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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Feb 03. 2021

우리도 어떤 면에선 '싸이코'가 아닐까?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톺아보기

히치콕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반 이상은 <싸이코>를 택할 것 같다. 그만큼 나도 보고 싶기도 했고, 어떤 작품에서 ‘맥거핀’이라는 장치가 설치되는지 궁금했다.


<방구석 1열>과 <영화당>을 보면서 얻은 해석과 나의 해석을 적어보려 한다.

※스포주의※


인간의 모순과 이중성을'싸이코'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4만 달러의 돈뭉치 / 돈을 세는 마리온


이 영화에 맥거핀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바로 ‘4만 달러의 돈뭉치’다. 이 돈은 마리온이 도주해서 살해당하기 전까지 극의 내용을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게 되고, 돈과 함께 자동차가 늪에 파묻혀버리자 돈의 행방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맥거핀’은 극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사건, 상황, 인물, 소품 등을 지칭한다.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극 후반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즉, 관객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인 장치다.


‘맥거핀’ 단어의 첫 등장은 영국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에서 나왔다. 인도 배경의 원주민과 영국군에 관한 소설 중 영국군이 요새에 들어가 비밀문서를 훔치는 행위의 작전명이 ‘맥거핀’이었다. 히치콕의 영화 <해외 특파원>에서 암호명이 맥거핀으로 쓰이며 본격적으로 그 단어가 쓰였다. 원래 있는 스토리 기법이지만 히치콕이 맥거핀이라 명명한 것이다. (방구석 1열 中)


영화의 초반부에서 속옷만 입고 있는 마리온 / 피가 검열 대상에 오를 것을 대비해 흑백영화로 제작


이 영화가 흑백영화여서 히치콕의 초창기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나 이상한 공포감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흑백을 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흑백영화에서 풍기는 공포에 더 소름이 끼치는 것 같다.)

그래서 흑백의 단순함에 어울리기 위해 ‘버나드 허만’에게 하나의 현악기로 공포감을 줄 수 있도록 음악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음악은 당시에 큰 임팩트였기에, 60년이 지난 지금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줄 때 <싸이코>의 배경음악은 빠지지 않는다.




또 이때 ‘헤이스 코드’라는 검열 수위가 있었는데, 그 수위가 심해서 빨간 피를 숨기려고 흑백영화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이 검열이 어느 정도의 수위였냐면, 남녀가 침대에 발만 올려놓는 것도 금지였고 변기를 보여주는 것도 금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히치콕 감독이 머리를 잘 쓴 것이, 처음에 일부러 노출이 심한 장면을 그대로 찍어서 영화에 삽입했다. 당연히 검열관이 그 장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것임을 안 것이다. 히치콕은 대신에 그럼 이 장면은 빼고 나머지 장면은 다 넣어달라고 요청을 해서 결국엔 본인이 처음 원했던 대로의 영화가 나왔다고 한다. 지금 보면 “괜찮은데?” 하겠지만, 첫 장면이 속옷 차림의 여자와 상의 탈의한 남성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시대상으로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변기는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나름 반전이 핵심 포인트였기 때문에 영화 상영 20분 후는 출입 금지, 스포일러 금지를 통해서 마케팅을 했다고 한다. 실은 마케팅이 목적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스포일러 금지’라는 암묵적인 룰이 퍼졌다고 한다. 현재까지 반전 있는 영화는 ‘스포일러 금지’라고 마케팅을 많이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싸이코>가 시초였던 것이다. 또한 히치콕은 극도의 공포감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영화 종료 후 30초 동안 영화관을 암흑 상태로 만들었고, 30초 후 초록빛의 조명을 켜서 서로의 놀란 모습을 확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수평-수직의 기하학적인 그래픽 효과와 영상미를 잘 활용했다고 한다. <싸이코>의 오프닝에는 가로의 선들이 왔다 갔다 하고, 후에 세로의 선들이 왔다 갔다 하다가 미국의 고층 건물(수직)을 보여줌으로써 페이드 인, 아웃이 된다. 이후 파노라마처럼 패닝 되면서 저층 건물(수평)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후 호텔 방에 누워있는(수평) 마리온과 서 있는(수직) 샘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이 섰다, 누웠다를 반복한다. 수평과 수직의 엇갈린 표현으로 마리온과 샘의 관계도 마냥 평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 베이츠 모텔은 단층 구조(수평)로 되어있고, 그 뒤편에 큰 저택(수직)이 자리 잡고 있다. 내 생각엔 이 둘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 프레임 안에 수평과 수직의 모습을 함께 담으려면 억지로 줌 아웃을 해야 하니, 빈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부자연스럽고 불안함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물이 빨려 들어가는 수챗구멍과 마리온의 눈동자가 교차된다.


선과 원을 잘 이용한 것이 마리온의 샤워 장면에도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사선으로 물줄기가 떨어지고 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통해 선을 잘 활용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수챗구멍으로 물이 들어가는 모습과 마리온의 눈동자가 교차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도 원을 이용한 장면이다. 해석으로는 우리가 ‘관음’을 통해 살인이라는 장면을 몰래 지켜본다는 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몰래 지켜보는 장치가 수챗구멍이고 그것이 마리온의 눈동자로 이어지며 관객들에게도 죄책감 같은 깨달음을 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히치콕은 ‘빈 공간’을 잘 활용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마리온이 욕실에서 씻고 있을 때,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서 마리온이 씻고 있고 나머지 화면은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마치 그곳에 누군가가 침범해 올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다. (타이틀 사진 참고) 이 ‘빈 공간’을 활용한 예는 그의 다른 영화 <새>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곳곳에 새의 사진과 박제된 새가 등장해서 새가 뜻하는 바도 있다. 노만은 새를 박제하는 취미가 있는데, 그는 다른 동물보다 새를 박제하는 게 더 보기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린 모두 각자의 덫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갇혀 있는 거죠.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어요."라고 한다. 노만은 '새는 날 수 있지만 박제를 통해 날 수 없도록 잡아둔다.' 박제된 새처럼 노만은 스스로를 모텔에 잡아두고 있음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저 말을 하면서 갇혀있음을 합리화하려하는 듯하다.


또한 어머니가 된 노만의 독백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박제된 새 같겠지.'라고 한다. 하지만 '박제된 새라도 멀리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내가 손 까딱 못 하는 줄 알거야. 내가 파리 하나 못 죽이는 사람이란 걸 알게 해주지.' 라며 경찰에게 자신은 선량한 사람임을 어필하려고 한다.




또한, 영화를 보면 각도를 참 잘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립탐정이 베이츠 모텔에 들러서 고객 명부를 살펴볼 때, 노만도 명부를 엿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노만이 고개를 기괴하게 꺾는 줄 알았다. 다시 보니 노만은 가만히 있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기괴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지막엔 어머니가 되어버린 노만이 마음속으로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의 나약함을 경찰들에게 어필해서 경찰들이 나는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할 것이다.’라는 소름 끼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노만의 얼굴과 해골이 된 어머니의 모습이 교차되다가 화면이 바뀐다. 노만의 안에서 노만과 어머니가 싸우다가 결국 어머니가 노만을 지배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노만 안에 있는 어머니가 싸이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머니 본체가 싸이코가 아니라 ‘노만이 만들어낸 어머니’가 싸이코다. 원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나서 새 애인을 만나 아들 노만과 함께 새 출발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노만의 비뚤어진 질투심으로 노만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애인을 죽였다. 어머니를 죽였을 때 노만 안에 있는 새로운 어머니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노만의 비정상적인 심리로 그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서도 보면 노만과 어머니가 싸우다가 결국엔 어머니가 이겼다고 했는데, 실상은 똑같은 노만인데 ‘싸이코 노만’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제목이 <싸이코>인 이유는 ‘노만만이 싸이코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마리온도 결국엔 범죄자다. 그러나 10년간 일해온 회사의 돈을 횡령함으로써 그녀 내면에 있는 싸이코적인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싸이코라고 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초조해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마리온의 행동과 더불어 노만의 이중 자아를 통해서 그들의 이중적인 면모가 곧 ‘싸이코’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공금횡령하고 도주하는 마리온 / 자동차가 늪으로 빠지는 장면


영화 평론 프로그램인 <영화당>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 님이 하신 말을 발췌하자면, 관객은 마리온이 공금횡령을 한 범죄자임을 알면서도 그녀가 경찰에 붙잡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본다. 그리고 노만이 자동차를 늪에 빠뜨릴 때, 자동차가 한번 걸려서 제대로 내려가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빨리 자동차가 늪으로 사라져버리기를 바란다. 마리온이 죽어버리자 응원해 줄 대상이 없어져 그 대상을 노만에게 옮긴 것이다. 관객은 마리온, 노만이 범죄자임을 알지만 그들이 경찰에 붙잡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본다. 윤리적으로 범죄자 편을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지만, 영화에서는 그들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관객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히치콕 영화의 특징 중에는 ‘관음’이 있다. 이 영화 외에도 <이창>에서는 대놓고 ‘관음’이 주제다. 노만이 벽의 구멍으로 마리온을 지켜보는 것으로 ‘관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영화 첫 장면에서 호텔방에 있는 마리온과 샘, 욕실에서 살인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관음’을 통해 폭력과 살인, 에로틱한 행위를 지켜보거나 지켜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관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죽은 마리온의 눈동자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도 ‘관음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관음’을 하게 되면 이상한 희열이나 궁금증을 느낀다. 영화 속의 장치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모순되고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런 모습이 곧 '싸이코'적인 면모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마음이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는 걸까? <싸이코>에서 마리온이 죽는 모습을 관객이 ‘관음’함으로써 결국 ‘관음’은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 악한 행위 밖에 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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