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

헤어짐은 곧 기약 없는 재회

by 솔립



동네한바퀴13.jpg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지팡이가 많네요.’

‘우리 영감님이 나보고 짚으라고 나무 다듬어서 문 앞에 뒀어요.’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돌아가셨어요.’

‘병석에 있으면서 오래 못 산다는 생각을 했나 봐요. 그래서 나무를 베어서 모아 두었다가 앉아서 다듬었어요.’

‘나무도 단단한 것으로 골라서 아내가 편하게 짚고 다니도록 키 높이도 잘 맞춰주셨네요.’

‘내가 가더라도 지팡이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어머니의 재산 목록 1호네요.’

‘당신이 있으면 좋을 텐데 당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영혼이 있다면 알겠죠. 거기에서 잘 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거든 꿈에라도 나와주세요. 궁금합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中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커뮤니티 제목 인용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신께서 떠나면, 아내가 혼자 남는 것을 생각해서 나무로 지팡이를 여러 개 만들어놓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무로 지팡이를 여러 개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때, 나무를 베었을 때, 하나하나 나무를 깎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으로 다듬으셨을까?


내가 늙고, 힘이 없어서 아내한테 해줄 건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

나 떠나고 나면 대신 아내를 지탱해 줘야겠다는 생각.

아내는 나를 더 늦게 보러 오라고, 지팡이를 한두 개가 아닌 여러 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동네한바퀴12-crop.jpg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평소보다는 더 튼튼한 나무를 베었고, 행여 아내의 손이 다칠까 더 섬세하게 작업했으리라.


나무를 벨 때마다 슬픔을 베어내고, 나무를 깎을 때마다 슬픔을 깎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약 없는 헤어짐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무를 지팡이로 만드실 때마다 슬픔이란 감정은 잠시나마 잊으셨을 것 같다.

나무를 다듬고, 깎을 때마다 온전히 지팡이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테니까.

그렇게 헤어짐은 곧 기약 없는 재회가 되었

지팡이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할머니를 지켜주기도 하겠지만,

할아버지의 손 때가 묻은 지팡이엔 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을까?


"나 없어도 이 긴 소풍, 맘껏 즐기고 오시라고. 난 먼저 떠나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지팡이로 어디든 다녀오시라고."





헤어짐은 곧 기약 없는 재회다.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지팡이가 닳아감에 따라 시간도 닳아갈 것이다.

시간의 닳음이 다할 때, 다시 만날 것이다.


‘사랑’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양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보인 사랑이 아마 사랑의 마지막 형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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