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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Nov 09. 2022

<브이 포 벤데타>, 안주할 것인가 헤쳐나갈 것인가


"정부가 대화 대신 곤봉을 휘둘러도 언어의 강력한 힘이 의미 전달을 넘어서 들으려 하는 자에게 진실을 전해서죠. 그 진실이란 이 나라가 단단히 잘못됐단 겁니다. 잔혹함, 부정, 편협함, 탄압이 만연하고 한땐 자유로운 비판이나 사고, 의사 표현이 가능했지만 이젠 온갖 감시 속에 침묵을 강요당하죠.
어쩌다 이렇게 됐죠? 누구 잘못입니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고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야하는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하지.

국민이 힘을 합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수많은 명대사를 낳았고, '가이 포크스' 가면 신드롬을 일으켰고, 현 시대까지도 아주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에 지난 11월 2일 재개봉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자세한 줄거리는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고, 브런치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해석과 느낀 점을 써보려한다.

https://m.blog.naver.com/purply_ily/222920552177




혼란이 있기 때문에 공포 정치?

공포 정치를 위해 혼란을 유발?

비밀 경찰들이 이비를 겁탈하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이 세상이 망가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질서가 없는 세상에서 권력을 쥐어주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휘두르려고 한다.

정부가 대화가 아닌 몽둥이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하는 건, 그리고 노래 자체를 금지하고, 어떤 방송들을 금지한다는 건, 얼마나 '말'의 힘이 대단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금지된 노래가 있었고, 또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있듯이 '말과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쉽게 바뀌지 않으며 제일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억압된 상황에서 사람의 몸은 굴복할지라도 사람의 생각은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반정부적인 생각을 모두 금지시켜버리는 것이다.


전세계적인 고난을 일부러 유발시켜 정부가 공포 정치를 통해 국민들을 장악하려는 모습이 마치 지금 이 시대와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음모론에 해당되는 것이긴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한 것 그리고 이전의 전염병이 유행한 것. 그리고 러시아의 일방적인 전쟁. 경제 상황이 전세계적으로 좋지 않은 것. 이 모두가 사실은 전세계 고위자들을 위한 하나의 자작극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 자작극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들이 힘이 세기 때문에 난 아무 것도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V의 말대로 국민들이 힘을 합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시위를 해서 국정농단을 물리친 것처럼 말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세상은 히틀러가 있었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치 문양도 비슷하며,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딴 아담 서틀러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와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시대는 대놓고 탄압을 했던 시대라면, 지금은 아무도 모르게 탄압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런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만 봐도 각 방송사, 언론사들은 객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그들 자체의 정치적 성향을 갖고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방송사만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한 편만 지지하고 다른 편은 무시한다. 그만큼 말과 글의 힘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과거의 행동들을 통해 앞으로의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파시즘과 아나키즘

이 영화의 원작은 '파시즘에 대항하여 아나키즘을 주장'한다. 파시즘은 국수주의, 민족성을 토대로 똘똘 뭉치자는 주의다. 독재와는 다른 것이, 독재는 국민들이 원치 않는데도 밀어붙이는 정치인데, 파시즘은 국민들도 다같이 민족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는 분명 누군가의 선동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나키즘은 개인이나 국가의 권력과 지배를 벗어나자는 주의를 뜻한다. 원작자는 아나키즘을 원했지만 막상 영화를 만들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으니 투표를 잘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여 영화를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원작자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으며 아예 정부의 권력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너무 아나키즘을 중시하는 건..개인적으로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적당한 통제와 국민들이 그 아래에서 안전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는 나아가야 한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처럼 정부의 강력한 탄압과 규제는 국민들의 자유를 잃을 뿐더러 생각이나 의지 조차 잃게 만든다. 서틀러와 크리디가 죽어버려 아무런 명령이 없자 아무것도 못하는 꼭두각시 군인처럼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생각의 자유가 있으며 어딘가에 대항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 자유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고, 그 법은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을 선이어야 한다. 절대적인 자유는 없으며, 절대적인 통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명확한 균형도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흐르며 사람의 생각도 변하듯, 자유와 통제는 드럼통 위에 올려진 시소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계속해서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를 맞추는 것은 오로지 정부가 아니라, 정부와 국민들이어야 한다.



가면의 의미

영화에서 V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이비가 말했던 것럼, V는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V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면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 가면을 쓴다. 하지만 가면을 썼기 때문에 두려움을 잊고 자유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면을 쓰지 않고도 자유를 찾을 수 있는가? 가면을 쓴다는 건 누군가가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정부가 두렵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정부를 두려워하는가? V가 말했던 것처럼,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 해야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한다." 전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는 정부의 범죄를 겪어온 역사가 있다. 정부에 대항하면 맞거나 죽거나 끌려가는 역사가 있어왔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무차별적인 시위는 법적으로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법은 또 누가 만들었는가? 정부가 만들었다. 국민 전체의 생각이 아니라 몇몇 수뇌부들의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 법이 아닌가? 물론 법이 있기에 이 세상이 질서 있게 유지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개인 자체가 아직은 안전하다는 이유로 법이 굴러가는 것이 마치 평화롭다고 생각한다. '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의식해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 말고, 나에게 피해가 별로 없을 거란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 영국 시민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런던 중심부를 향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선사하는 바가 크다. 똑같은 가면을 썼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개개인은 생김새가 모두 다르지만 생각이 같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두명이 아니라 아주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며, 국민의 강력한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개인이 가져야했던 두려움이 가면에 의해 사라졌고, 혼자가 아닌 단체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며 더욱 더 두려움을 없애주도록 한다. 마치 후반부에 V가 V문양의 도미노를 쓰러뜨렸던 것처럼,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여러 힘을 불러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도미노 하나를 뽑은 건, 내가 그들을 대표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미노 중의 한 블럭에 불과하다는 것. 나로 인해 시민들이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엔 나는 시민들의 한 사람일뿐이라는 것.



맨 마지막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가면을 벗은 건, 폭죽을 정확히 보고자 함이 아니라 정부의 탄압을 시민들의 힘으로 물리치고 개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찾았다는 점을 의미하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각기 다른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속으로는 바꾸고 싶다, 개혁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지만 혼자이기에 두려워서 혹은 내 모든 신변의 유출이 두렵기 때문에 겉으로 티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만약 이 가면의 형태가 모두 똑같아진다면 우리는 영화에서 그랬듯, 그리고 몇 년전 광화문에서 그랬듯 국민들을 위한 공익을 찾고,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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