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그만두다

2부 EP15. 꿈의 좌절, 그리고 새로운 배움

by 에스

제주에 내려와서 생활한 지도 벌써 8개월 차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해 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카페, 스시집, 포차, 칵테일바, 솥밥집, 게스트하우스. 주로 요식업 쪽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조금씩 느꼈던 것이 8개월 차에 접어들자 드디어 구체화되어 결론이 되었다.


나는 요식업을 못하겠다.


원체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먹을 게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어도 크게 상관없을 만큼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다. 심지어 어떤 때는 먹는 게 귀찮아서 먹으면 배가 불러지는 캡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파티시에 제과제빵 수업을 들었을 때에도 계량, 반죽, 휴지 등의 복잡한 공정을 거친 끝에 작은 빵 한 조각이 나오는 걸 보고 허무함이라는 감정밖에는 들지 않았다. 각종 식당에서 밑반찬 세팅, 서빙, 설거지 등을 할 때에도 힘들기만 할 뿐 보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걸. 하지만 힘든 일을 하는데 적성과 소질까지 맞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돈을 벌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다.


H가 운영하는 솥밥집과 감성포차 일을 그만두고, 이제 L이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펍과 대정의 브런치 카페만 남았다. 나는 펍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밤늦은 시간에 일하다 보니 낮에 다른 일을 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밤에는 제대로 쉬고, 낮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L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담담하게 누나가 어디에 있던 응원 하겠노라고 말해 주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결심은 단호했지만, 꽤 오래 일하던 펍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허탈하고 무거워졌다. 결국 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황스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일주일에 세 번 일하는 대정의 브런치 카페만 남겨놓은 채 나는 공중에 둥둥 뜬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진을 배워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휴대폰도, 디지털카메라도 막 보급되기 시작해서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적은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니콘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풍경 찍는 것을 좋아해서, 사진 인화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사진 콘테스트에 2등으로 당선되기도 했었다. 거기에 포토샵까지 배우고 나니 친구들이 얼굴 보정을 해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친구들 눈을 크게 만들거나 얼굴을 갸름하게 만들어주는 등의 보정을 해 주며 포토샵 실력을 길렀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바쁘게 살면서 한동안 디지털카메라를 크게 찾지 않게 되었다. 성능 좋은 핸드폰이 출시된 탓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좋은 구도를 찾고 예쁘게 사진 찍는 것에 대한 욕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동생은 사진에 대한 나의 열정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나는 경력 12년 차의 전문가 선생님에게 카메라와 사진에 대해 배우기로 했다.


펍을 그만두기로 한 이상, 제주 서쪽에 더는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일자리가 더 많은 시내로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쉬는 날에는 제주시로 나가서 부동산 발품을 팔았다. 각종 부동산 앱을 뒤져 보고, 실제로 가서 방을 보고. 제주시의 월세는 만만치 않았다. 늘 전세 집에만 살았던 나는 한 달에 몇십만 원의 돈이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에 조건이 좋은 집을 찾아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제주시 사방팔방을 홍길동처럼 날아다니던 나는 마지막 집에서 드디어 완벽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싼 월세에 모든 옵션이 다 있었고, 붙박이 옷장과 큼지막한 신발장, 베란다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계약을 하고 이사날짜를 잡았다. 서쪽 제주와도 이제 곧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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