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지금은 사라진 제퍼빈즈라는 커피숍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제퍼빈즈라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커피숍이었다. 홈페이지에 나온 설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커피와 바람이 무슨 상관이며, 회사의 가치관, 포부라고 하기에는 너무 모호하지 않나. 하지만 어중간한 심벌과 프랜차이즈 커피 생태계에서 다소 빗겨난 업계의 위치.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카페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 맛만 보고 나올 심산이었다.
그랬던 게 왜 생업이 되었을까. 그때 제퍼빈즈에서 전자레인지의 유리판을 씻고 물기를 털어낸다며 흔들다가 냅다 바닥에 집어던져 버렸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일을 가르쳐 줬던 언니, 오빠들이 정말 혼자서 마감을 할 수 있겠냐고, 일단 해보고 대기하고 있을 테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그래도 어차피 우리가 매번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혼자서 해결하는 데까지 해결해 보라고,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너는 왜 유독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던 것도 기억난다. 나도 언니, 오빠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던 것도. '절 믿지 마세요... 가 아니라 믿어주세요... 아니 믿지 마세요.... 아니 믿어주세요.....' 그렇게 한 주 마감을 혼자서 치르고 난 후 언니가 말했다. 넌 혼자 있어야 잘 하는 타입이구나? 언니, 오빠들은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 신기해했다. 얘는 옆에서 뭐 해라, 저거 해라, 하면 고장 나는 애였던 거야. 우리가 멀쩡한 애를 계속 고장 내뜨리고 있었던 거지. 심지어 얘 혼자 일하고 얼굴이 폈다니까? (웃음) 아니 근데 그러면 우리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제발 좀, 조용히 좀 하세요! 하고. (웃음) 궁금한 게 너는 네가 이런 타입이란 거 알았어? 오빠들은 내가 윗사람을 어려워해서 말을 못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무 살에게도 윗사람이 어렵고 말고 할 주변머리가 있을까..? 스무 살은 눈에 뵈는 게 없는 나이가 아닌가...? 스무 살의 나는 눈에 뵈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는 것도 없었다. 특히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저도 몰랐어요..... 내 말에 언니는 나를 툭 치며 말했다. 그걸 체질이라고 하는 거야.
체질에 맞았기 때문일까. 손님과 나 사이에는 늘 바(Bar)라는 낮은 벽이 있었다. 벽의 안쪽은 내가 있는 곳, 벽의 바깥은 손님의 공간. 그 확실한 구분이 좋았다. 요즘에는 바와 홀의 경계가 사라진 카페가 많지만 작업대가 있는 이상 물리적으로 바리스타와 손님의 벽을 완전히 허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공간 안에 있지만 구별이 확실하다는 것. 카페는 내 체질에 맞는 곳이었다. 처음 몇 개월간은 체질에 맞다는 이유만으로도 그저 즐거웠다. 커피를 내리는 것도, 사람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오픈을 위해 기물들을 깨끗이 마감하는 일도, 모두 즐거웠다. 처음이어서, 다행히 체질에 맞아서, 하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아서 즐거운 날들이 익숙하고 지루한 날들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퍼빈즈를 나오게 된 건 당시 사장님이 카페로 운영하던 2,3층 중 2층을 철판볶음집으로 바꾸고 점점 카페 일을 놓기 시작하셨을 무렵이었다. 일도 지루했고, 일하는 보람도 없었다. 오던 손님들도 3층까지 걸어 올라와야 하는 불편 때문에 점점 줄어들었다. 3층도 철판집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나는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후로 나는 새로움이 없이, 매일 손에 익은 일을 반복하는 상태에 다다를 때마다 배움을 채우려는 노력 대신 일하던 곳을 바꾸며 이 카페 저 카페를 떠돌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르바이트였으니까. 내 체질에 맞고 익히기 어렵지 않은 일.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으니까. 커피를 보는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내 주변에는 커피를 진지하게 자신의 업으로 삼은 사람,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 모두 커피는 정말 중요한 무엇을 하기 위한 중간 단계, 하나의 수단이거나 취미 정도였다. 그중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카페를 차렸고, 그게 아닌 사람들은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다음을 도모하는 식이었다. 커피가 그저 좋아서 커피에 삶을 바친, 커피에 뜻을 갖고 진지하게 커피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