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새 부서에서의 적응
놀랍게도 인사 발령 문서의 내 이름 옆에는 원하던 부서인 A국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K실 선배들이 "여기 있으면 무조건 다음에는 원하는 데 간다니까!"라며 격려해 주긴 했지만, A국에서 나를 필요로 할지 확신하기 어려웠기에 인사 결과를 보고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전해 듣기론 비 핵심부서인 K실에서 근무했기에 전입 우선순위가 올라가기도 했고, H 차장이 열심히 나를 세일즈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새로운 부서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전 부서에서는 나의 업무 지식이나 관련 경험이 충분하여 일을 이끌어 갈 수 있었지만, 기존의 경험과 업무 지식이 새 부서에서 필요한 것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작게는 보고서 스타일이나 서술 방식부터 크게는 통계 이론, 프로그램 사용법까지 새로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았고, 결국 일부 업무나 기술은 끝까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으로밖에 익히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후배 직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때때로 얼굴이 붉어졌다. 워낙 일이 전문적인 팀 특성상 전입 후 첫 반년은 배우는 기간이라고 다들 얘기했지만, 만 5년이 넘는 직장 생활에서 이렇게까지 무력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별로 큰 위로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회식 중 조용히 건네진 B 차장의 한마디에 고개가 숙여졌다. 악의가 아닌 진심이 담겨있는 충고였기에 더더욱 뼈아팠다. 다른 핵심 부서의 선임 조사역들에 비해 내 업무 역량이 부족하기에 회사에서 선정하는 유학 선발 대상이 되려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그 말. 그 말에 담긴 날카로움보다는 이에 반박하기 어려운 내 자신에 대한 비참함이 더 큰 상처를 만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일을 못한다거나 공부를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 충고가 더 쓰라렸으리라.
이 글을 쓰는 2021년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가계부채의 규모와 급속한 증가는 온 나라의 관심거리였고, 언론은 언제나 가계부채 규모의 증가와 이에 따른 부실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며 정부와 회사에 책임을 물었다. A국은 매년 두 차례씩 보고서를 발간하여 한국 경제 전반 및 경제 주체의 현 상황과 잠재적 위험에 대한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기에 당연히 그해 보고서의 주된 화두도 가계부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령화와 가계부채'라는 중요한 파트를 담당하게 된 B 차장은 나에게 다양한 통계의 탐색과 이에 대한 분석을 요구했지만, 이제 반년 정도 지나 일상적인 업무를 어느 정도 숙달한 정도인 나에게 몇몇 업무는 아예 손대기 어려웠고, 어떤 업무들은 어찌어찌 해내더라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5년차 정도 되는 직원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B 차장의 기준에는 내가 당연히 성에 차지 않았으리라.
비록 보고서는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고 그 당시 언론에도 많이 언급되어 부서장에게 칭찬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업무 지식이나 기술은 잘 늘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사연구 자체가 내 성격에 워낙 맞지 않다 보니 동기 부여도 잘 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 회사에서 경쟁하려면 결국 조사연구를 해야 하는데, 내가 과연 이 똑똑한 사람들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 일에서 보람을 찾고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부서에서 근무하는 2년 반 내내 이 질문은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