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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Mar 22. 2021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빠져나와 너와 나를 만나다.

지브리 대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본 게시물은 영화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 유튜브와 개인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해석입니다.



어긋나 있던 시간을 맞추다


난처한 상황의 소피를 구해주는 하울 / 고무인간을 피해 하늘을 걷는 소피와 하울


"한참 찾았잖아"



이 부분은 아는 분들은 다 아는 해석이다.


하울이 소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 대사는 소피가 하울의 어린 시절, "난 소피야. 미래에서 기다려 줘."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소피가 미래에서 기다려 달라 했으니 하울이 소피를 찾아다니며 기다렸던 것이다. 찾아 헤맸다는 것의 증거로 하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이 반지는 목적지를 향해 빛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하울이 소피에게 비밀의 뜰을 소개시켜주는 장면에서 소피가 잠시 망설이는 장면이 있다. 하울이 왜 그러냐고 묻자 소피는 "저 집에 가면 네가 날 떠나버릴 것 같아."라고 얘기한다. 영화 후반부에 정말 소피가 땅 아래로 추락해서 어린 시절의 하울과 헤어지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를 소피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듯하다. 즉, 과거에 이런 식으로 헤어졌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하울에게 미래의 소피가 "미래에서 기다려 줘."라고 말하고, 혹은 우리가 모르는 영화 비하인드에서 미래의 하울에게 과거의 소피가 "꼭 만나자."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다. 현재의 하울과 현재의 소피가 다시 처음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어긋난 시간을 살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다가 둘의 시간이 맞춰짐으로써 이야기가 끝이 난다. (난 이 부분을 보면서 드라마 <시그널>이 생각났다. 시그널에서도 드라마에선 보이지 않았지만, 그 세계관 안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서 무전기를 통해 서로가 만나 그 시간을 맞추려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 빙글빙글 헤매는 모습이 이 애니메이션의 OST 제목과 맞닿아있다.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제목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함축해 놓은 주제라고 볼 수 있다.


https://youtu.be/Cj-AL-J98U0

히사이시 조 - 인생의 회전목마




진짜 마음을 드러내다


피폐한 모습의 성 / 평화를 되찾은 모습의 성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하울의 내면을 뜻한다."


어린 하울은 떨어져 죽어버리는 유성을 잡아 삼킴으로써 캘시퍼와 계약을 한다. 하울의 심장을 줌으로써 캘시퍼를 살리는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움직이는 주체는 캘시퍼인데, 캘시퍼는 하울의 심장을 원동력으로 하여 움직인다. 즉, 하울의 성 안은 하울의 심장, 마음을 뜻하고 하울은 겉모습만 멀쩡하고, 마음은 텅 비어있는 상태다.


겉은 번지르르한 것과는 다르게 하울의 성은 엉망진창이다. 그의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피가 청소부 역할을 하며 그의 성을 청소해준다. 이것은 하울이 소피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진짜 하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설리먼의 위협을 피해 성을 이사하는데, 이사한 후 소피의 방이 생겼다는 것은 하울의 마음 안에 소피가 자리 잡았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린시절의 하울 / 성을 청소하는 소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울의 성은 겉모습은 쇳덩이, 나무 등으로 뒤죽박죽 설계되어있다. 시대가 전시상황이라서 그 성은 군함, 총, 탱크 등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하울의 모습을 나타낸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마음이 텅 비어있던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심장을 넣기 전에도 소피에 대한 사랑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쁘다고 한다거나 소피를 지키기 위해 밖에 나가 맞서 싸우는 모습 때문이다. 심장을 넣은 후에도 하울은 소피에게 "머리카락이 별빛이네. 예쁘다."라고 했던 걸 보면 소피에 대한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난 그래서 하울의 심장을 넣는 것은 하울이 갖고 있었던 부담감을 내려놓는다는 게 더 맞는 해석 같다. 심장을 넣음으로써 성이 평화롭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전쟁에 대해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다. 그 부담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하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울의 머리카락 색이 변한다는 것의 의미는

머리카락 색이 변해 화난 하울 / 소피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하울


점잖고 젠틀한 모습만 보여주던 하울이 머리카락 색이 금발에서 짙은 남색으로 변하자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어."라면서 좌절한다. 그러자 소피는 "난 단 한번도 예뻤던 적이 없었어."라며 울컥한다.마음을 진정시킨 하울은 소피에게 "나는 멍청하고 겁쟁이야."라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는다.

즉, 머리 색이 변했다는 건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겉치장을 화려하게 하며 일부러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다녔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자신이 드러나고, 속상해하는 자신을 달래주는 소피를 보며 자신을 감추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 앞에 주어진 전쟁이란 상황을 마주하기 힘든 상태이지만 억지로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왔던 하울이었다.




할머니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할머니로

할머니 모습의 소피 / 소녀 모습의 소피


소피는 어느 순간 소녀로 변하고, 할머니로 변한다. 이는 소피가 마음이 솔직해질 때만 소녀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독은 "우리는 내면의 모습이 90세 할머니일때도, 50세 아줌마일 때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심경의 변화를 외적으로 보여주고자 의도한 것이다.


설리먼이 하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자 소피는 하울은 그렇지 않다고 발끈할 때 소피의 모습이 할머니에서 소녀로 변한다. 그리고 설리먼이 "어머님이 하울을 많이 생각하시네요."라고 하자 바로 할머니로 변한다. 하울에 대한 소피의 사랑이 진심으로 표현할 땐 소녀로 변하지만, 그 진심을 들키자 숨기려고 할 땐 할머니로 변하는 것이다.


소피가 꿈을 꾼 이후로 소피의 머리색이 은빛에서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데, 감독의 오피셜로는 은빛의 머리색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젊은 소녀의 얼굴에 은빛의 머리는 소극적이었던 소녀가 할머니로 변하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소피가 내면의 성장을 겪는 과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전쟁'이 뜻하는 바


 애니메이션은 전시 상황 아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나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 누가 누구와 싸우는 지에 대해선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리먼의 부하로는 금발 머리의 소년들이 여러 명있다. 딱 봐도 하울을 닮은 모습이다. 지브리 측에서는 그 소년이 하울의 과거라고 한다. 하울의 마법스승이 설리먼이었는데, 하울은 마법을 배웠지만 실은 설리먼의 전쟁도구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하울의 나이는 27세로 나오지만, 소년이었을 때부터 전쟁도구로 길러져 오면서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하울의 방 안에 인형들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하울의 마음 속에는 동심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 중의 상황 / 설리먼에게 맞서는 하울과 소피


또, 전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소피 역시 장녀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모자가게의 대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소피의 동생은 해맑지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소녀였고, 어머니는 화려한 모습으로 나오며 재혼을 할 것이라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동생과 어머니는 소피와 겉모습으로도 대비되지만, 내면도 대비된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드러내지 못하고 자아와 충돌하는 것을 전쟁으로 비유해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아와의 전쟁 속에서 소피는 방황한다. 그러나 할머니로 변하자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이 따로 있다. 영국의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인데, 원작에는 전쟁의 상황이 나와있지 않다. 소재만 가져왔을 뿐, 모든 걸 바꿨다고 볼 수 있는데 감독이 굳이 전쟁이란 소재를 넣은 이유는 단순히 하울과 소피의 로맨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어른들의 압박으로 비유해서 그 압박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전쟁이 멈춰야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뛰어놀고 자아를 찾아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감독은 이 영화 외에도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이 많다. 어린이도 특별한 재능 없이도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다. 특히 원작에서는 소피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마법능력이 있는데, 애니메이션에는 그런 능력이 없이 오직 사랑이란 진심만으로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써 주제를 극대화시킨다.





인생의 회전목마 안에 있으면 영영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오면 만날 수 있다.


하울과 소피가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에서 헤매다 사랑을 깨닫고 서로를 만났듯,

하울과 소피가 자아를 잃어버리고, 홀로 방황하지만 결국엔 진짜 자신을 찾았듯이


지금도 어디를 가야 할 지 몰라 헤매고 있거나

나를 드러내기 두려워 꽁꽁 감추고 있거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회전목마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방법은 간단하다.


당신이 타고 있는 회전목마에서 내려

나 자신을 드러내고, 원하는 것을 찾으러 떠나면 된다.


하울과 소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https://www.ghibli.jp/works/howl/#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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