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의 정체

카페x 사장님

by 카페일기

"사장님, 이전하셨다기에 놀러 왔어요."

가게 문을 엶과 동시에 청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이 손님은 '카페xx'의 여사장님이다.

이전하기 전 가게에서 3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했던 커피숍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사장님의 이야기는 건너 건너 언뜻 듣기만 했지, 실제로 얼굴을 뵙고 인사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한 동네에서는 통성명 한번 못 했다가 이사하고 나서 인사를 나누게 되다니. 이 상황이 묘하면서도 웃겼다.

같은 동네에서 장사할 때는 선뜻 못 왔었는데 이제는 이사하셨으니까 자주 오겠다는 말을 건네는 사장님이 호쾌해 보였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제야 인사를 드리네요. 먼 길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초반의 어색함이 지나고 나자, 사장님은 봇물 터지듯이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주로 왜 그동안 편하게 카페에 가지 못했었는지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그동안 지겹도록 각종 민원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주차 관련 민원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종량제 봉투에 플라스틱컵이 딸려 들어가기라도 하면 누군가 그 봉투 사진을 찍어 '이 커피숍은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한다' 라든가, 점심시간에 손님이 테이크아웃잔을 들고 매장에서 취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 카페 내부에서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자잘한 민원들을 하도 많이 받아 사장님은 주변의 동종업계 자영업자가 계속해서 신고를 하는 것 같은데 도통 누군지 알 길이 없어 아무 데도 못 갔다고 한다.

"솔직히 사장님이 신고한 걸 수도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요..? 그럴 수 있지.

"그런데요, 사장님. 지난주에 제가 그 범인을 알아냈어요. 사장님께도 조심하라고 말씀드리러 온 것도 있어요."

나는 이미 이사 갔는데 조심할 게 뭐가 있지? 그런데 그 범인이 누구지? 애써 호기심 가득한 마음을 누르며 차분한 척 여쭤봤다.

"그래요? 누구래요?"

"저희 가게 뒷골목에 있는 카페x 아시죠? 그 카페 사장님이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민원을 넣는대요."

헉. 그 카페 간 적 있는데. 심지어 반갑게 통성명도 한 사인데.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단골손님한테 사정사정했거든요. 도대체 누구냐고. 알아봐 달라고요. 그랬는데 글쎄, 거기 카페x 사장님이었던 거 있죠? 거기 여자 사장님 말고 남자 사장님이요. 그리고 그분이 사장님네 얘기도 함부로 하더래요."

"저희 가게 얘기를요?"

"네, 요즘에 뭐. 가게 평균 매출을 알려주는 어플이 있다나? 그런가 봐요.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그런데 카페x 사장님이 그 어플로 동네 카페들 매출을 쫙 보고서는 xxx는 장사가 안 돼서 접은 거다 이야기를 하고 다닌데요. 그리고 저 건너편에 있는 xxx커피는 사람 많아 보이는데 실제 매출은 이것밖에 안 되더라~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닌대요. 저 이야기 듣고 기함했잖아요. 사장님도 얼른 그 어플 들어가셔서요. 매출 노출 금지 신청? 그거 신청 하셔야 돼요. 사람들이 보고 막 함부로 이야기한다니까요?"


사장님의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장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남의 가게 매출을 알려주는 어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실제로 확인하고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심지어 그 사람이 우리 가게 근처에 일하는 동종업계 사람이라는 것.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더니 그 사장님 '사장님도 놀랐죠? 대박이죠.' 하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니 그래서, 저는 솔직히 한동안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민원도 받고 뒷말도 듣고 하다 보니까 주변 모두가 다 의심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xxx도 못 갔었죠. 그런데 이제 자주 올게요."


다음날에는 전 가게 근처에서 맥주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보름간 영업 정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누군가 민원을 넣었다는데, 민원인이 다름 아닌 바로 옆 가게 에스테틱 여사장님이었다고 한다. 나도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인데. 정말 참하고 싹싹하고 밝기만 한 분 같았는데..


가게 초창기에 주차장 문제로 한참 동안 민원을 받고 주변에서 "근처 사장님들 중 누구 아니야? 주변 좀 잘 살펴봐"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동네에 있는 모든 사장님들이 의심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의심을 하다가는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 것 같아 민원인이 근처 주민이거나, 지나가던 행인 1, 혹은 행인 2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주변 사장님들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나를 모르는 낯선이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신고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훨씬 편했고, 이사를 하게 된 지금까지 생각이 바뀐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사 후에 들려오는 소식들을 듣고 있자니 어쩌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민원 사건 또한 주변 자영업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

재작년 9월부터 2년 가까이 되는 날들 동안, 그럼에도 내가 힘을 내면서 동네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독려하는 사장님들 덕분이었다. 자영업자 만이 자영업자를 이해하고,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를 돕는다. 그게 내가 배운 자영업의 이치 같은 것이다.

남의 가게를 끊임없이 헐뜯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끌어내리려고 해 봤자, 그 손님들이 본인에게 가는 게 아닐 텐데.

모르겠다. 나도 알게 모르게 손님들을 뺏겼을 수도 있겠다. 그 덕분에 그 가게가 우리 가게보다 매출이 두 배, 아니 세 배 많아졌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가게가 동네에서 오래갈 수 있을까?

결국에는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고 이렇게 뒤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모두가 알게 되기 마련인데.

역시나 내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게 느리더라도 오래가는 진리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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