치가 내려졌다.


  아시아인 인종차별도 논란이 되었다. 지난 6월 4일에 열린 플로이드 추도식의 연설문에서 흑인, 백인, 라틴,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언급된 반면에 아시아인만 빠져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 또한 심각하다. 도리어 흑인이 아시아인에게 폭행 등의 인종차별적 행위를 가하는 사건도 최근까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더불어 올해는 팬데믹을 일으킨 코로나19가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권부터 퍼져나가면서 비아시아권 나라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행위가 더욱 심하게 일어났다. 이렇게 아시아인 역시 두말할 것 없이 인종차별의 당사자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 논의에서 아시아인이 배제된 것이다. 또한 폭동에 의해 많은 한인 상점들이 약탈 피해를 당했다. 한창 시위가 활발했던 6월 6일에는 150개의 한인 상점이 폭동으로 인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며 신고했다. 폭동의 양상으로 번져 미국 사회를 위협하고, 반인종차별을 말하는 자리에서 아시아인 인종차별이 또 일어난 점은 이번 시위의 분명한 한계점이다. 이는 시위가 그토록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흐리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 정부는 폭동을 강력하게 진압하겠다며 이번 시위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주 방위군은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대응했고 장갑차, 헬기, 사이렌 소리가 거리를 채웠다. 문제는 공권력이 평화 시위대를 향해서도 탱크로리와 경찰차를 돌진시키는 등의 과잉진압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미국 공권력의 주체들이 이번 사건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게 했다. 미국의 최근 역사에서 대부분의 폭동은 모두 경찰의 가혹행위로 촉발됐다. 폭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나 오랫동안 쌓인 분노가 과격하게 표출된 형태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무작정 폭동을 비난하기에 앞서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서 분명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늘 시위를 촉발시킨 사건의 가해자가 경찰이었다는 점에서 경찰이 조직적 인종차별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의미가 크다. 시위대는 이전 시위와 비교하여 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고 좀 더 조직적으로 행동했다. 이 같은 움직임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 있어서 더욱 발전적인 모습을 꾀하는 일을 지속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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