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하 May 14. 2019

나는 죽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당신을 좋아한다. 

 나는 죽을 죽기만큼 싫어한다. 뜨거운 것도 좋아하지 않고 특유의 입 안에서 밥알이 으스러지는 감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염에 걸렸을 때도 배가 아픈 것 보다 죽먹는게 싫어서 눈물이 나는 사람이 바로 나이다. 그래서 처음 A가 죽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싫어요’라고 말할뻔 하였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좋아요’ 였다. 

 나는 A를 좋아한다. A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의 ‘좋아함’과 나의 ‘좋아함’은 다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한다.

 A는 장이 약하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이지만 선천적으로 장이 약하여 만성 장염을 앓는다고 하였다. 그날도 A는 장염이 도졌다. 점심에 죽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였다. ‘우리 점심에 죽 어때요?’ ‘아 죽이요? 죽 좋죠. 저도 죽 좋아해요.’ ‘그럼 같이 먹으러 가요 우리.’ 나는 죽이 싫은 것 보다도 그가 ‘우리’라고 말해준 것이 좋아서 죽을 먹으러 가기로 하였다. 그날따라 날씨도 좋았다. 

 ‘우리’가 간 곳은 근처에 있는 모 체인점이었다. 그는 장이 안좋아 자주 온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주 와봤다는 것이 참인 것이, 그는 자연스럽게 메뉴를 골랐다. ‘뭐 드실래요?’ 나는 죽집에서 파는 몇 안되는 밥인 비빔밥이나 먹을까 생각하며 메뉴판 위에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 때 그가 말하였다. ‘저랑 같은거 드실래요?’ ‘네.’ 나는 스스로를 말릴 새도 없이 속도 없이 대답하고 있었다.

 그가 주문한 것은 머쉬룸 어쩌고 하는 긴 이름의 불고기와 버섯과 치즈가 함께 들어간, 나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미 불명의 죽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죽을 싫어한다. 그리고 죽 못지 않게 싫어하는 게 있다면 버섯이다. 그런데 나는 그가 추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섯이 들어간 죽더미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질 무렵 그가 한 술 떴다. 나도 그를 따라 한 술 뜨기로 결심했다. 

 죽의 베이스는 흰 죽이었다. 그리고 위에 얹힌 토핑의 반절은 간장 베이스의 양념을 한 불고기와 버섯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반절은 모짜렐라 치즈 조각으로 추정되는 녹지 않은 흰색 각진 덩어리와 파 등이 차지했다. 간장 양념이 되지 않은 절반의 치즈 파츠를 위해서라며 간장 베이스의 양념장이 주어졌다. 점원은 처음에는 따로 먹다가 나중에 치즈가 좀 녹으면 섞어 먹으라고 하였다. A를 쳐다봤다. 그는 그렇게 먹으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기 부분부터 먹기 시작했다. 양념된 고기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흰 쌀밥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양념된 고기와 함께 먹는 흰죽은 나쁘지 않았다. 뜨끈뜨끈한 공기가 입천장을 가득 매웠다. 의외로 버섯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버섯의 느물느물한 식감을 싫어하는데, 어차피 죽도 느물느물하니까 슥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조금 지나 치즈가 녹을 기미를 보이자 그 위에 양념장을 뿌리고 섞어 먹었다. 고기와 치즈의 조합은 죽이라는 최대의 방해물이 있음에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맛있네요.’ 내가 말했다. ‘그쵸, 제가 죽을 자주 먹어야 하는데 이건 다른 죽이랑 다르게 피자 먹는 느낌을 줘서 맛있다니까요.’ A가 말했다.

 나는 그와 나도 머쉬룸 어쩌고 죽처럼 자연스럽게 섞이길 바랐다. 불고기와 버섯과 치즈, 그리고 죽이라는 말도 안되는 조합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가 피자맛을 내듯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하겠지.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다 드셨으면 일어나실까요? 이렇게 많이 남길 거였으면 하나만 시켜서 나눠 먹을걸 그랬다, 그쵸.’  ‘그러게요, 둘이 하나여도 괜찮았을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