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

2부 EP18. 청주 집을 처분하다

by 에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연고가 전혀 없는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게 된 지도 벌써 16년째이다.

다행히 기숙사에 합격해서 대학 생활 4년간은 자취 걱정 없이 매년 바뀌는 룸메이트와 알콩달콩 잘 지냈다(물론 기숙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학점 관리를 해야 했지만). 2인 1실의 좁은 기숙사는 작은 침대와 몹시 좁은 붙박이 옷장, 그리고 책상이 전부였다. 창가에는 거대한 라디에이터가 놓여 있었고, 우리는 겨울이 되면 따뜻하게 달궈진 라디에이터 위에 올라가서 엉덩이를 데우곤 했다. 방학이 되면 무조건 기숙사를 비워야 했기 때문에 학기말이 되면 기숙사는 매우 분주해졌다. 다들 짐을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부치거나, 부모님 차에 실어서 집으로 가져가야 했다. 나 역시 계절마다 바뀌는 옷과 이불을 매번 본가에 보내고, 받기를 반복했다. 너무나 번거로웠지만 지금 떠올리니 어쩐지 그리워진다.


취업을 하고, 최대한 회사 가까이에서 출퇴근을 하고 싶었던 나는 처음으로 원룸을 얻었다. 첫 원룸은 1층이었는데, 여자 혼자 살려니 확실히 1층은 조금 부담스러웠더랬다. 그래도 그 덕분에 반려묘 '만두'를 만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첫 원룸은 1층인 점이 싫어서 곧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작은 전세원룸으로 이사를 한 나는 만두와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며 3년을 살았다. 그 뒤로도 몇 군데의 원룸을 거치며 더블 사이즈 침대를 사고, 살림살이를 불려 나가며 어엿한 자취생이 되었다.

직장 연차도 쌓이고, 돈도 조금씩 모으면서 드디어 청주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물론 거의 80퍼센트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깨끗하고, 곰팡이가 없고, 수압이 좋고, 부엌이 넓은 우리 집.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아파트를 떠나 작년 9월 제주에 내려왔고, 긴 고민 끝에 결국 집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주의 집은 도시 북쪽 외곽에 위치한 방 3개짜리 26평대 전세 아파트이다. 동네에 아파트 단지가 많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주로 신혼부부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승계자를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만에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장 먼저 연락을 주신 분과 계약을 하기로 해서 1박 2일간 청주에 다녀왔다.

원룸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살아 본 방 세 개짜리의 남동향 아파트. 처음엔 너무 넓어서 물건들을 어디에 어떻게 놔둬야 하는지도 너무 어색했었는데, 지금 집을 정리하려고 보니 불어난 짐들이 장난이 아니다. 엄마와 같이 하루종일 버릴 물건을 버렸는데도 쓰레기는 끊임없이 나왔다. 그동안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들을 많이 샀었나, 한심하고 웃기기도 했다. 취미방을 가득 채운 피규어와 미니어처들을 택배상자에 다 쓸어 담았다. 미안, 당분간 너희들을 진열할 공간은 없을 것 같아. 멀쩡하거나 가전제품 등 쓸모가 있는 물건들은 중고마켓에 처분하는 글을 올려서 하나둘씩 헐값에 팔았다. 덕분에 청주에 있는 내내 우리 집은 드나드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이렇게 제주와 청주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짐을 싸고, 택배를 보내고, 물건 팔고, 버리고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겨우 정리되었다.


수요일 2시. 승계자와 만나 승계 계약을 했다. 엄마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부부가 와서 집 컨디션 확인을 했다. 친정어머니가 얼마 전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여기서 혼자 사실 거라고 한다. 할머니 혼자 지내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자녀들이 손주를 데리고 놀러 와 있기에도 좋을 것이다. 집을 죽 둘러본 부부는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었다며 만족했다. 남편분께서는 나를 보더니 딸을 잘 키웠다며 엄마에게 말씀을 해주셨고, 엄마는 그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셨다. 우리는 함께 관리사무소로 내려가 승계 계약을 하고 이사 날짜를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2주 뒤이다. 2주 뒤에 또다시 비행기를 타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버틸만했다.


동시에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정신과 진료가 아니면 여기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 오더라도, 더는 잘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낯선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거쳐 결국에 나는 제주에 와 있다니. 그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정해진 운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운명이란 게 있다면,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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