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차와 사장감
2부 EP09. 협재의 왕 H에 대하여
제주 서쪽 감성포차의 사장 H는 엄청난 야망가이다.
그는 여름에 처음 포차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해서 이제 장사 반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포차는 협재 해수욕장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2층 건물로, 3층은 천막을 씌워서 루프탑으로 활용하고 날씨가 좋으면 1층 마당에도 천막을 쳐서 자리를 넓힌다. 협재 근방에서 거의 유일하게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포차여서인지, 밤 12시가 넘어가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손님들이 엄청나게 넘어온다. 나 역시 처음에는 손님으로 가게에 드나들다가, 어느 날 H의 제안으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 밤 10시에 출근을 하는데, 가게에 도착하면 이미 개수대에 설거지거리가 넘쳐나고 있다. 나는 3살 어린 H에게 온갖 불평불만을 토로하며 설거지를 시작하고, H는 '누나, 여기는 내 왕국이야~!!!'라고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치고 모두가 웃음바다가 된다. 나는 그런 그에게 '협재의 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는,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요~ 협재의 왕 H!!!'라고 외쳐주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 동생들 모두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가게의 분위기는 언제나 즐거웠다. 보통 10시에서 12시까지는 손님이 적어서 그때 재빨리 라면이나 제육볶음 같은 저녁밥을 먹는다. 그러고 있다 보면 슬금슬금 손님들이 몰려드는데, 주로 나는 설거지를 하거나 일이 없으면 메뉴 주문 및 서빙도 한다. 큰 냄비요리가 많은 데다가, 물컵부터 앞접시까지 전부 무거운 사기그릇을 쓰다 보니 홀서빙이 만만치 않다. 주류의 종류도 다양하다 보니 주문을 받고 나서도 까먹어서 다시 물어보기 일쑤였다. 손님들이 떠나고 난 자리를 치우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아주 커다란 사각 쟁반에 그릇과 맥주병, 소주병 등을 담아서 들면 허리가 휠 것 같이 아팠다.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설거지하고, 마른행주로 닦아서 제자리에 넣고, 손님이 오면 다시 서빙하고... 의 반복이다. 나중에는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설거지하는 게 힘들었다.
마감 시간이 되면 슬슬 자리 정리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1층 마당에 깔린 담배꽁초들을 줍고, 쓰레기를 버리고 마무리를 한다. 영업시간은 4시까지지만, 마감을 하고 나면 순식간에 5시, 6시가 되곤 했다. 특별히 힘든 날에는 H가 우리를 데리고 해장국집에 가서 국밥을 사주기도 한다. 나는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로 해장국을 후루룩 먹고, 해방감을 만끽하며 퇴근을 한다.
그는 감성포차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2호점을 계획했다. 포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의 3층인데, 통유리로 되어 있어 협재 바다와 비양도가 한눈에 보이는 몫이 좋은 곳이었다. 그는 바로 계약을 하고 미용실이던 그곳에 솥밥집을 열었다. 순식간에 테이블이 들어서고 주방이 정비되고 집기류가 구입되었다.
그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했다. 밤에는 감성포차에서 마감 때까지 일을 하고, 아침에 잠깐 잔 다음 점심즈음 일어나 솥밥집 관리를 한다. 그리고 다시 밤에는 포차 출근. 하루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일주일에 이틀을 솥밥집에서 일하고 하루는 포차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날에는 펍에서 일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었다. 실 근무시간을 따져보면 일평균 7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포차에서 일을 하고 나면 밤낮이 바뀌는 탓에 적응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래도 덕분에 식당이 돌아가는 과정도 알게 되고,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약 두 달간을 이렇게 일을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는 것이 느껴졌다. 일의 순서가 몸에 익어 자동적으로 착착 행동이 되고, 손님 접대도 퍽 능숙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일하는 동안 진상 손님도 없어서 평화로웠다.
포차에 출근해서 손님이 없을 때에는 H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H는 하루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사업 생각만 한다.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7호점까지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계획과 더불어 어떤 사람을 어디에 배치할지까지도 다 생각해 놓고 있었다. 그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사업가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치밀한 계획과 더불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추진력까지. 그 와중에 자기 직원들도 잘 챙긴다. 어느 것 하나 나에게는 없는 면이었다. '사장감'이란 따로 있나 보다, 싶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나는 사장감은 아니다. H 역시, 누나는 사장보다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할 때 가장 능력을 빛날 수 있는 성격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자기와 계속 일하지 않겠냐고 끊임없이 제안을 해온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 일해도 이렇게 힘든 포차 일을 어떻게 일주일 내내 일할 수 있겠냐고 끊임없이 거절을 한다.
도전하고 미래를 꿈꾸는 삶. 언젠가는 H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저렇게 빛나는 눈동자와 패기로 멋지게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