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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Jan 06. 2021

핑구는 슬픈 만화 아니야?

예전에 유명했던 애니메이션 ‘핑구’를 대부분 알 것이다. ‘핑구’는 스위스와 영국이 합작해서 만들어 낸, 남극을 배경으로 펭귄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어릴 적에 자주 봤던 기억이 난다. 근데 난 불과 몇 년전까지 핑구가 슬픈 이야기를 담은 만화인 줄 알았다. 핑구에겐 부모님이 계셨는데, 없다고 생각하며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언니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핑구는 분명 가족이 재밌게 노는 만화인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만화를 봤던 어린 내 자신이 슬퍼서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가정이 위태로웠다. 그 속에서 언니와 나는 우리 집인데도 눈칫밥을 먹으며 항상 기가 죽어있는 상태로 살았다. 그런 우리를 달래주었던 건 TV였다. 그런 행복하지 않은 정서로 TV 속의 행복한 핑구를 봤지만, 내가 정작 기억했던 건 핑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어릴 적이었다. 그 기억을 핑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핑구를 보면 마냥 기쁘지는 않다. 괜히 슬퍼지기 때문이다. 


좋지만은 않은 환경에서 나는 만화로 나를 달랬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핑구에게 나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핑구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핑구가 바랐던 건 아이들의 행복이었을텐데.


만화 <캣독> / 모 은행 캐릭터 / KBS <린다의 신기한 여행>


핑구 뿐만이 아니라 캣독이라는 만화를 볼 때도 그랬다. 그냥 강아지와 고양이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게 너무 슬펐다.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지금도 TV에서 하는 광고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슬퍼진다.


모 은행 광고에서 '어부바~' 하면서 돼지가 3마리의 돼지를 업고 다닌다. 나는 업은 돼지가 너무 불쌍해보였다. 짐을 들어드리겠다는 그런 마케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렇기엔 돼지가 너무 힘겨워보였다. 차라리 슈퍼맨처럼 힘센 캐릭터였으면 좀 나았을텐데.


얼마전엔 채널을 돌리다가 KBS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축구를 하고 싶은데 솜사탕이라서 끼워주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고, 솜사탕은 낯을 가려서 같이 축구 하고 싶다는 말을 못했다. 나는 그 솜사탕이 안쓰러웠다. 다행히 솜사탕의 장점으로 축구를 같이 할 수 있었지만 부끄러워하는 솜사탕의 모습이 짠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캐릭터가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해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걸까?


만화 <핑구>


한편으로는 어릴 적 봤던 만화 중 슬픈 만화라고 생각하는 게 두 가지밖에 없어서 다행이다. 우리 가족이 위태했던 기간이 너무 길었다면, 아마 난 만화 전체를 못 봤을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괜찮다. 우리는 좀 더 성장했고, 심각할 정도의 위태함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슬픈 핑구는 내 마음 한 켠에서 숨쉬고 있다. 그 핑구는 내가 죽을 때까지 슬픈 상태로 살 것이다. 그렇게 슬픈 어린 시절을 평생 안고 살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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