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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동조

진실은 어디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다.

by sol

악플보다 본질적이고 큰 문제는 '동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콘텐츠에 담아내는 미디어의 특성상, 각색은 불가피하다. 제작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을 위주로 편집하고, 재미와 몰입도를 위해 각색을 더한다. 이로 인한 미디어의 틀 짓기와 밴드왜건 효과와 같은 영향 또한 어쩔 수 없다. 결국 미디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이용자들에게 요구되는데..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눈앞으로 맞춤형 정보들이 넘쳐 나는 현실에서 내가 합리적인 판단 아래 정보를 걸러내고 찾아내는 것은 나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귀찮은 문제이다.


주어진 정보 아래 현상을 접하다 보면 전달하는 사람의 해석에 자연스레 설득된다. 난 그만큼 해당 현상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생각과 더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의지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수준급의 전문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의 문제점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극히 일부의 정보를 겉핥기식으로 접하고는 이미 내가 전체를 경험한 것처럼 인지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TV시청자들이 지상파 방송과 메이저 언론사의 정보는 신뢰했듯, 이제는 내가 구독하는 인플루언서와 채널이 전달하는 정보는 쉽게 믿고 그들의 의견에 고민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동기화하곤 한다. 딱히 선호하는 인플루언서나 채널이 없다 해도 "맞춤형" 추천 서비스는 이상하리 만큼 내가 관심도 없던 특정주제, 특정인물에 대한 콘텐츠를 끝도 없이 내 눈앞에 갖다 바치기도 한다. 관심이 없어도 자극적인 썸네일은 어느 순간 관련영상 10개를 내리 시청게 한다.


TV시대와 다른 점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비슷한 채널과 콘텐츠를 시청하던 과거와 달리, 각 개인이 접하는 정보가 다양해지다 보니 콘텐츠 내용을 곧바로 본인의 지식으로 탈바꿈하기 쉽다는 것이다. 내가 어제 접한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얘기해도 상대방이 출처를 알기 어렵고 새로운 이야기에 흥미롭게 듣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다른 콘텐츠에서 핵심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 더 자극적으로 편집하여 본인의 콘텐츠행색을 하는 채널도 부지기수다.


그런 콘텐츠들에 달리는 댓글은 여론의 기반이 된다. 해당 내용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련 댓글 또한 많아질 수밖에.

사실 논리가 없는 악플은 대중이 외면하면 결국 잊히는데, 개인의 선호와 취향도 평가받는 아이러니한 현 시기에 논리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대중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악플 그 자체에는 힘이 약하다.

악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제삼자의 동조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객관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았다는 기분을 느끼게끔 한다.

악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섣부른 판단과 개연성을 실은 글이 집단적 bullying에 힘을 실어는 현실이다. 어느 순간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부분적 파편들의 짜깁기로 만든 프레임의 껍데기 안에서 목적성만 다분한 여론몰이를 볼 때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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