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중학교 2,3학년 쯤부터 급격하게 친해졌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이름도 같았었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음알음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 간만에 2,3번 정도 만나며 인연을 유지해왔지만, 난 성인이 된 이후 그 친구와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연락 패턴에 대해 질릴대로 질렸다. 나는 연락이 오면 칼답을 하는 편이라서 답장하는 데만 하루 이틀 심하면 한 달까지 걸리는 안읽씹 같은 유형을 이해하기가 힘든 타입인데, 이 친구가 답장이 매번 늦는 유형이었다. 여러 친구들이나 광고 카톡에 밀려서 답이 늦는다고는 하지만, 내가 대화를 걸었다는 것이나 대화 중이라는 걸 잊었단 건가? 내가 그 광고 카톡에 잊힐만한 존재인가?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속을 잡는 것에 나만 안절부절했다. 혹시 카톡을 하다가 갑자기 몇 시간 동안 읽어버리지 않으면 약속 못 잡고 끝나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었기 때문이다. 빠르면 몇 시간, 늦으면 며칠 씩 걸리는 답장에 나는 화가 났고 대놓고 그 친구에게 "너는 왜 답장을 늦게 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친구의 말은 "카톡하다가 중간에 잠이 들었어."였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럴 수가 있는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음, 혹은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그저 '너랑 연락하기 귀찮아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섭섭하게 했던 건 다양하다. 남자친구와의 대화는 계속 하지만, 나와의 대화는 하지 않는 것? 물론 남친과의 대화는 나보다 더 중요하다. 남친을 질투하는 게 아니다. 남친과의 대화 중에 내 카톡도 분명 보였을텐데... 며칠이 지나도 답장을 해주지 않은 것에 좀 섭섭했었다. 일부러 그 친구가 나 섭섭하라고 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냥 평소 행동이었을 뿐인데 나 혼자 상처받고 나 혼자 섭섭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섭섭한지 아닌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친구와 연락을 끊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어떤 약속을 잡을 때나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항상 카톡으로 말을 먼저 거는 건 나였다. 내가 10번을 먼저 말 걸면 그 친구는 2번 정도 먼저 말 걸었다. 그 친구가 먼저 말 건 이유는 확신할 순 없지만 내가 연락을 한동안 안 했었기 때문이다. 항상 나만 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나만 안절부절해하는 것 같고, 이 관계가 끊어질 까봐 어떻게든 잇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부터 친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름도 같았었기 때문에 이 관계를 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중학생 때 까진 서로 같은 줄을 잡고 있다가, 점점 그 친구는 그 줄을 놓고 있었는데 나는 억지로 그 줄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만 놓으면 될 문제였는데 나 혼자 끙끙거리면서 인연을 유지하려고 했었다. 그저 오래된 친구였다는 이유로 나 혼자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인연을 유지했었다. 결국엔 손해는 나만 보게 된다는 걸 연락을 끊고 나서야 깨달았다.
방금 슬픈 사실을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작년 그 친구의 생일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연락을 할까 말까 했는데, 생일이니까 축하 카톡을 보냈다. 다행히 한 시간 만에 답장을 받았고 코로나 끝나면 꼭 보자는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이 친구는 올해 내 생일에 축하를 해주지 않았다. 잊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잊었다기보다는 그 친구는 아예 내 생일이 언제인지 모를 것이다. 중학생 정도 때까진 기억하고 있었겠지만. 잊을 수도 있지만, 그럼 기억하고 있는 나는 뭔가? 내가 너무 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집착하고 있는 건가? 나는 인연을 유지하고 싶다는 소망일 뿐인데. 그게 그렇게 과한 바람인가?
사실은 이 친구 뿐만 아니라 연락을 드문드문하다 자연스레 끊긴 친구들이 많다. 앞선 이 친구 덕분에 '나 혼자 붙잡고 있었던 끈이니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른 친구들과의 인연도 끊게 되었다. 반면에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가 갑자기 나에게 연락한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수많은 친구들은 친구 순위의 위쪽에 위치해있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이상하지만 어떤 외적인 요소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친한 정도를 따지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쉬는 시간에 같이 수다 떨고, 같이 급식 먹고, 소풍날이면 같은 돗자리에 앉아 김밥을 먹었던 친한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상위권의 친구들이다. 당시엔 내가 상위권에 속해있었겠지만, 그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는 상위권에서 점점 하위권으로 떨어졌던 것 같다. 그저 친구 영역의 끄트머리에, 마지막에 있는 친구였던 것 같다. 끄트머리라고 생각하는 게 다행일지도.
친구 관계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나는 네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서로의 마음이 잘 맞아야 그 인연도 오래갈 수 있는 건데, 서서히 마음이 틀어져 버린다. 그래서 연인 관계가 새삼 소중하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고, 잘 맞는다는 것. 하지만 그에 비해 틀어져 버리는 과정이 매우 잔인하고 끝이 슬프다는 것이 친구 관계와 다르다.
이전에는 억지로라도 작은 인연을 이어가자고 연락을 취하기도 했지만 내가 누군가의 1순위가 아니라 10순위, 20순위, 30순위 혹은 그보다 더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이상하게도 굳이 이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에게 남아있는 친구에게, 나에게 먼저 연락을 걸어온 친구에게 더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너와 나의 인연은 그냥 거기서 끝이었던 거라고,
내가 붙잡고 있었던 얇디 얇은 끈은
이미 과거에 끊어져 버렸던 거였다고,
굳이 그 거추장스러운 끈을
손가락에 일일이 묶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른다. 내가 끊었던 인연은 당장 내일이라도, 혹은 1년 뒤, 10년 뒤에라도 다시 닿을 수 있다. 그걸 위해서라도 자연스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연을 놓으면 될 뿐, 내가 너 때문에 힘들었던 걸 주구장창 쏟아내며 서로 간의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서운한 감정이 들더라도 그냥 묻어버리면 된다. 묻으면 잊힌다. 또, 나도 너 때문에 힘들었듯이 너도 나 때문에 불편했던 감정이 들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너와 나의 인연을 과거의 행복했던 그 순간에 간직하는 걸로 마무리하자. 미련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