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둘이서

2부 EP11. 엄마와의 제주여행

by 에스

유채꽃의 계절이 왔다.

엄마와 나는 꽃을 좋아해서 거의 계절마다 꽃구경을 하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유채꽃밭을 보여드린 적은 없어서 이번 기회에 제주의 유채꽃을 보여드리기로 했다.

엄마는 고소공포증이 있으셔서 비행기 타는 걸 꺼려하셨는데, 내가 계속 설득하자 마지못해 큰 용기를 내셨다. 먼저 내가 본가로 올라가서 엄마와 며칠 집에 있다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엄마는 비행기에 탑승한 내내 한 번도 창밖을 쳐다보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내렸다.


제주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펍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펍은 현재 리뉴얼 공사 중으로, 영업을 일시중단한 채 내부를 꾸미는 데 여념이 없는 상태이다. 우리가 펍에 도착한 그 순간에도 L과 바텐더 오빠는 재료를 사서 펍을 꾸미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L을 소개해 드렸다. 엄마는 나를 돌봐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펍과 건물은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내 숙소에는 룸메이트가 있어서 따로 애월 쪽에 숙소를 잡았다. 저렴한 가격이었는데도 방이 깨끗하고 채광이 잘 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제 제주의 자연을 만끽할 시간! 우리는 산방산으로 가서 유채꽃을 보기로 했다. 산방산 근처로 유채꽃밭이 굉장히 넓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려면 몇 천 원 정도를 앞에 앉아 계신 어르신께 드려야 했다. 우리도 돈을 드리고 유채꽃밭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산방산을 배경으로, 노란 유채꽃들은 물결처럼 하늘거렸다. 빨간 장미와 노란 들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노오란 꽃들이 맘에 드시는지 사진 찍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셨다.

우리는 지겨울 만큼 사진을 찍고는 오설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와 차를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오설록을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설록 주차장에 차가 별로 없었다. 원래 주차장뿐만 아니라 근처 도로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인데 이상할 정도로 썰렁한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입구에 들어서니 이런. 재정비 공사 중이라는 문구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녹차밭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지만 건물들은 모두 흰색 천으로 가려져 있고 재단장 중이라는 문구만 쓸쓸히 붙어 있었다. 오설록 녹차 프라푸치노를 꼭 드셔보게 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우리는 녹차밭이라도 보고 가기로 했다. 3월의 녹차는 생명력이 마구 넘치고 푸릇거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잎을 굳세게 부여잡고 있었다. 우리는 잘 정리된 녹차밭 사이로 들어가서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더 새로워질 오설록을 기대하며 녹차밭을 빠져나왔다.

오설록에서 차를 못 마신 관계로 우리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엄마께서 문득 길에 걸린 현수막을 보시고는 저길 가보자고 하셨다. 카페인데 감귤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지도 앱을 켜보니, 마침 멀지 않은 곳이라 바로 출발했다.

카페는 건물 자체는 아담한데 건물 주변으로 매우 넓은 마당을 갖추고 있었다. 감귤밭도 꽤 넓은 편이었는데, 시기를 잘 못 맞췄는지 귤이 다 떨어지거나 썩어가고 있어서 체험은 못했다. 대신 음료를 마시며 넓은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길 양옆으로 소철과 식물들을 심어놓아서 잘 꾸며진 정원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좌석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걷다가 쉬고 싶을 때 언제든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건,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동물원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나귀와 염소, 양,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동물들이 사람들이 주는 당근 스틱을 냠냠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타조도 있었다. 목이 얼마나 가늘고 긴지,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신이 나서 한참을 구경하고 카페를 나왔다.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우리는 협재로 갔다. H가 최근에 오픈한 2호점 솥밥집에 가서 솥밥을 먹었다. 솥밥집에는 주방 담당 사장인 K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엄마께 깍듯이 인사를 하고 맛있는 솥밥을 만들어 주었다. 엄마는 인삼, 버섯 등 몸에 좋은 각종 재료들이 들어간 메뉴를 드셨는데, 밑반찬도 깔끔하고 밥이 정말 맛있다고 칭찬하셨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협재 바다를 거닐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협재바다는 신비로운 색깔로 저물어가고, 엄마와 나는 해변가를 조용히 걸으며 바닷바람을 음미했다.

걷다 보니 H의 감성포차 근처에 오게 되어 잠깐 얼굴을 보러 들렀다. 엄마께 H도 소개해 드리고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술을 전혀 드시지 않아서 술집을 가보신 적이 별로 없는데, 오랜만에 보는 술집 풍경이 신기하신지 여기저기를 훑어보셨다. 그러고 있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서 숙소로 귀가했다.


이제껏 해외여행 한 번 못해보신 우리 엄마. 제주도도 이번이 두 번째다. 어떻게든 좋은 것 예쁜 것 많이 보여드리려고 하루 종일 차에 태워 끌고 다닌 것이 못내 죄송하다. 그럼에도 힘들다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딸이 이끄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고는 피곤하셨는지 금방 잠드셨다. 엄마께 더 좋은 곳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건강하게,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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