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늙은 열다섯짜리 고양이야, 안녕.

5부 EP04. 만두가 떠나다

by 에스

나와 15년을 함께 산 고양이 '만두'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거의 한 달이 지난 이제야 겨우 만두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용기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뭔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오랜 구내염을 발치 수술로 이겨낸 듯했던 만두는 6킬로까지 살이 쪘었다.

그러다가 잇몸에 남아 있는 구내염이 점점 심해지던 올해,

다시 조금씩 살이 빠지는 것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오른쪽 턱 아래에

볼록하게 뭔가가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병원에 데려갔더니

암, 이랜다.

동네 동물병원에서는 악성 종양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제주대학교 부설 동물병원의 조직검사는 냉정했다.

이름도 생소하고 아주 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이름을 가진 암이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일주일 남짓 사이에도

만두의 턱에 난 종양은 눈에 띌 정도로 커져 있었다.

종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이 종양을 떼어내려면 오른쪽 턱 자체를 절단해야 한다고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턱을 잘라내면 일상생활이 가능한가요?

어떻게 밥을 먹나요?

이렇게 큰 수술을 버틸 수 있을까요?

입속에 맴도는 수십 개의 질문들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교수님은 충격을 받은 내 모습을 보고 알아서 내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 주셨다.

일단 수술을 바로 진행할 수는 없다고 한다.

3킬로 후반대까지 몸무게가 감소한 아이가 견딜만한 수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취에서 깰 수 없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밥을 먹여 살을 찌우기로 했다.

그러려면 이 악마 같은 구내염을 먼저 잡아야 한다.

관련된 약을 처방받아 데려오는 입이 몹시 썼다.

종양을 제거하려면 족히 500만 원은 들 터였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않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하나, 손에 잡은 핸들을 돌리며 머리도 같이 열심히 굴러갔다.


그런데 수술은 점점 연기되었다.

그 직후부터 만두가 밥을 전혀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그래도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활동량 또한 거의 0에 수렴해서,

좋아하는 방석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에 띄게 쇠약해지는 게 보이자 나는 억지로라도 밥을 먹이기 위해

믹서기에 사료와 물을 갈아 주사기로 먹여보았다.

몸부림을 치고 다 뱉어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병원에 만두를 데려가서 밥을 전혀 먹지 못한다고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서는 만두의 코를 통해 호스를 삽입한 후 밖으로 빼내서

분유 같은 영양제를 주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집에 데려오기는 했는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거의 반응이 없는 만두를 붙잡고 호스를 통해 우유 같은 액체를

조금씩 주사기로 흘려보냈다.

거의 십분 십오 분 동안 아주 천천히 넣어주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가, 먹었던 것을 밤새 다 토해놓았다.

그러고도 새벽 내내 구역질을 했는데,

애써 외면하던 나도 정말 이제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다음 날도 밥을 먹이는 데 실패하고, 다시 병원에 데려갔다.

만두가 화장실을 전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양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 자체가 바닥이 나고 있는 상황.

교수님은 내과 전문으로 교체되었고, 바로 피검사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 급성 신부전이 왔다고 한다.

거기에 며칠간 굶은 탓으로 탈수까지 심하게 진행되는 상황.

나는 만두를 입원시키고 탈수를 막기 위해 수액을 맞췄다.

병원에서는 24시간 아이를 관찰하며 돌봐준다고 해서

그래도 집에 두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집에 오니 텅 빈 것 같았다.


다시 다음 날. 만두를 보러 갔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빛은 똘망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탈수가 잡히지 않는다며 하루 더 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터덜터덜 돌아왔다.


그리고 밤. 새벽 3시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에서 깼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 앳된 소리.

쌍둥이 형제 단이, 짱이가 울고 있나 해서 거실로 나가봤더니 울지 않고 있었다.

고양이 소리는 벽을 하나 두고 나는 것 같이 들렸다.

옆집에서 고양이를 키웠었나? 나는 갸우뚱하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방으로 들어오니 이제 고양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누운 직후 핸드폰이 울렸다. 제주대학교 동물병원.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번개같이 전화를 받았다.

내과 교수님이었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만두가 방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전해왔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정신이 멍했다.

기계처럼 옷을 주워 입고 병원으로 운전을 하는 눈앞이 나도 모르게 뿌예졌다.


입원실로 들어서자 교수님과 수의사 한 명이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만두는 테이블 위에 사뿐히 누워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있어서 딱딱한 몸을 만져보기 전까지는 죽었다고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고양이는 눈을 뜨고 죽는다고 한다.


만두를 받아 안고 집으로 왔다.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고이 누였더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강과 나는 제주에 합법적인 동물 화장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육지에서 화장을 해주는 업체를 찾았다.


그러고 나서야 문득 생각이 났다.

새벽의 고양이 소리가.

마음 한 켠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만두가 집에 잘 찾아왔구나.'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맞았을까.

더 일찍 병원에 데려갔었더라면, 집에서 편히 가도록 했다면, 좀 더 일찍 종양을 발견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만두를 세심히 살펴보았더라면.


수많은 후회와 슬픔이 아직도 내 곁을 떠돌고 있지만 만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아직도 힘이 든다.

하지만 만두는 내게 인사를 하러 왔고,

지금쯤 못 먹던 밥과 간식도 먹으며 다른 고양이들과 무지개별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네가 슬퍼하지 않도록, 나는 더 열심히 살아볼게.

네가 좋아하던 방석은 계속 놔둘 테니, 가끔 심심해지면 놀러 와.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만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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