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레가토

쉬어가는 글

by 무아솔

얼마 전 바를 나온 바리스타라는 이름으로 원데이 브루잉 모임을 열었다. 브루잉 모임을 열기 1주 전쯤부터는 스마트스토어를 열고 직접 쓰고 엮은 책을 판매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즈음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부끄러움. 껄끄러움. 무엇에 대한…? 내가 만든 작업물과 커리큘럼은 부끄럽지 않았다. 아쉬운 점들은 다음부터 조금씩 보완해 가면 되니까. 그것은 나의 지난 동료들과 나를 아는 커피 업계 사람들을 향한 죄책감에 가까웠다. 나는 바리스타가 아니었다. 바를 나왔다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뒤에 바리스타라는 단어를 욱여넣어서는 안 됐다. ‘바를 나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결국에는 그럼에도 바리스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싶어 붙인 사치스런 수식이었다. 내 안의 어떤 율법 같은 것이 나를 용납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기 싫은 건 피하는 활동이 어떻게 바리스타의 활동이며, 어떻게 오늘도 치열하게 한 잔의 커피 퀄리티를 위해 피곤을 삼키는 동료들과 같은 커피를 전하는 활동일 수 있느냐고. 현장에서 커피와 독대하고 시간과 체력의 사이에서 매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너는 정말 부끄럽지 않으냐고. 부끄러웠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내가 하려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일이 맞는지 나에게 자문하는 모든 시간이 내내 부끄러웠다.

내가 벌이고 있는 활동이 그리고 앞으로 벌여나갈 (아마도) 일반의 범주에서 약간 빗겨 나 있을 활동들이 지금은 커피 업계 바깥의 활동처럼 보이더라도, 나 역시 현장에 계신 분들처럼 ‘내가 느낀 커피’를 전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에서 바 너머로 점점 바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여정과 내가 바 바깥에서 내가 있을 바를 찾아 안으로 수렴해 가는 여정이 교차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그때가 오면 분명 다시 잘 지냈냐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반갑다고,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그 미래의 순간이 죽기 전 스쳐 지나가는 환상 같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그곳에 도달하면 영원한 안식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쓰지 않는 저울 세 개와 유리서버 세 개, 네 개의 찻잔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와 있다. 찬장과 하부장은 기존에 있던 기물들과 생활용품들로 여석이 없다. 여석이 없을 뿐 그들이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쓰임이 남았고,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쓰일 그곳과 그 순간이 당분간 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알알이 쌓여 멋지게 매듭지어진, 그들만의 울타리가.





legato(레가토)

: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매끄럽게 연주하라는 연주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