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05

기왕 하는 거 재밌게 하자!

by 에스

05


여름.


학교축제 날이다. 각 과마다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부산히 움직인다. 풍선 터뜨리기 체험을 하는 과도 있고, 프리허그도 한다. 음료수를 팔고 간식도 판다. 노래자랑 프로그램 또한 약방의 감초! (물론 우리 과에서는 누구도 참가하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과는 저녁에 본관 건물 앞에서 주막을 하기로 했단다. 매년 해오는 것 같은데, 크게 이익도 남지 않고 그저 힘들기만 한 일이라 그 누구도 자진해서 일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신입생인 우리가 대거 투입되었다.


대학생들이 학교 축제에 하는 허접한 주막이겠거니, 했지만 생각보다 메뉴가 나쁘지 않았다. 라인업은 파전에 떡볶이, 어묵탕, 마른안주. 다 만들기 쉽고 취향 타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메뉴이다. 요리에 젬병인 나는 정말 다행히도 홀서빙을 맡게 되었다. 요리를 했다간 아마 우리 과 수익이 마이너스이지 않았을까.


축제날. 학교는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기숙사까지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다들 나가서 신나게 축제를 즐기겠군!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기숙사에서 뒹굴거리다가 느지막이 해가 질 때쯤 주막 장소로 기어나갔다.

이미 준비가 한창이었다. 메인 건물 앞에 커다란 돗자리를 몇 개나 깔고 상을 놓고,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을 올려놓았다. 선배들과 친구들 몇 명은 한 구석에서 부산히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술은 넘치도록 많았고,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노래자랑은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엠씨가 생존한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씩 소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테이블 세팅을 마저 도왔다. 메뉴판은 선배들이 준비했는지, 커다란 보드에 손글씨로 정성 들여 귀엽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군,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 주막 일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준비가 한창인 저녁 무렵에서야 나타난 것이다.


“오빠, 웬일이에요? 주막 참여 안 하잖아요.”

“나 없이 잘하고 있나 보러 왔지!”


그는 몸에 딱 맞는 흰색 셔츠의 소매를 걷고는 부리나케 우리를 도와 일을 했다. 힘들어서 얼굴이 있는 대로 찌푸려진 사람들 틈에서 신나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을 큰 소리로 격려해 가며.


“야, 하기 싫은 거 알지만 기왕 하는 거 재밌게 하자!“


세상에서 가장 힘든 말을 동료들에게 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웃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는 걸까, 나는 항상 궁금하고 신기하고,
또 단 한순간도 그렇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의 등장과 함께 주막은 떠들썩해지고 장난을 주고받는 쾌활한 분위기가 되었다. 해야만 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일하는 것.

주막을 하는 과가 몇 없었기에,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은 우리 주막으로 미친 듯이 몰려들어왔다. 가마솥 비슷한 거대 냄비에 끓인 떡볶이는 줄기차게 나갔고, 동시에 술병도 뒹굴기 시작했다. 우리는 식당 직원이 아니었기에, 음식을 흘리기도 하고, 주문을 잘못 받아 사과도 하면서 얼렁뚱땅 어떻게든 주막을 운영해 나갔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있었기에 실수를 해도 그저 재밌는 놀림거리가 되었고, 미친 듯이 바쁠 때에도 수익을 자기한테 기부하라는 실없는 소리에 웃음꽃이 피었다.


정신없는 피크 타임이 지나고, 폭풍 후에는 끔찍한 잔재들이 남아 뒹굴었다. 우리는 조용해진 한밤의 캠퍼스 건물 앞에서 널브러진 소주병과 쓰레기들을 주워 담고 청소를 했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어린 동생들을 북돋아가며 정리를 도왔다.


거의 좀비 상태가 되어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대충 씻고 대자로 좁은 침대 위에 누웠다.

그 사람 생각이 났다.


하기 싫은 일도 기왕 하는 거 재미있게 하자는 말. 그런 말을 하며 웃을 줄 아는 사람.


그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정작 본인은 알고나 있을까.


항상 고맙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8일 오후 08_36_2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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