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새끼>의 최근 방영편을 보셨나요? 내향적인 성격과 시지각 문제로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14살 금쪽이 편이었습니다. 저는 그 방송을 보면서 저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 상가 쇼핑 중, 금쪽이의 어머니가 목이 마르니 금쪽이에게 음료수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금쪽이는 “못하겠어... 직원이 화를 내면 어떡해?”라고 했습니다. 결국엔 울음이 터졌지만, 동생을 따라서 음료수 주문을 마쳤습니다. 그저 금쪽이는 따라갈 뿐, 동생이 다 해결했죠.
금쪽이가 답답하다고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해가 갔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제가 8살 쯤에 중국집에 배달 전화를 해야했습니다. 워낙 제가 낯을 가리고, 소심한 성격 탓에 이를 고쳐주고자 아버지께서 ‘대범해져라’는 말과 함께 중국집 배달 전화를 시켰습니다. 첫 배달 주문 전화에 떨려서 더듬더듬 말을 했는데, 전화를 받던 중국집 직원(직원인지 사장인지...)은 한숨을 푹 쉬며 “어른 바꿔 봐라.”라고 말하셨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이 경상도인지라 이 말투가 더 화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무서움과 충격을 받아서 이 경험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주문을 하려고 전화를 했던 것 뿐인데, 직원이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쪽이가 “직원이 화를 내면 어떡해”라는 말에 극히 공감이 갔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올까봐 두려워 더욱 움츠려들게 되고 긴장하는 바람에 말을 더듬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전 이제 성인이니 어릴 적보다 확실히 당당해지고, 컴플레인까지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요.
금쪽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 생각하니, 금쪽이 부모님께서는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면서 금쪽이를 타박했고, 출연진들도 “파는 사람이 왜 대뜸 화를 내냐”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금쪽이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어른이 있었습니다.
금쪽이가 학원을 가기 위해 엄마와 버스를 타는데, 카드를 찍기 전에 ‘어른 하나 학생 하나요’ 라는 말을 해야했습니다. 엄마는 금쪽이를 위해 ‘네가 기사님한테 말해보라’고 했지만, 금쪽이는 우왕좌왕 당황해했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어른 하나 학생 하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기사님의 대답은 “뭘 왜 이렇게 수줍어 해!”라는 화가 난 말투였습니다. 기사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 갑니다. 버스 안에는 승객들이 있었고, 빨리 다음 정류장으로 가야하는데, 입구에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답답하셨겠죠. 하지만 이런 기사님의 반응 때문에 금쪽이는 또 다른 어른에게 얘기하기가 두려워지겠죠. 제가 중국집 전화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처럼요.
어린이, 청소년에게 좀 더 관대해지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요?
아까도 말했듯이 어른들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바쁜 영업 시간에 언제까지나 직원이 손님을 기다려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에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카페나 식당에 대신 주문을 해보라고 시킨다고 가정해봅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도전으로 보이겠지만, 직원이나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지고, 화가 날 수 있고, 그 가족이 민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 상황이 민폐처럼 느껴지만 한다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이런 경험을 쌓을까요?
우스갯소리로 ‘신입은 도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냐’고 하죠. 누구나 처음에는 다 서툴고, 잘 하지 못합니다. 사회 경험이 적고, 인간관계가 좁고, 모든 게 낯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어느 순간 뚝딱!하고 주문을 척척하지 못합니다.
“아닌데? 처음 하는 애들은 또 잘 하던데?”
그럴 수도 있죠. 성향은 아이들마다 다르니 낯선 사람에게도 떨지않고 잘 말하는 아이들이 있죠. 저도 그런 아이들을 봤었는데, 참 기특하고 신기하더군요. 이런 아이들도 있듯이 낯 가려하고, 수줍어하는 아이도 있지 않을까요? 왜 이런 아이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요? 이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관계 형성에 조심스럽고, 느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문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죠. 활달한 아이보다 더 큰 용기를 낸 아이들이 마음을 굳게 먹고 얘기를 했는데, 돌아오는 건 ‘왜 그렇게 웅얼거리냐,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해!’라는 타박하는 목소리죠. 똑같이 주문을 하는데 누군가는 기특하다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후자의 아이에게 이런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움츠려들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절망적이게도, 우리 사회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학교도, 학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도를 빼야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수업에 따라오는 아이가 있든 말든, 나중에 방과후 수업을 하거나 말거나, 일단 수업은 진행하지 않나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 봤자 아이들의 성적은 오르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잘 따라올 수 있는데, 정해진 교과 과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져 화를 내죠. 공부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인데 그저 공부를 못한다고 아이들에게 면박을 주죠. 충격 요법으로, 오기가 생기게 해서 공부를 하게 할 요량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열등감으로, 오기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논외 대상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일본 예능 프로그램인 <나의 첫 심부름>이 있습니다. 실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 카메라인데요. 처음 심부름 나가는 과정이 그대로 나옵니다. 그 중 세탁소에 가는 아이 편이 기억이 납니다. 한국 나이로 4~5살 정도되는 아이였는데, 혼자 세탁소에 가서 아버지의 옷을 맡기고 새 옷을 받아오는 게 심부름이었습니다. 아이는 낯을 좀 가리는지, 카운터 앞에 서서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탁소 사장님은 아이를 묵묵히 기다릴 뿐, 전혀 답답한 기색이 없으셨습니다. 물론 촬영 중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 것도 있겠죠. 사장님은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까지 계속 기다렸고, 아이는 몇 십분 만에 옷을 꺼내서 드렸죠. 만약 사장님이 아이에게 답답하다며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면, 아이는 그 경험이 어떻게 기억되었을까요? 제가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처럼 아이는 후에 또 심부름 할 때 지레 겁먹게 되지 않았을까요?
사회적으로 미숙한 존재이기에 아이들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또 절망적이게도 한국의 시그니처 문화는 ‘빨리 빨리’라서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주 문화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아이디어가 있다면, ‘느린 식당’처럼 해서 아이들이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식당이 생기면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이미 있을지도... 치매 어르신들이 직원인 프로젝트 식당도 있었죠.)
‘노키즈존’은 취향 차이일뿐이라고, 어린이 혐오가 조금씩 퍼지고 있는 지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