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조직에서 만난 독특한 사람들
내가 다녔던 금융 공기업은 극악한 입사시험 난이도로 유명했고, 이로 인해 구성원 중 소위 SKY를 졸업한 사람의 비중이 50~60%가 넘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자의 수가 너무 많아서 별도의 소모임이 없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내 동기들만 해도 상당수가 SKY 졸업자였고, 그렇지 않은 동기들의 면면도 KAIST, 포항공대, 각 지역 거점 국립대 등 굉장히 화려했다. 혹여나 오해가 있으실 수 있어 굳이 부연하자면, 회사가 특정 대학 졸업자를 선호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워낙 어려워서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본다. 실제로 2010년대 후반부터 회사는 출신 대학 정보를 입사 서류에 적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신입 사원의 SKY 졸업자 비중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렇게 공부만 하던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보니 조직 문화는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정부 파견을 다녀온 분들이 "차라리 공무원들이 더 자유롭더라" 할 정도이니 얼마나 심한 수준인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들어올 때는 개성 넘치던 신입들도 1~2년 다니다 보면 결국 조직 분위기에 동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방대한 범위를 꼼꼼히 공부해야 하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업무할 때의 꼼꼼함도 상상 이상이었다. 보고서의 초안을 잡는데 2주 걸린다면 글과 그래프를 다듬고 통계를 가공하고 보고하는데 한두 달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보고서에 포함된 막대그래프의 색이 전 페이지와 다르다고, 혹은 그래프 축의 굵기가 제각각이라고 (그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쓱 보고 알아내는지 정말 궁예가 따로 없다) 지적받아 야근을 하면서 이를 고치다 보면 '내가 이거 하려고 그 어려운 시험 보고 들어왔나' 절로 한탄이 나온다.
하지만 꼭 나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상식'이 있었고, 짧지 않은 회사 생활 동안 여러 유명인 (?)들을 겪었지만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악랄한 관리자는 겪어보지 못했다. 어떤 조직에 가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있는 법 아닌가? 개인적인 호불호나 의견의 충돌은 있을지언정 "저 사람때문에 못살겠다" 싶은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낭중지추랄까? 그 보수적이고 꼼꼼한 분위기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는 선배들이 몇 있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들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1. J 팀장: 오후 4~5시 무렵 팀은 언제나 조용해졌다. 팀장의 전화 통화를 엿듣기 위해서다. 팀장은 매일같이 이때쯤 술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대부분 금세 "오케이. 이따 보세~"하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가끔씩은 몇 통씩 전화를 하고 나서도 오케이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이런 날은 과/차장 중 한 명이 팀장에게 가서 "오늘 한잔 하시죠"를 제안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와의 술자리는 꽤나 힘들었다. 술을 강권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는 술에 취하면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했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이야기, 유럽 파견 근무 이야기 등등... 한두 번이야 재미있게 듣겠지만 같은 이야기를 매주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담뱃불을 붙이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Everything is BIG in TEXAS!"로 시작되는 레퍼토리가 또 이어질 테니까.
그는 언제나 어제 술자리의 여운이 남아있는 벌건 얼굴로 출근했고, 오전에 일을 좀 하다가 코를 골며 잠드는 게 일과였다. '드르릉~'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면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킥킥대기에 바빴다. 간혹 정신이 말짱할 때는 핸드폰 게임에 비트코인 채굴에 그는 언제나 바빴다. 그때만 해도 '독특한 취미네' 싶었지만 지금 비트코인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의 선견지명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생활하면서도 회사에서의 평판은 굉장히 좋았다는 것이다. 부서장이든 임원이든 "역시 J가 일을 잘해"라고 칭찬했다고 하니 어쩌면 그는 게으른 천재가 아니었을까.
2. H 차장: 사무실로 출근하면 언제나 프린터가 쉬지 않고 종이를 뱉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H 차장은 매일같이 회사 내부 자료는 물론이고 외부 연구 보고서들까지 죄다 뽑아서 읽는 것으로 유명했다. 매일 못해도 몇백 장씩은 족히 인쇄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는 꼼꼼하게 철을 해서 책자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의 자리 옆의 책장은 언제나 두꺼운 책자가 몇십 권씩 쌓여있었다.
과로에 지쳐서인지 팀 프린터는 자주 고장이 나서 사람을 불러야 했는데, 그 사람이 알려주는 출력물 숫자를 듣고 기겁한 적이 있다. 6개월에 몇만장이었나 몇십만장이었나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숫자였으니까. 아마 90% 이상의 지분은 H 차장이었으리라. 노안이 와서 모니터로 문서를 읽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컬러 프린터로 하루에 몇백 장씩 뽑는 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또한 그는 지병이 있어서인지 몸에 땀이 많이 났고, 가끔씩 신발을 벗어서 발의 땀을 말리곤 했다. 문제는 땀에 절은 신발을 말린답시고 온풍기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온풍기의 더운 바람을 타고 끔찍한 악취가 사무실 전체를 덮쳤지만 사무실 최고 선임에게 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방향제를 몇개씩 가져다 놓았지만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버틸 수 없으면 건물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들어오곤 했다. 결국 팀장이 조치를 취했는지 언제부턴가 냄새가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방향제 통은 그 이후에도 우리에게 일종의 상징이자 트라우마가 되었다.