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학교에서 나눠준 갱지 위에 적힌 글자들을 모두 이해하기엔 어려웠다.
<가정환경실태조사>라고 크게 적힌 제목 아래에 정갈하게 나뉜 칸에 무언가를 가득 채워가야 했다.
"엄마 부모님 직업엔 뭘 써?"
"그냥 자영업이라고 써"
"부모가 바라는 장래희망은?"
"넌 뭐 하고 싶은데"
"어... 선생님? 작가?"
"작가... 돈 못 버는데. 네 거랑 똑같은 거 써 그냥"
살면서 이따금씩 저장면이 떠오른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모 직업란에 회사원이라고 적는 아이들의 화이트칼라적 우아함이 부러웠고 가끔은 자식에게 과한 직업을 바라는 부모의 관심이 내게는 없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적당한 결핍과 적당한 외로움으로 큰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장래희망란에 글 쓰는 일에 관한 직업이 사라지지 않았다.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가끔 기자 라든가 평론가, 방송작가라는 모습으로 변모하기도 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사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게 수치와 직결되는 작업이라 지금까지 배설한 모든 글은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많지도 적지도 않게 살아보니 수치도 내게 애틋하기 그지없는 감정이고 부끄러움 덕분에 인간적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수치를 예뻐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쓰려고 한다.
뇌신경세포의 신호에 불과한 생각들을 구체화시키며 나는 더욱 인간다워지려고 한다.
그러니, 쓰는 행위는 나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위대한 약진인 것이다.
그것이 내일이면 허공에 주먹질할 흑역사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