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수고했어.
예전에 유행하던 티코 유머 시리즈가 있었다.
-껌을 밟으면 티코가 움직이지 못한다.
-주차가 힘들면 그냥 차를 들어서 주차하면 된다.
-급커브를 돌 때 차가 가벼워서 한 쪽 바퀴가 들린다.
등등이었다. 지금도 방송에서 가끔씩 추억의 차를 소개하며 티코를 얘기 한다. 그리고는 항상 달려 나오는 말이 티코 시리즈 유머다.
솔직히 나는 진지충 같겠지만, 그런 유머가 듣기 싫었다. 티코는 아빠의 첫 차였고, 10년 동안 아빠의 출근길을 함께하고 가족을 여기저기 데려다 준 고마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가볍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저런 유머를 듣는 것이 곧 우리 아빠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학교 본관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을 지나면서 팥색의 티코를 발견했다. 그때 친구가 티코를 보고 “썩은 차다!”라고 했다. 아빠 차는 흰색의 티코였지만, 같은 차종이었기 때문에 난 티코가 욕 들어 먹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다른 차를 가리키며 “저 차가 더 썩은 차다!”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맞네!”라고 하면서 웃었다. 친구는 그냥 재미로 얘기한 거였지만 당시 나는 그 말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었다. 또, 지금 생각하면 내가 욕한 차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땐 티코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 차가 욕받이 대상이 되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저런 티코 유머 시리즈를 들어왔고, 친구들의 부모님 차도 봐왔기에 티코가 그렇게 좋은 차는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이유로 어린 마음에 티코를 부끄러워하기도 했었다. 그것만 생각하면 티코에게 미안하다. 티코는 그저 우리 가족을 태워주는 고마운 존재인데 내가 걔를 부끄러워했다. 그래도 티코는 내 곁에 10년을 있어 주었다.
아빠는 티코를 떠나보낼 때 우셨다. 아빠가 티코에 애정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무의식적으로 애정이 있었다. 통장 비밀번호, 홈페이지 아이디, 비밀번호 등등이 티코의 자동차 번호였다. 물론 그 번호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리고 가끔가다 티코를 발견하거나 같은 번호를 보면 괜히 반갑다. 동시에 저렇게 작은 차에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탔다는 것도 놀라웠다. 어릴 때는 뒷자석에 앉으면 천장과 머리 사이 공간이 남았는데, 지금 들어가면 천장에 머리가 닿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티코가 정말 고생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아빠는 3번째 자동차로 운전하시지만, 우리 가족은 영원히 티코를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잊어선 안 된다. 우리의 10년 치 추억이 그곳에 다 들어있다. 그만큼 티코는 우리 가족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의 존재다. 이제 티코가 클래식카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의 역사책에는 티코가 터줏대감이 되어 몇 페이지 씩 자리하고 있다. 거기선 사라지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 CAR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