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비타민

2부 EP03. 눈물과 가족

by 에스

오랜만에 본가로 올라가서 가족과 함께 추석 명절 밥상을 함께 했다.

친척도 오지 않고 제사도 아무것도 지내지 않고 그저 우리끼리 오롯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명절. 소소하고 소중하다.

집에 도착했더니, 이미 엄마는 시장에서 음식 재료를 잔뜩 사 와서는 부엌에서 뭔가를 뚝딱거리고 계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적 재료도 이미 가지런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산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밥용 햄, 쪽파, 느타리버섯 이 세 종류를 번갈아가며 꼬치에 끼운다. 그러고 나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붓고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내가 산적을 굽는 동안 엄마는 분주하게 잡채나 동그랑땡을 만드신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조기 구이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 동생은 저녁 늦게쯤 느적느적 도착해서 젓가락만 갖다 댄다.

우리는 작은 식탁에 모여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밥을 먹었다. 막 엄청 오랜만은 아닌데 왜인지 너무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생은 취직한 중소기업이 너무 힘들다며 한탄을 하고, 상사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갈구는지 설명해 주고, 우리는 듣고 있다가 같이 상사 욕을 해 주었다. 그래도 마냥 철없어 보이던 어린아이가 스스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버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 보였다.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는 터라 집안 살림이 쉽지 않다고 투덜댄다. 엄마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가 결국 동생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들고 나서야 잔소리를 멈추신다.

밥을 먹고 나니 밤이 되었다. 본가에는 내 방이 없다. 동생은 자기 방에 쏙 들어가 버리고, 엄마와 나는 안방에 누워서 TV를 켜놓고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두 달여간을 매일매일 우시다가,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 울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너무 죄송했다. 어릴 땐 사춘기조차 얌전하게 넘기더니 다 커서 이렇게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구나, 싶었다. 첫째 자식이 취업을 할 때 둘째 자식은 방황을 하고, 그 방황하던 둘째 자식이 비로소 취업을 하니, 다른 하나는 아파서 그만둔다고 한다. 엄마는 언제쯤 온전히 행복하실 수 있을까.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이었다. 엄마가 옆에 계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꿈조차 꾸지 않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 정말 이상하다, 엄마란 존재는. 덕분에 본가에 있는 내내 그동안 밀린 잠을 보충이라도 하듯 너무 많이 자서 엄마가 되려 걱정을 많이 하셨다. 잠이 많은 것도 우울증의 증상이란다. 엄마에겐 내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우울증과 연관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 제주로 오는 날. 오만가지 영양제를 바리바리 싸 주셨다. 비타민 B, C, D에 마그네슘까지. 밤새도록 의학 유튜브 채널을 본 엄마는 비타민 박사가 되어 있다. 나는 챙겨 먹기가 너무나 귀찮을 걸 알면서도 군말 없이 받아서 가방에 넣었다.

제주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서쪽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족을 만난 시간은 아주 잠깐이지만, 그 잠깐의 포근함과 고마움을 마음속에 기억한 채로 더 긴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다들 대한민국의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져서 맡은 책임을 다하고 살아가다가 다시 웃으며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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