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립 Mar 28. 2022

친구는 무엇일까?

영화 <고장난 론> 리뷰

생일을 맞은 바니는 친구들에게 줄 초대장과 도시락을 챙긴 뒤 등교한다. 다른 친구들은 비봇이라는 걸 타고 등교하지만 비봇을 살 형편이 안 되는 바니는 자신이 만든 킥보드를 타고 등교한다. 비봇은 IT회사 버블에서 만든 친구 로봇으로, 개발자 마크가 개발했다. 아이의 손바닥만 대면 모든 데이터들이 비봇에 수집되어 취향에 맞는 친구 비봇이 된다. 비봇은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주고 실제 친구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바니는 비봇이 없어서 쉬는 시간은 항상 혼자 있다. 학교의 못된 무리들은 그런 바니를 놀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초대장은 하나도 못 건네고 집에 돌아왔지만, 할머니는 이미 생일상까지 다 차렸다. 할머니와 아빠는 바니를 잘 챙겨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바니가 염소털 알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염소털로 짠 모자를 선물해준다. 바니가 요즘은 비봇이 대세라고 하지만 아빠는 그런 기계에 중독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며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바니는 비봇을 가지는 꿈을 꾸게 되고 이를 본 아빠는 할머니와 함께 비봇 판매점으로 가지만, 영업 종료에다가 비싼 가격에 덜컥 살 순 없었다. 그러던 그때 버리는 비봇을 발견하고 그 비봇을 헐값에 구매한다. 눈을 뜬 바니 앞에 비봇이 있었다. 하지만 오류가 난 탓에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A까지 밖에 저장이 안 된 탓에 바니의 이름을 압살롬이라고 부른다. 결국 그날 학교에 비봇을 데려가려 했지만, 비봇이 자꾸만 말썽이라 자신이 없는 동안 자신의 방에서 업데이트를 하라고 말한다. 집에 돌아온 후, 바니의 방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만들긴 했지만 계속 엉망인 상태여서 반품을 하려하지만 비봇이 갑자기 놀이터 쪽으로 돌진을 한다. 그 놀이터에는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스킨이 없는 비봇의 모습을 보고 또 놀린다. 그때 비봇이 그 무리들을 혼쭐내기 시작한다. 사실 비봇은 폭력성을 탑재하면 안되는 기능을 갖고 있었지만, 이 비봇은 고장났기 때문에 폭력 기능이 해제되어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다른 비봇에게 찍히면서 이 사실이 버블사에 알려진다. 결국 비봇을 반납하기로 해야했지만 이미 비봇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친해진 바니는 가까스로 론을 구출해온다. 가족들 몰래 론을 마당 창고에서 데리고 있게 되고, 그곳에서 바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며 론의 알고리즘을 채운다.

어느 날 바니의 친구인 사바나의 집으로 돌진하는 론을 뒤따라잡다 사바나의 파티 분위기를 망치고 만다. 론의 존재를 들키게 되고 사바나는 '네 비봇은 이상하다'며 자신의 비봇을 자랑한다. 론은 그곳에서 비봇의 기능을 배우게 되고,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아무 사람들에게 '바니와 친구하실래요?'라며 바니를 광고해댄다. 쉬는 시간, 론은 바니에게 너를 위해 친구를 데리고 왔다고 말하며 낯선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학교는 떠들썩해진다. 이 와중에 일진 무리의 한 명이 론에게 폭력 기능 해제에 대해 묻고, 그 기능을 자신의 비봇에게도 복사시켜서 학교의 모든 비봇이 폭력을 쓸 수 있는 상태로 바뀌어버린다. 학교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고, 사바나의 굴욕적인 모습은 동영상으로 찍혀서 전세계적으로 놀림을 받게 된다.

론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바니는 론과 싸우고, 론은 "바니가 화가 날 때는 2M 이내로 접근금지"라며 어디론가 가버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바니에게 버블사가 론을 찾으러 온 것을 발견한다. 창고로 숨은 바니는 구석에서 부스럭대는 걸 발견하는데, 론이 자신 스스로 반품해버릴 거라면서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런 론에게 미안해서 바니는 뭔가를 깨우치고, 게시판을 "친구가 되는 법"에서 "친구가 되자"로 바꾸고 진짜 친구가 되어가는 법을 배워간다. 

계속 집에 있으면 잡힐 것 같다고 생각한 바니는 론과 함께 숲속으로 떠나는데, 이를 알게 된 버블사는 론을 찾기 위해 모든 비봇 이용자들의 카메라를 감시하고, 몰래 이용해서 론을 찾으려고 한다. 숲속에서 론을 찾고 바니는 이들의 감시망을 피하려 하지만, 바니의 천식 때문에 바니는 쓰러져버리고 만다.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은 론은 바니를 살리기 위해 바니를 업고 마을 쪽으로 내려오지만, 바니는 론에게 마을로 내려가면 네가 반품될 거라며 걱정한다. 그리고 론은 마지막으로 바니를 살리기 위한 사람들이 오는 걸 보고 배터리가 꺼져버린다.

과연 바니와 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해석

제목에 대해

제목이 <고장난 론> 이고, 영어 제목은 <Ron's Gone Wrong>이라는 거 보면 언어유희를 노린 것 같다. 론과 롱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짓지 않았나 싶다.


기술이 소통을 방해한다?


사람들은 흔히 기술이 소통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술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어른일수록 그렇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니가 "요즘은 비봇이 대세다"라며 비봇을 사달라는 것처럼 얘기하니, 바니의 아버지는 "그런 전자기기가 애들을 망친다, 친구들이랑 숲속에서 뛰어노는 게 제일 최고야"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오히려 아버지가 기술에 의해 놀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와이파이가 잘 되지 않아 거래처와 통신이 끊긴다든가 하는... (후반부에는 정말 바니와 론이 숲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여줌!)

그러나 기술을 올바르게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더욱 더 넓은 소통의 장을 만들 수 있다. 말로는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메신저를 통해 얘기하며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가 소통의 장이 아닌 게임의 장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기술이 소통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잘만 사용하면 문제가 될 게 없다.

또한 바니의 집은 비봇이 없었더라도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바니가 염소털 알러지가 있다는 걸 누누이 얘기했지만, 염소를 거의 방목하다시피 키우고 있었고 할머니는 염소털 모자를 짜서 선물하기도 했다. 바니가 하교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사람도 잘 없이 아버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통신과 고군분투하고 있다.(물론 돈을 벌려고 하는 건 맞다.)

진짜 기술이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과연 기술 때문인지도 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특히 가족 내에 그런 경우가 잦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아이가 스마트폰에 정신 팔려 가족 간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아이가 사춘기 때문에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소통 부재의 이유가 반드시 스마트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봇의 하인이 되어버린 아이들

디지털 문명 사회로 인해 다양한 친구와의 소통이 단절된 사회,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사회가 되어버리고, 양날의 검처럼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그만큼 부작용도 나타나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던 영화였다. 분명 친구는 단방향처럼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알아가고 맞춰가는 것이 친구다. 하지만 비봇은 이미 내 취향에 따라 알고리즘을 만들어 마치 하인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과연 비봇이 하인같은 친구가 맞을까? 비봇에게 쓰인 기술이 어른에게 쓰여도 무서운데, 기술 발전의 심각성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비봇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말해주는 그런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봇은 자신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고, 잘못하면 이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었다. 비봇이 하인이 아니라 아이들이 비봇의 하인이 된 것 같았다. 비봇이 없으면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비봇을 이용해서 친구가 있는 척하는 모습을 보면 비봇에 끌려다니는 것 같아보인다.


기술의 심각성

마크는 비봇을 '친구 사귀기, 소통의 원활함'을 추구하며 만들었지만 앤드류는 비봇을 '정보 수집'으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영화 중후반부에 보면 정말 무서운 장면이 나온다.

각 사용자들의 비봇 카메라를 해킹해서 방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든가, 비봇 자체를 해킹해서 바니를 찾으러 온 마을을 떠돌아다니고, 비봇의 폭력 기능이 언락되어 학교가 초토화되는 장면들을 보면 정말 무섭다. 비봇=스마트폰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도 이런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고 나아가면 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비봇 사용자들의 모든 정보가 비봇에 저장되고, 버블 사에서 이 모든 정보를 관리하기 때문에 이곳이 해킹이 되거나 누군가가 팔아버린다면 정보 유출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에게도 모르는 전화번호나 메일주소로 스팸 메일이 오는데, 내 정보가 팔리고 팔려서 이렇게 된 것이다.

한번 콘텐츠가 올라갔다하면 퍼지는 속도가 아주 빠른 반면 지워지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하는 것이 비봇이지만, 그런 심각성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비봇의 편리함만 보며 사용한다. 마크는 친구로서 비봇을 만들었지만, 비봇을 통해서는 직접적인 감정 교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공감능력 발달에도 큰 영향 미칠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사바나를 풉걸로 만들어 온갖 조롱을 하며 놀리는 것이다. 사바나의 입장을 공감한다면 그런 게시물이 널리 퍼지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공감 능력 문제도 있겠지만 익명성의 문제가 가장 크리라 본다. 나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대범하게 조롱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름과 얼굴이 다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긴 하다.

기술은 날로 날로 보급되고 발전되는 반면, 기술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이런 사이트는 이용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무조건 막기 보다는 '왜 이용하면 안되는지, 이런 기술에는 어떤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지' 아주 상세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 보니 이런 느낌을 받았다.

파란색의 바니와 파란색의 비봇이 만나서 파란색이 되는 게 아니라,

파란색의 바니와 노란색의 론이 만나 초록색이 되는 것.

서로 다른 색깔이 만나 섞여지고 합쳐져서

조화로운 색깔이 되는 것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와 같은 색깔의 친구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 관심사 밖에 모르기 때문에 파란색의 반대, 빨간색의 친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렇게 파란색끼리 똘똘 뭉치고, 빨간색끼리 똘똘 뭉치면 집단이 형성되어 서로를 배척하기가 쉽다.  

비봇을 만드는 회사인 '버블'.

비눗방울은 투명한 듯 보이지만

빛에 비춰서 보면 무지개빛이 보인다.

또, 비눗방울을 더하고 더하면

수백만개의 비눗방울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비눗방울이 된다. 

너와 나는 다른 존재이지만,

친구라는 한 관계로 만나면

그 관계는 비눗방울처럼 하나가 되어

여러가지의 무지개 색깔을 내뿜을 것이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연약함을 갖고 있을지라도,

친구의 관계가 유지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브리와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비교해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