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 무목적의 카페

우리는 왜 커피를 할까

by 무아솔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어린시절의 9할을 빚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단연 선호하는 나라 역시 일본이다. 일본 만화작가,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이 보여주는 세계는 캐릭터와 서사, 연출의 층위가 깊고 다양하다고 느낀다. 굳이 비평적인 관점을 들이대는 수고를 거치지 않더라도,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그들은 그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을 쉽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일본에 대한 기본적인 나의 애정을 미리 밝혀두고자 함이다.


요즘 가타가나나 히라가나를 그대로 상호명으로 쓰는 카페를 심심찮게 만난다. 일본어 상호명을 쓰는 카페는 예전부터 많았지만 이자카야나 일식집이 아닌 이상 카페의 경우에는 일본어 상호명을 사용할 때 발음과 의미는 일본어이지만 한국어로 된 상호명을 써왔다. 작은 나무 간판에 떡하니 적혀 있던 일어를 보았을 때의 당혹스러움. 혼란스러움. 그것에 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그런 혼란함, 당혹감은 비단 일어 간판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언제부턴가 옛날 책, LP, 빈티지 소품을 활용한 카페들이 무한히 증식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카페가 몰려 있는 거리에 가면 한 집 건너 한 집은 대개 빈티지, 우드, LP, 옛날에 발간된 책으로 내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인적이 드문 골목을 걷다 만난 카페들은 더욱. 골목을 하염없이 걷다 그만 카페에 들어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만난 카페가 그런 곳일 때, 그때 느끼는 당혹감. 카페의 문을 열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다. 일상에서 분리된 그렇다고 아주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은 아닌, 적당히 일상의 익숙함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비일상의 신비를 품고 있는 곳. 주인장의 비밀스런 작업장에 들어가는 듯한 설렘, 기대감, 혹은 그 공간만이 가진, 내가 감히 흉내내지 못할, 소위 말해 ‘바이브’를 기대하는 마음. 요즘 같아서는 카페가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인지마저 의심이 든다.


내가 너무 비슷한 분위기의 카페만 돌아다닌 탓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각자의 고민과 이야기를 가진 공간인데 내가 성급하게 겉으로 보이는 몇 몇 요소에만 편협하게 집착하여 함부로 일반화하고 있는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다.


핸드드립이 주메뉴인 곳에는 대부분 LP와 오래된 책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로스터리도 있다. 그리고 그들 중 LP와 오래된 책, 소품을 셀렉하는 만큼 한 잔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곳은 정말로 소수... 소수다. 내가 방문한 날 어쩌다 추출이 잘 안 된 커피를 마셨을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어떤 맛이 로스팅 디펙트의 맛인지, 어떤 맛이 잘못 추출된 맛인지 혹시 모르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움으로 막막해지는 사람이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어떤 커피 대회를 본다. 커피 대회는 요즈음 규모부터 분위기, 형식, 평가방법 등에서 다양한 대회들이 많아졌다. 규모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어떤 커피 대회를 본다. 아는 분이 저곳에 출전했다고 했었다. 대회 분위기는 어땠을까. 저곳에 나온 선수분들은 어떤 눈과, 어떤 열기를 갖고 있었을까. 보고, 보다가, 영상을 끈다. 우리는 커피를 왜 하는 걸까? 커피 실력을 단련하고, 대회에 출전하여 대회 경험을 쌓고, 운이 좋으면 상위권에 랭크가 되고, 그런 것을 커피를 하는 이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커피를 하기로 한 이상 커피를 잘 하고 싶고 내가 잘하는 커피로 인정받고 싶기에 선택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어떤 결과에 가까운 것일 뿐. 커피 실력을 연마하는 것은 커피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며 커피 한 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일은 커피 하는 사람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커피'를 하겠다고 바에 선 이상 당연히 짊어져야 할 책임, 직업 윤리이다.


이런 대회를 우리는 왜 하는 걸까? 왜 여는 걸까? 뭘 전하고, 뭘 나누고, 뭘 말하고 싶어서?


내가 차나 술이나 다른 음식이 아닌 커피를 선택한 이유, 그 커피를 잘하고 싶은 이유, 그 커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그것에 대해 고민한 흔적. 그 고민을 하고 또 하고 계속 끈질기게 한 끝에 형성된 그 사람만의 고유성. 그 공간만이 가진 고유한 바이브. 그 고민과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고 고른 소품들, 구성한 메뉴, 추구하는 맛, 그리고 그 맛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끈질긴 정성.


카페는 문턱이 낮은 게 맞고, 마땅히 문턱이 낮아야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 의식없이 카페를 열어도 상관없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행하는 것을 끌어다 놓고 유명한 바리스타의 레시피나 유명한 로스터리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땡인 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카페를 한다는 건 커피를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커피를 하는 일은 결국 한 잔의 완성도를 몇십 번이고 재현해내는 열정과 의지이며 그리고 그 재현을 통해 세상과 사회에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는 일이다. 커피 하나 하는데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커피를 하고 있지 않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카페가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카페가 소설처럼 쓰는 이의 세계관이 깃든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커피를 잉크로 카페라는 이야기를 멋지게 직조해내는 것이 커피를 하는 일의 디폴트값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바람이 무색해졌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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