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담아내는 제주 생활

2부 EP17. 노형에서의 생활과 병원진료

by 에스

노형동 집은 생각했던 대로 아늑하고 햇살이 잘 들었다.

하지만 엄청난 반전이 있었으니!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밤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에 비까지 더해져서 꼭 태풍이 오는 것 같았다. 베란다는 성인이 네 명 정도 누워도 될 만큼 넓었는데, 창틀이 하얀 플라스틱 재질이 아니라 금속 재질인 것이 문제였다. 제주도의 거센 바람이 부딪치자, 창틀이 덜컹거리면서 미친 듯이 소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귀마개를 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를 밤새도록 걱정해야 했다.

다음 날. 베란다로 나가 보니 물난리가 나 있었다. 어디론가 비까지 샜던 것이다. 베란다에 내놓았던 짐 상자는 바닥 가득 고인 물에 바닥이 젖어 있었다. 나는 분노하며 짐을 다시 방 안으로 들이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인 집주인은 서귀포 쪽에 거주하는 모양으로, 나중에 방문해서 고쳐주겠다고 했다. 직전에 살았던 사람은 중년 아저씨였는데, 도대체 비가 새는 베란다를 방치한 채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것 빼고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이사를 끝내고 난 다음 주, 정신과 예약 진료 때문에 육지로 왔다. 정신과 약은 남용의 위험이 있어 최대 한 달까지만 처방이 되기 때문에, 귀찮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받으러 와야 한다. 나는 이사를 한 것과 요식업을 포기하게 된 것, 졸음운전 때문에 카페 출퇴근이 너무 힘들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리고 감정 상태는 평소에는 보통 정도이나, 한 번씩 급격하게 가라앉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제주에 오기 전 평소 상태에 비교하면 지금은 기본 텐션이 많이 높아졌다고도 덧붙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침, 저녁으로 먹던 약을 저녁에 한 번만 먹도록 해주시고, 가라앉을 때 먹을 비상약도 처방해 주셨다.

병원 진료가 끝나고 오후에는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거의 2년 만에 보는 얼굴들인데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들 내 건강을 많이 걱정해 주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응원해 주었다.


제주에 다시 내려와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진 수업을 듣는다. 사진 선생님은 경력이 10년이 훌쩍 넘는 베테랑 사진사로, 제주에 오신 지는 7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으며 가격이 저렴한 똑딱이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더니, 제대로 배우기 위해선 적당한 수준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 추천해 주셨다. 나는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적당한 가격선의 니콘 카메라를 중고 거래로 구입했다. 중고 거래가 불안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이 손수 거래 장소에 나와서 카메라 점검까지 해 주셨다. 점검 결과 전문가가 사용해서 컨디션이 매우 좋았으며, 가격도 적당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거래를 진행했다. 니콘 카메라는 보기보다 묵직하고, 기능이 많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됐건, 내 카메라가 생겨서 기분이 설레었다.

카메라를 사고 첫 수업날이 되었다. 선생님은 내게 카메라 어깨끈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여러모로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었다. 나는 카메라의 기초에 대해 이론으로 배우고, 그다음부터는 밖으로 나가서 직접 사진을 찍으며 기능에 대해 하나하나 배웠다. 그날그날 배우는 주제가 다른데, 최근에는 달리는 자동차를 대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선생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고 따라 해보니 조금씩 달리는 자동차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주변 배경이 흐릿한 가운데, 달리는 자동차만 또렷이 잡힐 때의 짜릿함이란! 사진이 재미있어졌다. 다음 시간에는 야경을 찍기로 하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노형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사진 수업, 일주일에 세 번의 브런치카페 아르바이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위치가 워낙 좋다 보니, 그림 모임 또한 더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주로 시청 근처나 도청 근처의 카페에서 모임이 이루어졌는데, 거의 빠짐없이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오일파스텔은 점점 더 재밌어졌다. 꾹꾹 눌러 진하게 색칠해서 흰색을 가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그러데이션 해서 원하는 색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뭔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모임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색색깔의 오일파스텔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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