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뽑은 첫 커피
2부 EP02. 9월 카페와 화재사건
집에 콕 박혀서 숨만 쉬던 내가 갑자기 제주도에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한순간의 일이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구인 글을 보다가, 우연히 제주에서 카페 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끌림에 의해 알바를 지원한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9월은 제주도 자영업자들에게 그리 편한 달은 아니다. 놀거나 일을 하러 내려왔던 대학생들이 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는 시즌이라 일손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카페 관련 경력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하게 되었고, 바로 다음 주 수요일에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끊었다.
제주도 협재 바다를 지나 더 서쪽에 위치한 카페는 3층짜리 목조 건물이다. 1층은 카페로 운영하고 2층은 직원들 숙소, 3층은 다른 업체에서 펜션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간단히 숙소 안내를 받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조금 쉬었다. 그러고 있으니 나와 같이 오늘자로 입도한 직원 두 명이 더 들어왔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와 훨씬 더 어린 남자아이이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작 알바생일 뿐인데도 어쩐지 입사 동기 같아 든든했다. 여자아이와는 같은 방을 쓰게 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복지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와서 그런지 상냥하고 배려가 넘치는 아이이다.
사장님은 육지에 있는 어린 딸과 거의 매일 통화하는 호탕한 성격의 중년 남성이다. 매일 직원들을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게 밥상을 차려주시고는 꼭 술과 함께 저녁을 드신다.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직원들은 꽤 여러명이다. 매니저 두 명을 포함해서 총 9명의 직원들이 왁자지껄 모여서 웃고 떠든다.
우리는 매니저가 작성해준 스케줄표대로 조를 짜서 오전/오후 근무를 했다. 수습날에는 오전 오픈부터 오후 마감까지 종일 근무를 했는데, 이것저것 알아두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머리가 아팠다. 포스기라고는 편의점 포스기밖에 만져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남들보다 배로 머리를 쥐어짜야 했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커피를 뽑는 것은 더 흥미로웠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몇 번 우유 스팀은 해 봤지만, 실전에서 하려니 긴장이 되어 자꾸 망치기 일쑤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동생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도와주었고, 나는 쉬운 메뉴부터 하나씩 익혀가기 시작했다.
요식업은 참 알 수가 없다. 해보기 전에는 마냥 날씨가 좋으면 장사가 잘 되겠거니, 했었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날은 비가 주룩주룩 와도 사람이 미어터지고, 또 어떤 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데 사람도 한 점 없다. 도통 종잡을 수가 없으니 준비도 할 수 없다. 어느 날은 마감까지 너무 바빴다. 매출이 역대급을 찍은 날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동생들이 하나 둘 1층으로 내려와서 마감을 도와주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조명을 끄고, 저녁 준비를 했다. 그날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나이가 어리면 무조건 철딱서니가 없겠거니,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낮에는 이렇게 일을 하고,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제주로 내려와서 거의 하루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저녁밥을 먹으며 먹는 반주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나는 약을 먹고 자거나, 먹지 않는 날이면 깜깜한 1층 카페에 혼자 내려와 빈백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거나 뜨문뜨문 놓인 가로등을 지표 삼아 새벽산책을 하고는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안했다. 즐겁고 매일이 기대되었다. 쉬는 날에는 동생들과 함께 근방으로 놀러 나가거나 카페에서 멍을 때리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바다를 본다.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가면 될 뿐. 어깨에 짊어진 짐을 잠깐이나마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카페에서 일한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우리는 처음으로 다같이 회식을 하기로 했다. 마감을 하고 사장님이 자주 가는 단골 이자카야에 갔다. 맛있는 안주와 술을 먹으며 그동안 열심히 일한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즐겁게 웃고 떠들다보니 거의 밤 12시가 되었다. 다들 적당히 오른 취기에 흥겨워하며 카페로 돌아왔다. 그런데 캄캄한 밤하늘을 뚫고 멀리서 뭔가 밝은 것이 보였다. 불? 불빛인 것 같았다. 아니, 불 그자체였다. 건물에 불이 나 있었다. 우리 카페 건물에.
우리는 모두 얼어붙었다. 술이 깨는 건 순식간이었다. 3층 목조 건물은 활활 타올랐다. 인근에 있는 모든 소방차들이 모여서 불을 끄고 있었지만 나무에 붙은 불은 화염처럼 솟아올랐다. 우리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채 그저 멍하니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울음을 터트렸다. 사장님은 건물 앞에서 경찰관과 다급하게 뭔가를 이야기했다.
새벽이 되었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사장님은 가장 가까운 호텔에 우리 숙소를 잡아 주셨다. 우리는 방 방안에 쭈그려 앉아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입고 있던 옷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린 것이다. 잠도 오지 않았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6시쯤 불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화재 감식을 기다리느라 점심이 다 되어서야 현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경찰관의 허가 하에 현장에 들어가 보았다. 불이 지나간 보금자리는 그야말로 참담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검은색이었고, 누워서 뒹굴고 놀았던 소파는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으며, 침대에는 매트리스가 없었다. 코를 찌르는 화학물질 냄새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웠다. 방 안에 있는 모든 물체는 형체가 없었다. 노트북은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부서져 내렸다. 우리는 절망스러운 기분으로 테라스로 가 보았다. 천만 다행으로 테라스쪽에는 불이 덜 붙었는지, 모아두었던 캐리어들은 멀쩡해 보였다. 만세! 캐리어 안에 담아두었던 내 노트북은 살았다. 우리는 캐리어를 포함해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몇몇의 물건들을 밖으로 날랐다. 사장님은 이 와중에도 초긍정 마인드를 발휘하시고 계셨다. 화재보험을 들어놓아서 다행이라며 오히려 우리를 걱정해 주셨다. 그리고 근처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주시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 임시 숙소에서 몇 주간 살았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한 명, 두 명 육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나 역시 수입이 없이 언제까지나 계속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 7월에 제주에 내려왔을 때 친해졌던 칵테일바 동생과 연락을 하게 되었고, 동생은 자신이 새로 옮기게 된 펍으로 와서 일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해왔다. 육지로 올라가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다. 그렇게 나는 카페 알바 한 달만에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