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유로워져요

1부 EP10. 자유와 책임

by 에스

도대체 내 우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나름 분석적인 자세로 고민해 봤더니 어느 정도 납득되는 결론을 얻은 것 같다. 계속되는 연애의 실패에서부터 분석이 시작되었다.


나는 첫 연애를 8년 정도 유지하다가 헤어졌다. 대학교 동기였던 그 사람과 나는 20대를 오롯이 함께 보냈다. 방방거리며 덤벙대는 나와 다르게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에 반했었고, 사귀면서도 거의 싸우지 않을 만큼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각자 취업을 하고,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집을 얻어서 왔다 갔다 하며 데이트를 하고, 군대를 기다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미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결국 헤어지게 된 이유는 결혼. 그 사람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결혼이 하기 싫어서. 그런데 상대방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었으니 나는 그를 더 이상 잡지 말고 보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첫 애인과 헤어지고 난 후폭풍은 꽤 컸다. 나는 헤어짐의 원인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남자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1등 신랑감이었고 나를 누구보다 아껴주었다. 나 역시 그 사람이 좋았다. 함께 하는 순간들이 행복하고 평온했다. 그런데도 '이 남자와 결혼해서 같이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하면 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고민한 결과, 이혼한 뒤 양육비 한 푼 받지 못한 채 나와 어린 동생을 키워나간 엄마의 영향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빠는 이혼 후 처음 몇 달 정도는 전화로 통화를 했으나 어느 순간 그마저도 끊겼고, 양육비는 이미 한참 전에 끊겼을 것이다. 나는 이 불행한 집이, 불행한 가족이 지긋지긋했다.

나는 공부에 매진했다. 중학교까지는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학원이나 과외의 지원도 없었던 터라 따라가기가 쉽진 않았지만, 오직 이 집을 벗어나서 멀리 떠나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집중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시외버스로 4시간을 가야 하는 대학교에 합격했고, 엄마는 대학교 등록금을 열심히 벌었다. 나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기숙사에 붙어 있었고, 나름 노력을 했지만 학비지원금은 그다지 받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어깨는 연골이 굳었고 손가락 관절에 염증이 생겼으며, 위장이 나빠져 매일 설사를 했다. 낯선 상황이나 불안한 상황에선 호흡곤란이 왔으며 천식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일 년에 두어 번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당신을 보러 와주기만을 매일 기다렸다.

불행한 엄마와 불행한 가족. 이런 걸 보고 자라서 결혼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남자는 너무나도 달랐다. 착하고 성실했다. '불행한 엄마의 결혼 생활을 보았다면 넌 아빠 같은 남자를 안 만나면 되지 않아?'라고 반문해 보았더니 나 자신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남자를 만났고, 사랑의 콩깍지 덕분인지 결혼해서 살면 그럭저럭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 매일 퇴근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집에 있고 같이 저녁을 먹고 잠든다. 아이도 낳지 말고 우리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쓰자고 약속했다. 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나 연애 4년 차에 접어들자 또다시 스멀스멀 불안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못 하겠다.

이번엔 스스로에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해 주고 좋은 사람이 옆에 있는데 왜 또 밀쳐내려고 하는가. 이번에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고민해 봤다. 나 자신의 생각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책임감이 없다. 정확히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아빠가 본인의 개인택시를 도박장에 팔아넘기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던 그 시점부터 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장녀인 나, 공부를 그럭저럭 잘하는 나, 가장 예민한 시절에 상처를 받았던 불쌍한 동생,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하는 엄마, 몸 전체가 망가진 엄마, 탈선을 하면 안 되는 나, 재수를 할 수 없는 나, 취직을 곧바로 해야 하는 나, 동생의 공부를 도와줘야 하는 나, 매달 돈을 보내야 하는 나, 엄마에게 보낸 돈 잔고가 줄어드는지 항상 확인하고 다시 채워놓는 나, 엄마의 건강을 항상 체크해야 하는 나.

딱 이것들까지만. 더 이상은 책임지고 싶지 않다. 누군가와 한평생을 함께 살면서 그의 아내라는 역할에 맞는 책임을 다하고 싶지 않다.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를 책임지는 일은 더더욱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서기 전까지 난 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저 내킬 때는 친구들과 놀고, 집에 있을 땐 고양이와 함께 언제까지고 있고 싶다. 그 어떤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일도 원하지 않는다. 이제 지쳐버린 것이다.


어느덧 직장 10년 차가 되었다. 이 정도면 그동안의 시련과 불행을 나름 잘 견뎠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젠 나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동생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겨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더 이상 내가 그들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따뜻한 집과(비록 전세지만)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정도면 더 바랄 게 없다. 원하는 것도. 그래서 그냥 내 삶이 이걸로 끝났으면 좋겠다. 책의 마지막 장을 해피엔딩인 채로 덮듯이 말이다. 죽음이 지금 당장 다가와줘서 내 인생을 고요하게 마무리지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왜 죽고 싶은가'에 대한 해답을 나름 찾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나의 우울함이, 죽고 싶은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어깨 위로 짊어진 가장의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으며, 모든 걸 뒤로 하고 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으며, 누르면 곧바로 죽을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누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에 즐겨 보던 미드를 보는데, 주인공이 무심하게 말하는 대사 한마디가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유로워져요."

생각을 전환하게 해주는 대사였다. 나는 언제나 죽음에 대해서는 내 쪽에서 쫓아다니는 심정이었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술래잡기를 하는 기분이어서 초조하고 불안했는데, 마음먹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내 통제 하에 놓인 기분이었다. 또한 내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그전까지는 조금 더 삶을 즐겁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족들도 나름의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 대신, 흥청망청 대충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을 가치 있게. 행복하게. 언젠가는 계속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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