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꾸벅, 졸음운전은 위험해!
2부 EP12. 새로운 카페알바와 우울함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서 알아보던 중 대정 쪽의 브런치카페에서 알바를 모집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금, 토, 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근무 요일과 시간이 적당해 보였다. 다만 카페가 제주 내륙 쪽에 있어서 출근하려면 30분이 조금 넘게 소요되었지만, 일단 좋은 조건이라 면접을 보러 갔다.
카페는 잔디가 덮인 자그마한 마당을 보유한 2층 단독 건물로, 마당 한켠에는 토끼우리까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이가 아주 어려 보이는 여자 직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단지 면접을 보러 왔을 뿐인데도 커피를 한 잔 타주시고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는 브런치와 파스타가 주메뉴로, 사장인 아버지께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스물여섯 살 막내딸인 본인은 카운터와 서빙, 음료 제작을 맡고 있다고 했다. 나는 주방에서 사장님을 보조하며 브런치를 만들고, 카페가 바쁠 때는 음료 제작을 도와주면 된다. 음료는 종류가 적지 않았지만 레시피가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며칠 후, 출근해 달라는 연락이 왔고 나는 브런치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1시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머리를 묶고 앞치마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다. 주방에 가보면 보통 주문이 꼭 한두 개씩은 들어와 있다. 파스타 세 종류, 그리고 브런치에 들어가는 익힌 새우 등은 사장님이 요리해 주시고 나는 예쁜 접시에 브런치나 샌드위치를 준비한다. 브런치는 프렌치토스트와 샐러드, 소시지, 에그스크램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단해 보였지만 실제로 만들어보니 처음에는 많이 헷갈렸다. 소시지 굽는 걸 깜빡해서 허둥지둥하거나, 샐러드 위에 드레싱 뿌리는 걸 까먹기도 했다. 하지만 반복작업이다 보니 점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동선 낭비 없이 착착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주방 주문이 없거나 음료 제작이 바쁠 때는 카운터에 나가 막내딸을 도왔다. 막내딸은 아주 친절하게 음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시간이 나면 먹고 싶은 걸 만들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근무날마다 카페라떼에 올라가는 라떼아트를 한 잔씩 연습할 수 있었다.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은 땄지만, 라떼아트에는 아직 매우 미흡했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기본 하트 만들기에만 집중해서, 나중에는 손님에게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하트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내가 내린 커피를 먹으며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잔디 마당을 구경했다. 가로로 긴 나무 우리 안에는 토끼들이 다섯 마리 정도 우글거렸다. 가까이 가보면 쉬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며 뭔가를 먹는다. 날이 점점 더워지자 사장님은 토끼를 잔디 마당에 풀어놓았다. 토끼들은 가까이 가면 제법 빠르게 도망을 가서 더 이상 자세히 관찰하기는 힘들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을 했더니 토끼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더니 세상에! 간밤에 들개들이 전부 물어 죽였다고 한다. 사장님은 그걸 CCTV로 확인하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다시 몇 마리의 토끼를 사 왔으나, 우리에 가둬놓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들개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는 마당에 토끼가 뛰어노는 일은 없어졌다.
어느 날, 사장님이 또다시 동물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초록색과 노란색이 눈에 띄는 작은 앵무새를 친구분께 얻어 왔다며, 어깨에 얹고 다녔다. 앵무새는 부엌에는 들어오지 못했지만, 우리가 점심밥을 먹는 휴게 공간에서 하루 종일 울어댔다. 심지어 말도 할 줄 몰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받아주면서 내가 손가락을 내밀면 백 퍼센트의 확률로 깨물었다. 이 앵무새 역시 어느 날 사장님이 바람을 쐬어 주겠다고 풀어놓자, 가출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사장님의 동물 사랑은 결국 여기서 멈추고 말았다.
브런치 카페 일은 일이 손에 익을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사장님은 내가 실수를 해도 한 번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주셨고, 점심때마다 가게 메뉴 퀄리티에 맞먹는 점심밥을 만들어 주셨다. 막내딸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쉬엄쉬엄 하라고 얘기해 주거나 자기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나이도 어린 아이가 올해 결혼을 한다고 하며, 슬슬 신혼집 인테리어를 시작해야 한다며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이 나는 무척 좋아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겼다. 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데, 거기엔 불면증 약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자고 일어나서도 잠에서 깰 수가 없어서 졸음운전을 하기 일쑤였다. 출근까지 30분 넘게 걸리고, 차가 별로 없는 산길이라서 그런지 졸음은 더더욱 밀려왔다.
이렇게 졸음운전을 감수하면서까지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데, 문제는 크게 효과도 없다는 점이었다. 우울은 파도처럼 밀려와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죽음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밤바다를 보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친구들과 먹거나 룸메이트가 없으면 집에서 혼술을 했다. 블랙아웃 현상도 심해져서 친구들과 먹으면 거의 반반의 확률로 기억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주는 친구들 덕분에 하루하루 끌려다니듯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