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의 설움
나에겐 두 살 터울의 언니가 한 명 있다. 난 우리 가족에서 엄마, 아빠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의지한다. 어릴 때 맞벌이 가정 아래 언니와 나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부터 어린 언니는 나를 지켜주었다. 그 때문에 난 부모님보다 언니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언니와 나는 '인터넷에서 주로 그려지는 자매의 모습'과는 다르게 싸운 적이 열 손가락 안에 꼽고, 치고받고 싸운 적은 아예 없다. 미친X 같은 욕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성인이 된 지금도 밖에서 손도 잘 잡고 다닌다.
이런 우애와 상반되게 어릴 적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진학 전부터 부부싸움이 심했고, 맞벌이 때문에 할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다. 할머니가 10년 정도 우리와 생활하셨는데, 할머니는 반찬을 할 때나 집안일을 할 때 항상 언니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언니에게 장녀라는 이유로 ‘나중에 크면 이런 거 네가 다 해야 돼.’라고 하셨다.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밖에 되지 않는 나이인 우리 언니에게. 미리 일을 배우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유독 언니에게만 그랬다는 것이었다.
또, 언니는 언니라서 채찍질이 더 심했다. 어릴 적에 언니는 나보다 더 많이 맞고 자랐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언니는 할머니와 아빠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런 언니를 달래주었던 건 엄마였다.
언니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언니는 처음 '몰래' 휴대폰을 샀다. 그때 어린 학생들한테 휴대폰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언니도 어린 마음에 사달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다. 휴대폰을 사달라고 아빠에게 얘기를 하니까, 할머니는 “네 나이에 무슨 휴대폰이냐, 고등학생인 OO이도(사촌 언니) 휴대폰 이제 가졌다.”라고 하셨다. 거기에 아빠는 할머니 편을 드는 듯하면서 사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언니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할머니와 아빠 몰래 언니에게 휴대폰을 사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언니보다 더 어린 나이인 초등학교 5학년 때 휴대폰을 사달라고 했었고, 부모님은 바로 사주셨다. 그때는 할머니께서 혼자 살고 계셨을 때여서 가능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뒤늦게 언니가 얘기했지만, 나에겐 별 꾸중 없이 휴대폰을 사줬던 게 서운했다고 했다.
장녀의 설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집은 빽도, 돈도 없는 집안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언니는 또래보다 똑똑했다. 초·중·고를 다니면서 언니는 한 번도 전교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언니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했다. 늙어가는 부모님, 일하다 그만둔 동생을 생각하니 미래가 아득해졌기 때문이다. 시험에만 집중하고 싶던 언니는 휴학계를 내고 1년 정도 독서실에서 살았다. 언니는 독서실에서 혼자 울 때도 많았다고 했다. 뚜렷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독서실 등 아래서 언제 붙을 수 있을까 하며 초조해했다. 언니는 몇 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합격의 문을 열었다. 언니는 언니 또래에 비해 일찍 취업한 케이스였는데, 아마 이것도 언니가 짊어진 부담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는 똑똑한 것보다 압박에 대한 노력으로 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니는 TV를 볼 때도, 친척집에 갈 때도, 명절에도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책이든 수학책이든 짬을 내면서 책을 들여다봤다. 장녀에 대한 압박감이 언니의 공부 습관을 만들어주었다. 언니가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린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했던 결과가 저 직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아마 아직도 언니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압박을 받아왔던 게 몸에 익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무게만 달라졌을 뿐이다. 언니가 이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가 다 짊어져도 좋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금, 난 언니에 대한 사랑을 글로나마 표현하고 있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