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가질 수는 없다

1부 EP11. 결혼이 뭐길래

by 에스

나 같은 사람도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은 나에게 아주 어려운, 수능 4점짜리 수리 문제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이다.

결혼은 여러 가지로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첫 번째로 난처한 것은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겠음을 공언하고 축하받는 자리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결혼식이 이 취지와 맞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사람들은 결혼식이 화려하면 할수록 더 행복하게 살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지, 부단하게 결혼식을 치장하기 바쁘다. 예식장과 식당을 예약하고, 메이크업과 드레스를 맞추는데 상상도 못할 만큼의 돈을 써야한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친구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돈을 마련해 하나 둘 화려한 결혼식을 치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뿌린 축의금을 회수하기 위해 사돈의 팔촌까지 불러들여서 예식장을 꽉 채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내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 결혼식의 취지는 이미 한참 전에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에겐 결혼식과 관련해서 마음이 아픈 일화가 있다.

일전에 엄마가 할머니 생신에 다녀오시는 길에 우리 집에서 하루 묵으셨다. 늦은 밤. 할머니와 친척들 사는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결혼 얘기도 나오게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결혼도 싫지만, 결혼식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게 너무 싫다고. 결혼식에 아빠를 불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혼하고 우리에게 등을 돌린 아빠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청첩장과 결혼식장 입구에 아빠 이름을 빼자니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속상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나를 충격 받게 만들었다. 엄마는 내가 그런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에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을 버리고 아이들 양육비조차 주지 않은 남자. 그 남자를 자기 결혼식에 불러야 할지 고민하는 딸. 엄마의 배신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엄마와 딸의 인연을 끊자고까지 말했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면 집으로 가겠다며 차가운 방바닥에 돌아누우셨다.

나는 멍하니 엄마의 돌아누운 등을 바라보았다. 충격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엄마와 딸의 인연을 끊을 정도로 잘못했나?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이제껏 엄마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온 나인데, 이러면 나는 살 의미가 없지 않나? 화가 치밀었다. 옷장에서 겨울 이불을 꺼내 들고 집 밖으로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문은 잠겨 있었고, 바로 아래층 계단에 서서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늦은 밤이었지만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이불을 털다가 떨어지는 사고로 가장해서 죽을 생각이었다. 엄마 때문에 죽은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와 딸의 인연을 끊자.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죽은 거라고 알리고 싶었다. 한겨울의 아파트 15층은 추웠다.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밤은 길었고, 내 키만한 높이에 열려 있는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그만한 용기를 내지 못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창문 밖 바닥만 내려다보다가 결국 감정이 누그러졌고,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나는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아 추위를 녹였다. 잠시 뒤 현관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잠바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아 나를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깐 눈을 붙였고, 아침이 되자 나는 회사로, 엄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우리는 결혼식에 대해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 또한 더는 결혼식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로 어려운 것은 책임이라는 단어이다. 일전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더 이상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엄마와 동생. 두 사람만을 지키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결혼이란 사람 대 사람의 결합이 아닌 가문 대 가문의 결합이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가족이 오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아내가 되어 그에 맞는 역할을 하며 책임을 다하고 싶지 않다. 내 어깨에 올라가 있는 두 사람. 그 외에 또 다른 사람까지 얹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다. 엄마가 편히 사실 정도의 생활비를 드릴 수 있고, 동생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고 싶다. 자유롭게 살면서 원하는 날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장 난감한 문제는 바로 육아이다. 나는 이렇게 아프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만나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 자녀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주는 영향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너무나 크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나는 여러모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다. 한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낳는 순간 뿐만이 아니라 그 생명이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자라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때까지 케어해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내 앞가림을 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건데 결혼은 왜 해? 그냥 연애만 하지."

그렇다면 나는 되물을 것이다.

"결혼이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인가요?"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반려자를 만나 제도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결혼이 아닌가? 아이는 선택 옵션인 거고.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은 아직 흔하지 않다. 어른들은 내 나이를 물어보고, 내가 나이를 말함과 동시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애를 낳아야 한다며 채근한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상실하는 모든 것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만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을 희생하고 아이를 선택하느냐, 아이를 희생하고 나를 선택하느냐.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이유야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나 역시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오랫동안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가고 싶다. 그 길이 결혼이든, 연애든 우리가 걷고 있는 방향이 같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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