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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Mar 20. 2022

지브리와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비교해보았습니다

웬만한 지브리,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다 본 입장에서 둘의 차이점에 대해 비교 분석을 해보려 한다.

지브리는 동양, 2D이고 디즈니/픽사는 서양, 3D라는 눈에 보이는 차이점이 아닌 스토리 차이의 분석이다.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 다분한 글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소울>

현실 반영 지브리, 세계관 창조 디즈니

지브리와 디즈니의 차이점으로 많이 얘기하는 게, 지브리는 잃어버렸던 과거의 느낌이고 디즈니는 신비로운 환상의 느낌이라고 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지브리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디즈니는 아예 세계관을 창조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애니가 다 그렇다는 게 아니다. 지브리 애니 중 모노노케 히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천공의 성 라퓨타는 과거의 현실을 반영했고 디즈니에서는 코코, 소울, 라따뚜이, 업 등에서는 현실을 반영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주로 다뤄지는 무대가 현실이냐 또다른 세상이냐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치히로네 가족이 이사갈 집으로 향하는 중 길을 잃고 온천에 발을 디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온천이 '또 다른 세계관'으로 느껴지는데, 확실히 판타지스러운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온천에 있는 사람들이 개구리나 인간의 형태를 띠지 않은 모습이지, 온천 자체는 현실에 있을 법하다.


<마녀 배달부 키키>,<벼랑 위의 포뇨>,<마루 밑 아리에티> 등과 같은 경우는 현실에서 판타지가 가미된 느낌이어서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는 상상을 들게 한다.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진짜 키키가 있다면? 포뇨가 있다면? 아리에티가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는 비슷하게, 디즈니의 <코코>,<소울>도 일상에서 시작한다. <코코>에서는 저승으로 들어서며, <소울>에서는 '유 세미나'에 빠지면서 그 무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 무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아주 판타지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에 디즈니가 '세계관'을 하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코>에서는 출입국 관리 사무소도 있고, 마을도 있고, 파티장도 있어서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브리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코코>

극적인 장치의 유무

지브리는 아련한 느낌이 드는 반면 디즈니는 딱 떨어지는 운명의 느낌이 든다. <코코>에서는 주인공 미구엘이 이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떤 미션이 주어진다. 그래서 이 커다란 주제를 생각하고 영화를 보게 된다. 반면 지브리는 운명적인 느낌이 잘 없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분명 치히로가 현실로 돌아가야함을 알지만, 하쿠와는 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기 때문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운명적인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련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다른 영화로 예시를 들자면,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일상에서 사츠키와 메이가 토토로를 만나면서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주어지지, '어떤 미션을 해결하자!'는 느낌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평화롭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메이가 사라지면서 '메이를 찾자'는 미션이 중후반부에 주어진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도 '키키는 다른 마을에 잘 정착해서 지내야 해!'라는 주제가 강하게 들어오기 보다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키키는 다른 마을에서 잘 정착해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잔잔하게 물 흐르듯 전개되느냐? 그것은 아니다.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아까 말했듯, 메이가 사라지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메이를 찾자'는 목적 의식을 갖게 한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는 친구 톰이 비행선에 매달리면서 '다시 날아서 톰을 구해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이런 목표가 딱 정해졌으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이런 미션이 주어졌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거 억지인데?'라는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미션을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모아나> / <업>

디즈니는 목적이 뚜렷할까?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모아나>에서는 '테 카를 잠재워서 테 피티를 원래로 돌려놓자!'는 미션이 처음부터 주어지고, <겨울왕국1>에서는 '엘사가 빨리 왕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다. 또 <업>에서는 '이 집을 끌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가자'는 미션이 주어진다.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그렇다.

그래서 주인공의 서사가 앞부분에서는 되게 압축되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모아나>에서도 아기 모아나부터 나오지만, 할머니의 내레이션이 나오며 '이런 역사, 설화가 있다'고 주어진다. <겨울왕국1>에서도 엘사가 왜 안나와 거리를 둬야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르게 전개가 된다. <업>도 '디즈니 최고의 5분'이라고 불리는 그 장면을 통해 두 주인공의 생애가 간략하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진행되는 방식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너무 목적을 향해서만 달려가기 때문에 그들의 서사가 굉장히 간추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방대한 내용을 영화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릿속에 입력을 해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이 된다. <겨울왕국>, <업>은 나름 스토리가 이해하기가 쉬웠지만 <모아나>는 계속 쏟아붓는 느낌으로 주어져서 개인적으로 돌려서 보고 멈춰서 봤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앞선 두 영화보다 평점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는 스토리 때문에 감정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엔칸토>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왜 이런 감정이 갑자기 드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아서 주제를 위한 억지 갈등이 느껴졌다.

<겨울왕국 2> / <이웃집 토토로>

그래서 영화를 처음 볼 때, 지브리는 내용의 유추가 잘 되지 않는데 디즈니는 내용의 유추가 너무 잘 되어서 '이렇게 흘러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너무 지브리를 편드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어른이 봤을 때는 이렇다는거지 아이들이 볼 때는 또 다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주로 어린 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어떤 목적이 뚜렷해야 아이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다. '누구를 구해야 해! 악당을 물리쳐야 해!'이런 주제가 초반에 딱 있어야 끝까지 볼 수 있다.

지브리는 이런 운명적인 느낌이 덜해서 어린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인기가 더 있는 듯하다. 운명적인 느낌은 자칫하면 뻔하다, 촌스럽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브리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까 말했듯, 지브리는 현실이 무대인 애니메이션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브리 애니를 보고 난 후에 '나에게도 이런 판타지가 있을까?'하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아쉽게도 <바람이 분다> 이후로 제작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아야와 마녀>가 마지막 작품인데 역대급 혹평이 많아서 방향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깔끔 명료한 디즈니

이런 운명적인 느낌이 강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깔끔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뿌렸던 떡밥이 모두 회수가 되면서 끝이 난다거나 권선징악처럼 악역은 벌 받고, 주인공은 해피엔딩을 맞는 게 정석이다. 정석일 뿐, 100%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라푼젤>,<루카>,<라따뚜이>처럼 악역이 '나 악역!' 이렇게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토피아>에서도 보면 착할 줄만 알았던 벨웨더가 사실은 최종보스였다. <빅 히어로>,<주먹왕 랄프1>,<업>에서도 한번 악역을 꼬아서 얘기한다. 어쨌든 분명하게 '악역'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서 권선징악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쉽다.

<벼랑 위의 포뇨> / <주토피아>

지브리는 뚜렷한 악역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아예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유바바가 악역으로 나오지만, 쌍둥이 자매인 제니바도 나온다. 제니바는 악역이 아니라서 악역에 대한 경계가 조금 모호해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이렇다 할 악역이 없지만, 포뇨의 아빠인 후지모토가 악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지모토는 딸을 지키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일 뿐 완전히 못됐다고 볼 수 없다.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에보시가 악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의 수장이고 마을을 먹여 살리는 인물이기 때문에 산에게는 악당이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악당이 아니다.

한편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는 악당 아줌마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줌마가 죽음과도 같은 벌은 받지 않는다. 또 다른 경우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처음엔 악역이었지만, 주인공 소피가 품고 가기도 한다. 이처럼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악역이 뚜렷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까 말했듯, 우선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주 관객이기 때문에 '악역'이 주어져야 주인공의 감정에 더 이입할 수 있고 주제를 더 와닿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악역을 품어야한다'라는 주제라면 이해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디즈니의 모든 영화가 딱딱 칼로 잰 듯 하나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속의 아주 많은 디테일을 통해 어른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 <주토피아>에서는 편견과 차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고,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강압적인 훈육보다는 따뜻한 훈육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유튜브에서 주제 봤는데 너무 와닿았어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벼랑 위의 포뇨>

딱 떨어지는 스토리 덕분인지 디즈니 애니를 다 보고나면 '주제가 이거구나'하는 느낌이 딱 온다. 주제가 이렇다는 걸 알려주는 듯, 각 영화의 숨겨진 장면이나 디테일 묘사를 보면 더욱 더 주제가 강화된다.

반면, 지브리는 디즈니에 비해 주제가 뚜렷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반전주의, 환경보호 쪽에 관심이 많은 미야자키 감독이기 때문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벼랑 위의 포뇨>,<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모노노케 히메> 등에서 겹치는 주제가 많다. 앞서 말했듯 악역을 품고 가기도 하고, 악역이 악역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정체성이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스토리가 되지만, 이 각각의 캐릭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여백의 미를 살리는 지브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제니바는 "한번 만난 건 잊지 못하는 거란다.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지"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우리가 잊고 있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디즈니와는 다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브리.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치히로가 얼른 현실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을 하지만 하쿠와는 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아리에티와 쇼우가 그냥 같이 살았으면 좋겠지만서도 스토리에서는 한 여름의 추억으로 남겨둔 채 이야기가 끝난다.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명확하게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버린다. 물론 후반부에 노래가 나오면서 이미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사츠키와 메이가 결국 가족과 만났는지, 왜 병원에서 부모님을 만나지 않고 옥수수만 남겨두고 간건지 등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그래서 괴담도 많이 나오는 편)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왜 황야의 마녀가 하울에게 집착하는지, 하울의 첫 등장에서 왜 소피에게 '한참 찾았잖아'라는 말을 했는지 영화만 봤을 때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브리 애니를 보면 무언가 허전하고, 빼 먹은 느낌이 난다. '내가 원했던 결말은 이게 아닌데, 이 부분은 어떻게 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말이 좋다'고도 받아들인다. 나쁘게 말하면 스토리가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은 지브리가 일부러 이런 설정을 함으로써 허전함을 관객들 스스로 채울 수 있게 하려고 남겨둔 듯하다. 잊은 듯 잊지 않은 듯한 그런 '여백의 미'를 줌으로써 더욱 더 아련미 넘치는 감성을 자아내는 것 같다. 상업적으로 보자면, 계속 해서 회자될 수 있게 해서 끝까지 잊히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을 듯하다.


첫 부분에서 얘기했듯이, 지브리는 디즈니와 다르게 대체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주인공이 소피, 치히로, 사츠키&메이처럼 평범하기도 하고, 그들 삶의 무대가 평범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판타지를 꿈꾸게 한다. 말로 잘 표현을 못하겠는데, 치히로가 터널을 빠져나와 기억을 잃었던 것처럼, 나도 이런 판타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착각을 들게 해서 지브리 애니를 보고 나면 알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나 싶다.





<마녀 배달부 키키>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 지브리

음악은 영화를 끌고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디즈니는 대체로 가사가 있는 음악이고 아이들이 따라부르기 쉽게 나온다. 또한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많기 때문에 극적인 순간을 노래로 표현한다. 반면 지브리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라서 따라부를 수 없다.


지브리 애니의 OST는 대부분이 히사이시 조가 작곡했는데, 사람들은 항상 들으면 기쁨과 슬픔이 느껴진다고 한다. 몽환과 환상이 느껴지는 묘한 느낌이다. <웰컴투 동막골>의 OST도 히사이시 조가 작곡했다. 영화에서도 굉장히 잘 어울리지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지브리 느낌도 많이 난다. 폐쇄된 놀이공원에서 한밤 중에 퍼레이드를 하는 느낌이 든다.

https://youtu.be/6q3tR5nMcWs

가사가 없기 때문에 이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슷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가사가 아닌 음악만으로 일정한 감성을 자아낸다는 게 새삼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브리 곡 중에 <마녀 배달부 키키>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라는 곡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브리를 대표하는 음악을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꼽을 것 같다.

https://youtu.be/NXt-YY3Xt8Q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는 마냥 기쁘면서 들을 수 없는 곡들이 많은 것 같다. 들을 때마다 항상 좋은 의미의 인상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슬프다'라고 단정지어서 얘기할 순 없다. 슬픔에 슬픔이 자꾸 얹혀져서 웅장한 슬픔이 되어버린 것 같은, 과거의 슬픔을 승화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겨울왕국 1>

고통을 이겨내는 노래, 디즈니

디즈니는 하나의 노래에 그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노래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 1>의 OST인 <Let It Go>는 엘사가 그동안 갖고 있던 압박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노래다. 이제 그들이 뭐라 하든지 나는 내 길을 가고, 그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날 막을 순 없다는 노래다. 이 노래의 내용처럼, 엘사는 자신의 본모습을 찾고 고난이 있었을지라도 왕국에 돌아왔다. <모아나>의 OST인 <How Far I'll Go>도 비슷하다. 정해진 운명을 거슬러 자신에게 한계를 짓지 않고 드넓은 바다로 갈 거라는 내용이다.

<주토피아>의 OST인 <Try Everything>도 주제를 관통한다.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또 다른 주제로는 '뭐든 시도해보라'는 것을 얘기한다. 토끼인 주디는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어'라는 편견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되었다. 비단 주디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닉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며 또 다른 동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https://youtu.be/HHQXdILvsPE


I won't give up, no I won't give in
포기하지 않을거야, 난 포기 안해
'Til I reach the end and then I'll start again
끝날 때까지 계속 시작할 거야.
No, I won't leave, I wanna try everything
난 떠나지 않아, 모든 걸 다 해보고 싶어
I wanna try even though I could fail
실패하더라도 시도해볼거야

개인적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는 아니지만, 디즈니 <알라딘> OST인 <Speechless>가 주제를 굉장히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tfJntocV3HE

공주라는 역할에 한정되어있어 왕자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아버지가 다스려왔던 왕국을 남편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자스민은 왕처럼 정치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고, 자신은 왕비가 아니라 한 나라의 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있고, 나를 막고 끌어내릴지라도 나는 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자스민이 얘기한 것처럼 정말로 그녀가 왕국을 다스리게 됐다.

Won't tremble when you try it
네가 나를 억압하려고 하겠지만 떨지 않을 거야.
All I know is I won't go speechless, speechless
나는 절대 침묵하지 않을 거야.
Let the storm in, I cannot be broken
폭풍이 몰아쳐도 난 절대 무너지지 않아.
No, I won't live unspoken
절대 침묵한 채로 살지 않을 거야.
'Cause I know that I won't go speechless
난 내가 침묵하지 않은 채로 살지 않을 걸 아니까.
<엔칸토>

미국의 가장 유명한 음악 순위 사이트인 빌보드 핫100을 보면, 항상 인기있는 가수만 중독성있는 멜로디만 1위를 하는 게 아니다. 여담이지만 일례로, 메간 트레이너의 <All About That Bass>란 곡이 있었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 Off>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매가 되었었다. 메간 트레이너는 데뷔곡이어서 팬층이 두텁지 않았는데,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미 5집을 냈고, 4집에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한 적이 있었기에 그 곡도 꾸준히 1위를 유지할 줄 알았다. 그러나 <Shake It Off>는 그리 길게 1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All About That Bass>의 가사 때문이었다. '뚱뚱해도 내 몸매를 사랑하자'는 자신감 넘치는 내용이었다. 전세계적으로도 비만율이 높은 미국이기에 이런 가사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인 듯하다.

그러니까 미국은 팬층이 없더라도 가사나 노래가 좋다면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좋은 가사가 좋은 영화를 만나 인기를 끌면, 영화에 관심없던 이들이라도 음원 차트를 통해 <Let It Go>나 <Speechless>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가사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돈, 술,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잔잔하고 조용한 감성의 지브리와 모험적이고 환상적인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은 각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애니메이션이 더 뛰어나다고 잘라서 말할 수 없다.


분석 글을 쓰면서 느끼지만, 우리나라도 디즈니나 픽사 같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나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작업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지브리는 애니메이터가 과도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봤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욱 더 열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되고, 환경이 개선되어서 아동용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디즈니, 지브리처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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