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개인이 운영하는 로스터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스물네 살 무렵이었다. 면접 날, 사장님과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사장님께서 했던 첫 마디를 아직도 기억한다. 커피 마셔요? 그 말이 나는 짧지만 강력한… 어떤… 고차원적인 의도가 담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네! 그럼요…! 좋아합니다! 사장님은 이후에 일정이 있냐고, 바쁜 게 아니면 천천히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바 안에서 밝고 환하게 웃는 예쁜 언니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로스터리라고 하면 지금도 독특하고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는 곳으로 생각되지만 2014년에만 해도 개인 로스터리는 그야말로 괴짜, 장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떤 범접하기 힘든 공간이었다. 작업실과 가게 그 사이 어딘가… 커피에 대해 어설프게 알고 문을 두드렸다가는 된통 혼쭐이 나고 쫓겨날 것만 같은…곳. 나의 편견일 확률이 높지만, 내가 말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개인 로스터리는 지금보다 방문객을 긴장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면접 날, 나는 당연히 잔뜩 얼어있었다.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주기 전까지는.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는 커피를 전혀 못 마시는 체질이었다. 샷을 절반(혹은 절반의 절반…의 절반…?)으로 줄인 달달한 라떼가 언니가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최대치의 커피였다. 사장님은 언니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커피숍에서 일하는데 커피를 못 마셔? 말이 되는 거야 이게..? 사장님이 나에게 ‘커피 마셔요?’라고 물어본 건 ‘설마 넌 아니지….?’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질문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장님은 나를 보내고 내가 썩 마음에 차지 않으셨다고 한다. 긴가민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느낌이어서 언니에게 방금 면접 본 친구 어떤 것 같냐고 물었더니 언니가 곧장 ‘인상 너무 좋던데요? 뽑으세요!’라고 말했고 그 말에 뽑기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그때 내 인상이 좋았을 리 없을 텐데. 4년에 휴학 2년까지 꽉 채워 다닌 대학을 중퇴하고 문예 창작과 재입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삶이 곪을 대로 곪은 여드름 같아서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그날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가져다주는 언니가 그렇게 환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참 환하다, 나도 이런 사람이 일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카페를 안전한 장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로 여기게 된 것은 그날의 언니의 미소 덕분이었다. 언니의 미소가 나를 카페라는 곳으로 초대해 주었다. 그리고 언니의 미소가 기준이 된 그날부터 나는 카페에서 나의 자리, 나의 존재에 대해 조금씩 회의감과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곳은 사장님이 로스팅만 관여하고 운영은 사장님의 처제분이 맡아 하는 곳이었다. 매니저 언니가 일을 한 지 꽤 지났을 무렵,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왔다.
일은 어때, 괜찮아?
언니는 화끈하고, 강단 있는 성격의 사람이었고 언니가 속삭일 때에는 대개 좋지 않은 일일 때가 많았다. 나는 작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다행이네. 아니, 다른게 아니고, 너한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도 고민이 좀 됐는데 그래도 네가 알아야 될 것 같아서.
그때 내 표정은… 짐작하는 그대로다.
나는 못 느꼈는데, 사장님이 그러더라고. 네가 잘 안 웃어서 걱정된다고. 나랑 얘기할 때는 잘 웃냐고 물어보시더라고. 나는 솔직히 모르겠거든? 네가 잘 안 웃는지. 근데 사장님 감각이 꽤 예리해… 그게 문제야. 그러니까 조금 더 웃어줘도 좋을 것 같아. 손님 대할 때도 우리랑 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해, 알았지?
이십 대, 뭘 해도 눈부신 그때에 내 입꼬리는 왜 그토록 천근만근이었을까. 이후에 다른 로스터리에서 일을 할 때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웃지 않을 때와 웃을 때가 딴 사람 같다고. 아니 누가 내 입꼬리에 쇳덩이를 달아놨나. 그거 좀 올리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웃을 줄 알았다면, 같은 생각을 다 지난 지금에야 뒤늦게 해본다. 잘 웃지도 못하면서 서비스업에 뛰어들게 하고, 잘 웃지도 못하는 사람도 점점 웃게 만들어 준 커피에게, 그 시절 내 입꼬리에 달린 쇳덩이를 적당히 눈감아준 사람들에게 나는 내 꿈의 밑천을 빚지고 있다.
아직은 카페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찾는 중이다. 여전히 어떤 오너가 되어야 할지, 어떤 공간을 꾸릴 수 있을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커피를 하는 일과 카페를 운영하는 일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커피로 무언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바를 나와서, 바를 넘어서, 바 없이도 바리스타로 사는 법이 찾아보면 있을 거라고. 다만 커피의 미세한 향, 맛에 집중하는 시간들이 모여 삶을 긍정할 힘을 얻은 것. 오직 그것만을 부적처럼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