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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Dec 23. 2020

우리 가족의 첫 차, 티코

10년 동안 수고했어.

예전에 유행하던 티코 유머 시리즈가 있었다.

-껌을 밟으면 티코가 움직이지 못한다.
-주차가 힘들면 그냥 차를 들어서 주차하면 된다.
-급커브를 돌 때 차가 가벼워서 한 쪽 바퀴가 들린다.

등등이었다. 지금도 방송에서 가끔씩 추억의 차를 소개하며 티코를 얘기 한다. 그리고는 항상 달려 나오는 말이 티코 시리즈 유머다.


솔직히 나는 진지충 같겠지만, 그런 유머가 듣기 싫었다. 티코는 아빠의 첫 차였고, 10년 동안 아빠의 출근길을 함께하고 가족을 여기저기 데려다 준 고마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가볍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저런 유머를 듣는 것이 곧 우리 아빠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출처 모토야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학교 본관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을 지나면서 팥색의 티코를 발견했다. 그때 친구가 티코를 보고 “썩은 차다!”라고 했다. 아빠 차는 흰색의 티코였지만, 같은 차종이었기 때문에 난 티코가 욕 들어 먹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다른 차를 가리키며 “저 차가 더 썩은 차다!”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맞네!”라고 하면서 웃었다. 친구는 그냥 재미로 얘기한 거였지만 당시 나는 그 말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었다. 또, 지금 생각하면 내가 욕한 차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땐 티코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 차가 욕받이 대상이 되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저런 티코 유머 시리즈를 들어왔고, 친구들의 부모님 차도 봐왔기에 티코가 그렇게 좋은 차는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이유로 어린 마음에 티코를 부끄러워하기도 했었다. 그것만 생각하면 티코에게 미안하다. 티코는 그저 우리 가족을 태워주는 고마운 존재인데 내가 걔를 부끄러워했다. 그래도 티코는 내 곁에 10년을 있어 주었다.




아빠는 티코를 떠나보낼 때 우셨다. 아빠가 티코에 애정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무의식적으로 애정이 있었다. 통장 비밀번호, 홈페이지 아이디, 비밀번호 등등이 티코의 자동차 번호였다. 물론 그 번호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리고 가끔가다 티코를 발견하거나 같은 번호를 보면 괜히 반갑다. 동시에 저렇게 작은 차에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탔다는 것도 놀라웠다. 어릴 때는 뒷자석에 앉으면 천장과 머리 사이 공간이 남았는데, 지금 들어가면 천장에 머리가 닿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티코가 정말 고생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아빠는 3번째 자동차로 운전하시지만, 우리 가족은 영원히 티코를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잊어선 안 된다. 우리의 10년 치 추억이 그곳에 다 들어있다. 그만큼 티코는 우리 가족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의 존재다. 이제 티코가 클래식카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의 역사책에는 티코가 터줏대감이 되어 몇 페이지 씩 자리하고 있다. 거기선 사라지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 CAR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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