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을 해서 아무도 없는 회사 건물로 조심조심 들어가 내 공간에 쏙 숨어버렸다. 가능하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일만 하고, 점심도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퇴근 또한 누구보다 빠르게, 건물 현관을 나설 때조차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달려나와서 차에 탔다.
어느 날 밤, 늘 그렇듯이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어떤 알고리즘이 나를 이끌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우연히 식물을 키우는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고, 생각보다 글을 재치 있게 잘 쓰심에 감탄하며 그의 글들을 처음부터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식물과 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식물을 별로 안 좋아했다. 자취 9년 차던 나는 매년 원룸을 전전했고, 값싼 원룸은 어디나 그렇듯이 북향이어서 뭔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못되었다. 심지어 나는 색깔 중에서 초록색을 가장 싫어하기까지 했다!(초록색 옷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끔 변덕 부리듯 사들였던 꽃이 달린 화초류는 2주를 못가 죽는 게 예사였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식물은 내게 고기랑 같이 곁들여 먹는 채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역시 사람에게 계기란 중요한가 보다. 사람들을 피해서 집에 갇혀 있는 처지가 되자, 식물은 더할 나위 없이 예뻐 보였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잎들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처음엔 구분이 안 가던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우고, 결국 나는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여 스스로 양분을 얻고 사는 약하디 약한 초록색 생물에게서 힐링을 얻기 시작하였다.
첫 시작은 작은 몬스테라와 필로덴드론 미칸이었다. 이제껏 식물을 한 달 이상 생존시켜본 적이 없는 왕초보에게 가드닝이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분갈이를 실패해서 죽어가는 몬스테라를 다시 흙에서 뽑아 물꽂이로 연명시키고, 습도 조절을 못해서 비 오는 날 떡갈고무나무를 과습으로 죽여버렸다. 새순이 빨리 올라오길 바라며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이 오기도 했고, 사랑초 구근을 너무 빨리 심어 웃자라기도 했다. 물꽂이를 해놓고는 뿌리가 충분히 내리기도 전에 심어버려 죽이기도 했다. 날마다 좌충우돌 예측불허였다. 그러나 그 중에 빼꼼, 하고 얼굴을 내미는 새순은 너무나 반가웠고, 두 개가 세 개, 그리고 그 이상으로 풍성해지는 이파리들은 신기하고 용기과 희망을 주었다. 식물은 메마른 내 삶에 활력소같았다. 꾸역 꾸역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살게 해주었고, 힘을 얻는 만큼 좁은 북향 원룸을 차지하는 식물들의 수도 늘어났다. 식물들에게 햇빛을 주기 위해 식물 전용 전등도 하나 둘 구입해서 어두운 북향을 밝히기 시작했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내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이제껏 느린 것은 남들보다 뒤쳐지고, 한심하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던 내게 식물들은 정말 소중한 해답을 주었다. 식물들은 느리다. 어떨 때는 조화인가, 싶을 정도로 멈춰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멈춰 있지 않았다. 속으로 부단히 애를 쓰고, 자기 자신을 갈고 닦고 기다리다가 '지금이다!' 싶을 때를 놓치지 않고 움직인다. 느리지만 속이 꽉 차 있고, 정확하다. 느림의 미학. 정말이지 멋지지 않은가. 나도 식물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느리지만 확고하게, 나의 길을 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왔던 내 자신이 그제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우울함 때문에 바닥까지 가라앉는 날이면 겨우겨우 식물에 물만 조금 주고 지켜보기만 한다. 가만히 연약한 이파리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부글거리던 감정이 아주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식물들은 매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매번 다른 위안을 준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도 식물을 키운다. 여전히 식물들은 쉽지 않다. 해충이 생겼다가, 물 주는 때를 놓쳐 시들었다가, 어느 녀석은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이 죽어가기도 한다. 또한 식물들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또르르 말려서 올라오는 고사리의 새순과 화초류의 몇 안 되는 꽃송이들, 도로록 하고 펴지는 이파리들 모두 내 소중한 식구들이자 내 힘이다. 삶에 치여서, 자신에게 지쳐서 주저 앉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작은 화분을 선물하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