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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Apr 11. 2022

사회가 만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영화 <화차>, <지구를 지켜라!> 리뷰

<화차>에서 선영은 문호와 함께 예비 시댁에 청첩장을 전달해주러 지방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문호가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오는 사이 선영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선영의 집은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난장판이었다. 문호는 전 형사였던 사촌 형인 종근을 찾아가 선영에 대해 알아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하나 둘씩 선영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병구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믿으며, 사람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하나 둘씩 납치해서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납치한 사람은 강 사장. 유제화학의 사장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인물이다. 병구는 순이와 함께 그를 납치해서 갖은 고문을 한다. 병구는 왜 외계인의 존재를 믿으며, 왜 강 사장을 외계인이라 생각할까?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어쩌다가 범죄자가 되었나?

선영은 사실 가짜 이름이었고, 진짜 이름은 경선이었다. 아버지의 사채 때문에 어머니와 경선은 사채업자로부터 시달리며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아버지가 사망했다면 상속 포기를 하면 되지만, 행방불명의 상태였기 때문에 사채업자는 자꾸만 경선에게 찾아와 괴롭힌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에 승주는 경선과 결혼하기도 했지만, 승주의 식당에도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이혼하게 된다. 사채업자는 경선을 술집여자로 만들어버리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경선은 친한 언니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지만, 기형아로 태어나서 얼마가지 않아 사망하게 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경선은 한 화장품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고, 고객의 정보를 빼돌린다. 그리고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여자 3명을 타겟으로 삼는다. 그중 한 명이 선영이었다. 선영도 경선과 비슷하게 빚이 있어 파산 신청을 한 기록이 있으며, 어머니도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된다. 경선은 선영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친해지게 되고, 친목을 위해 놀러간 여행에서 선영을 살인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영인 채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병구의 아버지는 병구가 어릴 적, 탄광 폭발 사고로 한 쪽 팔을 잃고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난동을 피우다 사망했다. 그 이후 병구는 학창시절, 학생회비를 내지 않았단 이유로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선생에게 맞았다. 또 병구의 어머니에게 위협을 가하던 불량배들을 칼로 찔러 살인 미수로 교도소에 가게 된다. 교도소에서도 간수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괴로운 수감생활을 보냈다. 출소 후, 공장에서 일하다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지만 갑자기 쳐들어온 조직폭력배에 의해 여자가 사망하고 만다. 거기다가 병구의 어머니는 강 사장이 운영하는 유제화학에서 약물중독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채로 누워있다.

병구는 자신에게 해를 가했던 사람들을 납치해서 살해해왔고, 강 사장도 그러했다. 병구는 이들이 진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외계인이라 생각했기에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자신을 바로 잡으려는 추 형사도 살해해버린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

영화를 볼 때 미처 생각지도 못했으나, <방구석 1열>에서 좋은 얘기를 들었다. <화차>에서 언뜻 보이는 장면은 숭례문 화재로 인한 복구 상황과 용산 참사를 떠오르게 하는 배경이다. 우리나라를 뒤흔든 사회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있었기에 다른 작은 것들은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경선과 선영은 둘 다 불쌍한 삶이었지만 아무도 그녀들을 조명해주지 않았다. 선영이 경선에게 죽임을 당한 뒤에도 선영은 동창 외에 연고가 없었기에 그녀의 행방을 찾는 이들이 없었다. 조금만 알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아무도 선영이든 경선이든 관심이 없었기에 경선이 선영인 척 살아가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 또한 영화 초반에서도 문호가 자신의 여자친구 실종신고를 하는데도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이라고 생각했는지 대충 일처리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 어떻게 자기 여자친구가 가짜 신분으로 위장했는데도 모르냐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작정하고 덤비는데 모를 만도 하다. 이건 유튜브 댓글에서 본 건데, 문호가 둔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로 초반에 비 오는 휴게소에서 우산 없이 다녀오겠다고 하는 부분이다.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는데도 그냥 다녀오겠다고 한 건 그만큼 둔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냐고 하는 것이다.

병구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식물인간 상태, 좋아하던 여자의 죽음, 자신이 그동안 겪은 고통들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탄광 폭발 사고, 한 기업의 약물 중독 사건, 조직폭력배로 인한 죽음 등 뉴스에도 보도될만한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었지만 사건에 대해서만 조명할 뿐 아무도 피해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 커다란 기업이나 가해자는 처벌을 받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사람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간다.

수차례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불행이 닥쳐온다. 이 불행은 병구가 원해서 온 것도 아니었으며, 병구가 스스로 쉽게 극복할 수도 없는 불행이었다. 연속된 불행 때문에 병구는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은 외계인의 계략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외계인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외계인을 고문해서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려 하는 것이다.

병구의 인생도 불쌍하지만, 계속해서 실종사건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이 반장은 사건의 주범을 동네 양아치로 오인하고 체포한다. 그만큼 이 사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엔 누가 실종되었는지, 누가 죽어가는지, 누가 죽었는지, 누가 죽이는 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지금도 이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나, 모르면서도 외면하고 있나?

영화를 보면서 분명 이런 사람이 현실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가상의 인물을 동정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범죄자를 응원해주게 되는 아이러니

분명 경선은 선영을 살해하고, 또 다른 타겟을 찾아서 선영처럼 죽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선영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선이 제발 선영을 죽이지 않기를 바란다. 후반부에서는 경선이 제발 옥상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빚으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의 영혼도 잃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행복해지고 싶었던 경선은 자신의 이름으로는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해서 스스로 떨어졌나보다.


문호가 경선에게 "이제는 너로 살라"고 얘기했고, 경선도 "너로 살아"고 되뇌었지만 경선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미 '경선'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옥상에서 떨어지기 전에 깨달았을 것이다. 이미' 나는 선영을 죽였을 때 같이 죽은 것'이라고 말이다. 바닥에서 피에 젖어 날갯짓을 하고 있던 나비처럼 경선은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추락하게 되는 결말을 맞은 것이다.


병구도 강 사장 납치 전에 많은 이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악랄하게 단정짓기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순수했다. 그저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기 위해 강 사장의 통장에서 겨우 400만원을 인출하고, 해독제를 먹이면 살릴 수 있단 강 사장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제발 어머니가 깨어나길 바랐지만 결국엔 사망하고 만다. 병구는 더더욱 미쳐버리고, 강 사장의 회유에 넘어가서 몸 싸움을 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기구한 인생을 알게 되니 두 주인공을 응원해주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은 경선과 병구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딱 잡아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마냥 응원해줄 수 있을까? 그들은 살인했기에 응원해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이 살인자라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회를 이렇게 만든데에 일조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응원과 비난과 동시에 죄책감이 들 것이다.



2년 전에 게재한 에세이가 있다.


https://brunch.co.kr/@solipwriting/26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이코패스 범죄자나 살인자의 과거를 조명하며 그들의 서사를 그린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그의 감정에 대입해서 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예시로 <시그널>에 나왔던 '김진우'를 들었다. 그는 아동학대의 피해자로, 어머니도 죽여버리고 어머니와 비슷했던 많은 우울한 여성들을 죽였다. 그도 연쇄 살인범에 틀림없지만, 그의 불쌍한 인생을 보면 마냥 욕할 수가 없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범죄자가 있다고 해서 그의 과거를 생각하며 동정심을 품으면 안된다. 범죄가 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아동학대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옮겨가야 한다.

여담이지만, 박지선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사이코패스를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선 안된다고 말한다. 이의 선두주자가 <보이스>의 '모태구'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 버스 회사 사장의 아들로 입양되었고, 그의 아버지가 지하실에서 사람을 해하는 모습을 보고 내재되어있던 본색이 드러난다. 모태구는 재벌에다가 호감형의 외관이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로 나온다. <보이스> 이후로 이런 식의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줄줄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 사이코패스는 강약약강의 표본에다가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는 찌질한 사람에 불과하다.

희생되더라도 나아지지 않는다

진짜 선영이 죽고, 경선이 죽고, 병구의 가족과 병구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아진 게 있나?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가난해서 조명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죽어도 주변에서 아무도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하거나 약간의 동정심 유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약 10년 전에 영화 감독인 한 여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사했다. 그녀가 남긴 쪽지에는 "쌀과 김치를 조금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집주인에게 보내는 쪽지였다. 그녀는 병을 앓다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고 굶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1593/1


복지 사각지대는 어디나 존재한다. 지금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떠들썩한 사건인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피해자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죽어서야 알게 된다. 또는 죽어서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아무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그들의 가난함을 상품화하여 프로그램화시키는 것뿐이다. 마치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빈곤 포르노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아이들을 메인에 걸고 가난함을 광고하는 게 싫다. 어린 아이들의 직접 동의를 받고 출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의를 받았더라도 어리숙한 점을 이용해 어른들이 꼬드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아이들로 광고가 되면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들은 자라서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경선과 병구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며,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그들이 진작에 누군가로부터의 관심을 받았더라면 극한의 상황까지 갈 수 있었을까? 생활고로 인한 자살을 사회적 자살이라고 말하듯, 어떻게 보면 경선과 병구는 사회적 타살자, 사회적 살인자가 아닌가 싶다. 


경선과 병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피해를 입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개인적인 일로는 치부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사회적 피해자가 되었지만, 생존을 위해 사회적 살인자가 되고 피해자들을 만들었다.


경선이든 병구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희생되어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까?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대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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